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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윤 May 16. 2018

마술과 같은 삶, 꿈결 같은 그림

빈센트 반 고흐와 아를

  작품을 둘러보다보면, 아주 강렬한 작품을 남기는 작가들도 있고, 한편으로는 아주 몽환적인 작품을 남기는 작가들도 있다. 그리고 그의 그림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그의 작품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만 아주 강렬한 꿈을.


Vincent Van Gogh, 1853. 3. 30. ~ 1890. 7. 29.




아 를 과,

태 양 의  화 가

고 흐 


바람 한 점 없이 뜨거운 여름이다.
내겐 딱 좋은 날씨다.
노랑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태양과 햇빛,
창백한 유황색, 부드럽고 눈부신 황금빛.
아! 얼마나 아름다운 노랑인가.”


  빈센트 반 고흐는 고향을 떠나 2년 간 파리에서 머물면서 많은 성장을 이뤘지만, 파리의 생활에 지쳐 아를로 이동했다. 아를의 맑은 날씨와 강렬한 태양 아래 그는 이때 그린 그림들 만큼이나 밝은 꿈을 그려갔다.


(순서대로) 올리브 나무, 1889 /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1889 / 꽃 피는 아몬드 나무, 1890


  고흐가 아를에 있는 동안, 고흐가 거의 유일하게 의지하던 동생 테오가 조카 빈센트를 갖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또 ‘아름다운 자연과 색채를 연구하는 화가 공동체를 이루고 싶다’는 고흐의 바람에 따라, 고갱이 아를로 오기도 했다.

고갱과 함께 살게 된다고 생각하니 작업실을 장식하고 싶어졌다.
오직 커다란 해바라기로만 말이다.


해바라기, 1889


  이 시기의 고흐는 ‘태양의 화가’, ‘태양을 훔친 화가’라는 별명에 맞게 여러 색감을 과감하게 사용하며, 실험적으로 다양한 색감을 대비시키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갔다. 그의 작품이 처음으로 팔리고, 비평가와 예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아를의 붉은 포도밭, 1888


 


태 양 은

그 렇 게

지 고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났던 것과 반대로, 고흐의 건강은 점점 더 나빠졌고 신경은 쇠약해졌다. 그러면서 순식간에 모든 것들이 반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희망에 차서 시작했던 공동 작업장에서, 고흐와 고갱 두 사람은 서로가 많은 점에서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로 인한 것인지 고흐는 12월 23일 밤, 면도칼로 본인의 귀를 자르기도 했다. 고갱은 고흐가 병원에 입원한 사이에 아를을 떠났다.


귀를 자른 자화상, 1889


  고갱이 떠나고, 고흐는 신경이 더 쇠약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나 자신을 위해서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나 잠시 병원에 들어가 있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고, 아를 근교의 생 레미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한다. 병원에서 그는 종종 야외에 나가서 그림을 그렸는데, 이 시기의 그림은 고흐 본인이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별다른 실험을 하지 않고 자연의 색감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모습을 보인다.


까마귀가 있는 밀밭, 1890


  병원을 나와 자신을 돌봐 줄 가셰 박사가 있는 오베르 쉬즈 우아즈로 이동한 고흐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 겹쳤다. 사랑하는 조카 빈센트가 아팠고, 고흐를 후원하던 동생 테오의 경제적 사정도 어려워진 것이다. 그 때문에 여름 휴가를 같이 보내기로 했던 테오는 오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가셰 박사와의 사이까지 나빠졌다.

  결국 1890년 7월 27일 저녁, 반 고흐는 들판에 나가 권총으로 가슴을 쐈고 이틀 뒤, 급하게 달려온 동생의 품에 안겨서 세상을 떠났다.




태 양 이

지 면

별 이  뜬 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창공에 반짝이는 저 별에 갈 수는 없는 것일까?


  태양이 지고 나면 노란 햇빛이나 활짝 핀 해바라기도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곧 사물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하늘은 깊은 푸른 색으로 물들며, 노란 별빛과 달빛이 떠오른다. 낮의 풍경만을 그렸던 대부분의 화가들과 달리, 고흐는 이런 밤하늘을 꿈꾸며 밤의 풍경 또한 자주 그렸다.


론 강 위로 별이 빛나는 밤, 1888


  그에게 밤하늘은 무한의 상징이었다. 생 레미의 요양원에 있을 때 고흐는 아래의 그림을 그리면서, 동생 테오에게 ‘오늘 아침 나는 해가 뜨기 한참 전에 창문을 통해 아무것도 없고, 아주 커 보이는 샛별 밖에 없는 시골을 보았다’고 했다. 그렇게 병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밤 풍경에 본인만의 상상과 기억을 더해서 그는 자신만의 밤하늘을 만들었다.  


별이 빛나는 밤, 1889


  고흐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서, 찰나의 마술처럼 짧게 사라졌다. 그리고 그 흔적은 강렬한 색채와 격렬한 붓의 놀림으로 표현되어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다. 고흐의 그림이 꿈결처럼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그의 삶이 그 안에 녹아 있어서는 아닐까?


여전히 별들과 무한함을 느낀다.
 삶은 결국 거의 마술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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