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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rstheunivrs Mar 22. 2019

영화 <라라 랜드> 예찬 그 두 번째

꿈을 꾸는, 눈물 나는 바보들에 대한 예찬

 라라 랜드를 좋아하는 2번째 이유는, 사실 이게 나에겐 더 중요한데, 스포가 될까 자세히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여자 주인공 '미아'가 혼자 부른 그 한 곡에 그 이유가 다 담겨 있다.


 예전에 학부에서 미셸 푸코의 광기에 관해 아주 잠깐, 복숭아 겉핥기 식으로 나마였지만 공부했을 때 느낀 광기와 광인, 바보와 머저리들에 대해 아니 그들을 만들어 낸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다.


 중세 유럽에서만 해도 광인들이나 바보는 무섭거나 두려운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들의 마을 속에, 누군가의 가족으로 누군가의 친구로 혹은 바보 이반이나 평강과 온달 등의 이야기로 존재했다.


 광인들의 광기나 바보의 어리석음은 일반 사람들과 다르지만 틀리지는 않은, 인간과 신의 중간 영역에서 보통의 인간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엿보는 신비함이었다.


 하지만 근대국가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이상화된 도시가 세워지며 지식, 과학, 이성이 감각, 감성의 자리를 대체했을 때 그들은 광인을 게으르고 무능력한 이들과 같은 사회의 실패로 분류하고 곧 격리시켰다. 바로 현대의 정신병원의 시초이다.


 그들은 상승적이고 합리적인 사회에 불필요한 구성원으로서 탈락되었으며 배제되었다. 그들이 지닌 가능성은 모두 발현될 기회조차 없는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었다.


 우리가 사는 오늘 이 시대는 과연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까. 꿈이나 열정, 돈으로 이어지지 않는 모든 갈망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바보 같고 합리적이지 않은 생각으로 대우받는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자본주의 속에 던져졌기에 이상한 것을 못 느낄 뿐이지, 100년 200년 후에는 이 자본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괴이하고 기형적인 논리로 평가받을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어쨌건 그건 미래의 모를 일이고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본주의다. 그렇기에 이 안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 주변의 바보들의 삶은 처절하다.


 꿈을 꾸는 사람들, 남들과 다른 길로 가는 사람들. 누구 하나 응원해주지 않을 뿐 아니라 나 스스로도 불안에 떨면서도 보이지도 않는 별을 쫓는 사람들. 단 한 점의 빛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웃을 수 있는 바보들. 그들보다 아름답고 열정적인 사람들을 나는 본 적이 없다.


 화가, 시인, 작가, 광대들. 우리 주변의 모든 예술가들. 합리와 이성으로 쌓아 올려진 이 거대한 성의 빈틈을 찾아 등에서 날개가 솟아 올라 언젠가 그 사이로 날아오를 거란 믿음으로 달려 나가는 몽상가들.


 라라 랜드는 그 모든 바보들을 위해 바쳐지는 아름다운 헌정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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