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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브 Nov 13. 2019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나는 열아홉 번 이별했다.

나는 스무 살부터 서른두 살까지 19번 '이별'했다.


연애도 퇴사도 폐업도 모두 '이별'의 범주 안에 넣어버리면 말이다.

연애든 퇴사든 폐업이든 이별을 해야겠다고 결정하기까지 수없이 고민했다. 이별의 순간을 마주할 때조차 고민은 계속됐다. "OO랑 헤어지는 게 맞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핑계로 너무 쉽게 퇴사를 결정한 건 아닌가?", "당장은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버티면 잘되지 않을까?"


당시에는 그럴듯한 변명들로 모든 이별들을 멋지게 포장하려 했다. 어떤 이별이든 나의 선택은 합리적이라고 위안하며. 주변 사람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당당하기 위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을 지켜줄 수 없을 것 같았다. 너무나 나약하고 이상주의적인 내 모습을 인정하고 나면 저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괴로움과 만날 것 같았다. 괴로움보다는 두려움과 함께 그렇게 나는 이별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사랑의 이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어떻게 저 나이에 이 감정을 이해하지?'

중고등학생 시절 포지션, 엠씨더맥스, 조장혁 등 수많은 가수들의 수많은 사랑 그리고 이별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러다 저런 심사평을 들을 때면 생각했다. '무슨 소리야, 나도 다 알겠는데.'

그때는 몰랐다. 알고 있다고 이성적으로 느낀다는 것이 전혀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아직도 먹을 나이가 더 많지만 서른이 넘어가면서 남녀 간 '사랑의 이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감정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이유들로.

1. 노래를 듣거나 부르면서 생각나는 사람 그리고 장면이 있다.

2. 기분이 우울해진다.

3.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며칠 전에는 노래가 아닌 영화를 보면서 침대에서 혼자 흐느끼며 울었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

그때는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사랑의 이별을 이해하고 있음을.

"이거 마시면 나랑 사귀는 거다."


일과의 이별

대학생 시절 스타트업을 시작으로 패션 브랜드 창업, 레스토랑 운영, 스타트업 마케터, 패션 잡화 브랜드 마케터, 패션 역직구 플랫폼 창업, 패션 브랜드 런칭 디렉터, 패션 유통업체 마케터, 사회적 기업 대외협력국 매니저까지 8년이라는 기간 동안 하고 싶은 것, 기회가 주어진 것들을 선택하며 일을 이어왔다.

내 커리어에 대한 각 세대의 반응은 다양하다. 나보다 나이가 10살 이상 많으신 분들은 '하나 꾸준히 하지 뭐 그렇게 이것저것 하냐'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반면 나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어린 친구들은 '창업이든 취업이든 왜 이렇게 쉽게 해? 대단해'라고 반응한다. 물론 두 리액션의 끝 지점은 맞닿아 있을 수도 있겠다. 최대한 자기 합리화, 자기 보호를 배제하고 지난 8년 간의 나의 '일'에 대해 스스로 반응해보자면 '이것저것 하긴 했는데 그래도 하나의 큰 줄기로 일한 것들이 이어지네'라고 하고 싶다.

한 때는 한 가지 일, 직업에 꾸준히 시간을 쏟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고 그러한 상황에 미래가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도 마음속 어딘가에 1% 정도의 수치로 아주 작게 남아 있다. 허나 사랑의 이별에서도 각 이별을 통해 성숙하고 배우는 부분이 생기듯이 일과의 이별을 반복하면서도 얻은 것들이 있다.

1. 나는 회사라는 조직과 맞지 않는다. 다시는 취업하지 않는다.

2. 나는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는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3. 과거에는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것이 그 메시지였고 지금은 '지구와 우리가 지속가능한 삶을 살자'는 것이 그 메시지다.

4.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잘하지만 심리적 부담감과 현실적 결핍에 쉽게 일과의 이별을 생각한다. 새롭게 시작할 일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빠르고 집중적으로 행동하며 좋든 나쁘든 확실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속하자.

사실 이미 패션-환경 관련 앱을 개발하기 위해 사업자를 또 새로 만들었다.

"이거 망하면 안 되는데."




앞으로 일과 사랑에서의 이별은 최소화할 것이지만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새로운 이별들을 무시하거나 미루지는 않을 것이다. 슬프기는 하지만 이별의 아픔이 있어야 사랑의 깊이도 알게 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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