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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성 Aug 17. 2023

나의 거울인 너에게

엄마의 눈물 그리고 가야 할 길

돋보기를 쓰고 창 밖을 내다보다 문득 너의 표정이 떠올랐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않는 순간들이 많아지고 있구나. 너의 표정은 압축프레스기라도 된 것처럼 나를 순식간에 눌러버릴 수도 있단다. 너의 표정은 내 지난 과오의 기록인 것 같아서 무섭기도 하다. 내가 자초한 결과이겠지만, 이제 닥칠 징벌의 시간인가 싶어 본능적인 공포가 인다.


학교 1학년 때였어. 당시 14살이던 나는 국어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더구나.

수업 시간에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선생님께 여쭸지.

"선생님은 뭐가 제일 무서우세요?"

선생님의 대답은  "여러분들"이었어.

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 나는 착한 학생인데 무슨 말씀이시지? 우리 반 아이들이 국어 시간에 말썽을 일으킨 적도 없는데 무슨 말씀이시지?


아이야, 30년이 지난 이제야 그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를 비추는 거울 같은 너를 보는 게 두려울 때가 있단다. 그 안에서 못난 나를 만나야 하고 바라보고 직면해야 하고, 나로 인한 불순물이 네 삶에 짐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죄스러움이 고스란히 심장 조이는 고통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나를 비추는 네가 무섭구나. 나의 수치, 나의 결핍, 그 결핍이 만든 오작동의 부작용이 네게 반영되어 버렸다는 것이. 결국, 애써 피해왔는데 결국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악마에게 결국 지게 되어버린 것만 같아. 이길 수 있을 줄 알았지. 그것이 큰 착각이고 오만이고 자만이었다는, 이제 나의 인간 된 한계를 보라고 버젓이 그 모든 것을 네 표정에 담아 보여주는 것만 같아 몸서리 쳐지는 패배감과 무력한 자의 두려움을 느낀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안에서 그 실마리를 풀어내는 것 같구나. 그 실마리를 찾아 더 나은 내가 되면 너와 웃으며 만날 수 있을까. 그간의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그 누구도 지을 수 없는 너와 나만의 깊은 웃음을 긴 시간의 우물에서 건져낼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끝내는 내가 이긴 거야.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어. 내가 끝내는 악을 이긴 거야. 그래서 우리 모두가 회복될 수 있었어."라고 외치고 싶구나.

그와 같은 마음으로 나는 지금을 산다. 우리가 낫기 위해 더 나은 내가 되려고, 오늘도 나는 내 안의 나를 바라본다. 나보다도 너를 위해...


나는 돋보기를 쓰는 나이가 되었어. 멀고 넓은 세상보다 가깝고 좁은 세상을 자세히 보게 되는 나이이지. 이 돋보기를 쓴 채 먼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흐릿해 보인단다. 한동안 네게 돋보기의 시선을 얘기해 왔더구나. 너는 멀고 넓은 세상을 바라보기에 발 밑에 돌부리를 보지 못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구덩이에 발이 빠지며 자빠져 무릎에 피가 나기도 하지. 나는 그럴수록 돋보기를 더욱 눈 가까이 장착했고.

우리는 시선이 다른 것이지. 나의 돋보기를 네게 씌우면 너는 온통 흐릿해 너의 길을 가지 못하겠지. 내가 그걸 미처 몰랐구나.


먹으면 배에 가스가 차고 방귀를 뀌는 것처럼 모든 것이 그저 자동반사였을거야. 내게 들어온 음식이 그런 모습으로 배출되고, 네게 들어온 음식은 또 그런 모습으로..

그런데 말야, 산다는 게 그런 자동반사를 어떻게든 조절해 보려고, 그 엄청난 중력을 거스르는, 그래서 자신을 극복해 가는 여정이란다.

네게 티끌 하나 묻지 않길 바랐던 것은 나의 그릇된 욕심이었다는 걸 느낀다. 내가 그러했듯이, 지금도 그러하듯이 그 티끌이라는 결핍이 네 성장의 이유가 될 터인데 보호하려고만 하다가 네게 나를 너무 많이 묻혀버렸구나.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귀하고 너무나 귀한 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구나. '너와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성숙해 갈 수 있도록 신의 향기로 저희를 인도하소서...'

 


열일곱의 아들에게 엄마가.......




#사춘기 #엄마의 마음 #사과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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