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다고도 자랑할 수 없는, 대단치 않는 곳이라 가지 말자는말에 놀랐다. 여행이 누구를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여행이 아니던가?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인가? "나 여기에 갔다 왔다." 보여주는 장식장에 놓일 수 없다면 의미가 없는 것인가?
감동 없는 전시회 사진을 찍어 올리고, 읽지도 않은 책을 침대에 널브러 뜨리고 사진 찍는 것과 뭐가 다른 거지?
타인의 찬탄보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감동이 중요하다. 셀프브랜딩을 강조하는 요즘 시대에는
'취향이 없는' = '내가 없는' 것이될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 것도 나쁠 건 없다. 파리를 남들이 좋아하는 코스로 하루에 휘리릭 다 보니 좋긴 하더라. 유럽에서 2주 동안 자주 못 본 한국사람들이 그 코스에 몰려 있었다!
어쨌거나, 어디에서든 <좋아서 하는 여행>이 좋아서 마음을 따라간다. 런던에서 공원과 시장을 중점으로 다녔다.
보헤미안 플레이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만난다. 길 가다 얻어걸린 셈인데 커다란 철제문 안쪽이 떠들썩했다. 흥겨운 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너무나 궁금해서 얼굴을 넣고 빼꼼히 보다가 어깨를 넣고 용기내어성큼 들어선다. 놀랍게도 체격이 큰 흑인들이 잔뜩 있다. 다른 인종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축제인 것 같아서 잠시, 아주 잠시 주저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간다. 이게 웬 떡이지. 몰랐던 곳을 방문하게 되었네.
화려하게 입은 그들 사이에 더 화려한 물품들이 즐비했고 그것들을 살 생각이 없었지만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져서 시간을 보낸다.
중간에 비도 내려서 마켓에서 나와서 카페에 들어가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예상외로 비가 금세 그쳤고 햇살이 나와서 비를 맞고 걸어도 아무렇지 않은 자유로움이 느껴져서 좋았다. 평소에 줄 서서 먹기를 지양하지만 그곳을 기억하고 싶어서 기꺼이 사탕수수 음료 줄에 선다. 얼마나 맛있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줄을 선 거지?
주문도 만들어 주는 방식도 흥미로웠는데(동영상을 찍었어야 하는 아쉬움) 리드미컬하게 그들이 만들어 준 모히또는 알찼다. 손으로 한 움큼의 민트잎을 가득 담아 준다. 기다린 시간도 7.5유로나 되는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특별한 맛이다. 친환경 빨대와 사탕수수가 들어간 모히또는 독특한 맛으로 완벽하게 사랑스러운 시간을 선물한다. 원래 기대이상이면 기억에 강하게 남나 보다. 계획하지 않았던 곳이어서 계획했던 다른 마켓들보다 먼저 떠올랐다. 인스타 온라인에 올리지 않았다면 (폰도난으로 )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서 영영 사진으로 남지 못 했을 그 한때들. 정겨운 그 시간들.
런던 브로드웨이 마켓은 외부에서는 있는지 알 수 없고 내부에 들어가면 시끌벅적한 곳이다. 사람들이 많고 진열된 물품들, 먹거리가 다양해서 가다, 서다, 보는 즐거움이 크다. 많은 거리 한편에서 레게머리를 한 가수가 노래를 한다. 이렇게 멋진 광경을 놓칠 수는 없지. 음악감상비용이라고 생각하면서 10유로나 하는 거액을 길거리 토스트에 기꺼이 지불한다.
너무도 수준급의 음악이라 이런 음악을 들으며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나는 행운아야.
흠, 이 토스트 진짜 맛있다. 다시 와서 먹고 싶은 맛이 잖아! 주문형 토스트로 안에 넣는 내용물도 서브웨이처럼 개별 주문이지만 주문자 이름까지 저장해 둬서 토스트가 나왔을 때, 스타벅스처럼 고객의 이름을 불러주는 특별함까지 있어서 좋았다. 그곳에서 오롯이 살아있는 나를 느낀다.
처음 런던에 도착했을 때가 떠오른다.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순간 든 생각은 이랬다.
'나, 영국사람? 여기에 살고 있었네.'
너무나 편안하고 익숙한 그 느낌을 무어라 표현할까. 살고 있었던 것 마냥 전혀 낯설지 않은 친근한 느낌이 다가오면서 어색하지 않게 여행 첫날을 맞이했는데, 벌써 주말이구나.
갑자기 귀에 익숙한 올드 팝송이 들려온다.
브로드웨이 마켓 한쪽에서 백발의 노익장을 과시하는 할아버지가 옛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훌륭한 실력은 아니지만 그 연세에도 자신 있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멋져 보인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무엇가를 향한 열정이 부럽다. 열정으로 감동을 준다면 매 순간이 청춘이 아닐까? 청춘할아버지 감사해요. 저도 당신처럼 살고 싶어요.
템즈강 앞, 햇살 속에서 도시락을 까먹고 다리를 건너며 바라보는 ‘더 샤드’가 빛난다고 생각한 어느 화창한 날. 얻어걸린 버로우 마켓.
버로우 마켓은 원래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서 못 가겠구나 싶었는데, 우연히 만났을 때 기쁨이라니. 다양한 나라의 음식과 식재료를 판매하고 있어서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음식 향내가 '흥겨웠다' 도시락을 먹어서 이미 불러버린 배와 냉장고에 넣어둔 음식이 원망스럽구나. 아쉬운 마음으로 터널터널 걸어 나오다가 여기에서만 맛볼 수 있는 건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신나게 돌아선다.
'배부르지 않고 상하지 않는 음식은 뭐지?'
'맞다. 캐러멜!'
초콜릿 캐러멜, 메이플 초코민트, 솔트 캐러멜을 골라담으니 행복하다. (나중에 파리에서 당 떨어질 때 큰 힘이 되었다. )
마켓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런던여행. 콧노래를 부르며 버로우 마켓을 빠져나왔는데 또 이어지는 맛집 행렬!
이분들은 야외에서 서서 대화를 나누며 먹어서 더 먹고 싶게 만든다. 도시락을 먹었어도 캐러멜을 샀어도
놓칠 수 없지. 도넛 가게에 줄을 섰다. 한국에서는 찾기 어려운 맛들로 이미 샀는데 한국어가 들려왔다.
“벌집이래”
아, 달고나를 도넛에 넣은 줄 알고 패스한 도넛이 '벌집 도넛'이라는 말인 것 같았다. 벌집 도넛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