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crstheunivrs Mar 22. 2019

이중섭. 남덕의 남편, 두 아이의 아버지.

너무 마음이 여려 마음을 놓아버린 화가


나만의 소중하고 또 소중하고
고귀하고 끝없이 상냥하며 우주에서 유일한 사람
나의 빛, 나의 별, 나의 태양, 나의 사랑,
모든 것의 주인, 나만의 천사,
사랑하는 현처 남덕 씨, 건강하신가요



 이중섭 전을 보러 갔을 때 내 마음을 온통 뺏은 건 그 유명한 황소 그림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이중섭은 부인을 끝없이 사랑하고 두 아들을 한없이 그리워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에 보낸 채 한국에 홀로 남은 그는, 반드시 성공해 돈을 많이 벌어 우리 네 가족이 행복하게 살게 하겠다고 늘 편지를 띄웠다.

 자신의 세상의 구원자이고 빛이며 여신이라고 달콤한 말들로 가득 찬 편지를 띄우던 그는 화가이자 동시에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개인전의 커다란 성공에도 불구하고 작품 판매 대금을 쌀과 같은 현물로 주어도 거절하지 못했던 유난히 무르고 순하던 성품. 심지어 돈을 지불하지 못한 매입자에게도 끝까지 찾아가 돈을 받아내지 못하던 독하지 못했던 성격이었던 그의 삶에 부유함은 애초에 어울리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다음 달에는, 다음 해에는 꼭 한국으로 돌아오게 할 테니 함께 살자던 그의 편지와는 달리 잘 되지 않던 상업적 성공과 바람과는 달리 자꾸 멀어지던 사랑하는 남덕 씨와 두 아들과의 재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편지에는 사랑하는 아내 남덕 씨에게 보내는 애틋함과 자신의 큰 꿈, 행복하게 해 주겠노라 하는 벅찬 남편, 아버지의 마음 대신 미안함과 불안함 그리움이 자리했고, 결국 이중섭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다.

 그 낡고 부서진 마음조차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원망이 아니었다. 저렇게 하루하루 열심히 치열하게 경쟁하며 사는 사람들을 보며 도대체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

 저렇게 성실히 매일매일 노력하는 사람들이 바깥엔 가득한데 나는 화가라는 추상적인 꿈과 낭만에 취해 나의 재능만을 믿고 저 사람들 틈에 끼지도 못한 형편없는 사람이다, 그토록 찬양하고 사랑해 마지않던 사랑하는 남덕 씨와 두 아들 조차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 형편없는 말뿐인 사람이다 라는 패배감과 자책감에 괴로워하다 마음의 병에 걸리고 만 이중섭.

 결국 성공을 향해, 가족과 행복한 재회라는 꿈을 위해 끝까지 잡고 있던 긴 긴 시간들을 뒤로하고 그는 마음의 병으로 너무도 짧은 시간 동안 쇠약해진 채 영양실조로 세상과 이별을 맞이한다. 그 사랑하던 남덕 씨와 두 아들을 만나지도 못한 채 적십자 병원 차가운 침대 위에서 홀로.

 촛불이 타오르다 꺼지듯 그의 삶엔 아름답고 순수하고 눈물 나도록 절절하던 진심이 가득했지만 그의 불꽃은 너무도 허망하게 꺼졌다. 너무도 외롭게 스러졌다.


 하지만 그 연기가 아직도 남아있는 걸까. 전시를 보는 내내 왜 그리 눈이 맵고 시렸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여러 전시를 보러 다녔지만 전시를 보며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던 건 로스코와 이중섭 둘 뿐이었다.

 지금 이렇게 성공했다는 것을 알면, 이렇게 많은 이들이 보고 싶어 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는 남덕 씨와 두 아들에게 뭐라고 써서 편지를 보냈을까.

 가족과 떨어져 사는 동안 늘 그린 함께 모인 네 가족의 그림 속 세상 행복하게 웃던 그의 모습이 잘 지워지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