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무언가를 쓰고 싶었다.
말보다는 행동, 행동보다는 글이 편안했던 나는, 늘 무언가 의미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상상력이 부족한 내게 그건 적어도 소설이 아니라는 건 알았다.
내 안에는 출구 없는 생각들이 아우성쳤고, 갈피 없는 생각을 지면에 온전히 담을 필력과 체계적으로 글을 시작하고 마무리할 수 있는 이성과 논리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적어내려가지 않으면 일상을 영위하는 데 너무나 많은 힘이 들었다. 대개는 부정적이었고, 자기비하적이고, 염세적인 생각들이었다.
초등학교까지는 내향적이긴 하지만 대체로 매우 장난스럽고 천방지축 까불거리는 왈가닥 소리를 듣던 나는 중학교 생활을 시작하고서부터 학교를 가는 일상이 버거웠다. 상당히 많은 날들을 내일 제발 눈을 뜨지 않게 해달라, 거나 내일이 오지 않게 해주세요, 라는 등의 애원과 함께 잠들었다. 돌이켜보면 그건 사춘기가 세게 왔기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누구에게나 그 시기가 그렇듯 여러 예상치 못한, 즐겁지 않은 순간들을 겪어가며, 내게 우울감은 사춘기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우울'증'으로 머물렀던 것 같다.
사춘기 무렵의 방황과 좁은 시야, 익숙치 않은 설렘이 동반한 풋사랑이 한꺼번에 찾아오면서, 대부분의 나날을 가라앉은 기분으로 흘려보냈다. 그 와중에 공부는 '해야하는 것'으로 인지하여 땅 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기분과 집중을 할라치면 졸음이 쏟아지곤 하는 몸뚱이를 윽박지르고 꼬집고 필사적으로 싸워가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외웠다'. 나는 엄청나게 똑똑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아주 뛰어나진 않았지만 그럭저럭 중위정도 되는 성적을 유지하곤 했다. 그정도를 유지하는 것조차도 내겐 꽤나 힘에 부치는 일이었지만, 제 3자의 관점에서 보이는 나는 그저 좀 조용하고 차분하며 성실하게 공부하는,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모든 과목을 그저 '외웠기' 때문에, 나는 어떠한 지식도 적절히 학습하거나 습득할 수 없었다.
내가 무얼할 수 있을까?
학창시절부터 아무리 고민하고 생각을 해봐도 나는 하고 싶은 게 또는 잘 하는 게 없었다.
당시 유일하게 끊임없이 좋아하는 건 강아지였기에 잠시 수의사라는 직업을 꿈꾸기도 했지만, 성적이 택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게나 소모적이고 힘에 부치는, 흥미도 재미도 없는 공부를 1년이나 다시 할 자신도 없었다.
운이 좋게 마지막에 쓴 대학이 대기 끝에 붙었고, 대학은 중고등학교와는 다르게 내가 듣고 싶은 수업, 어울리고 싶은 이들과 학교생활을 하면 되었다. 조별 활동을 하거나 발표, 토론이 있는 수업은 최대한 피했다.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혼자 듣는 강의가 편했고, 그래도 밥을 혼자 먹기엔 외로웠기에 안면을 튼 친근한 이들과 날을 정해 점심과 저녁을 먹었다. 남들 다 간다는 술자리, 엠티, 동아리에도 몇번 껴보려 노력했지만 도무지 적응을 할 수가 없었다. 다수와 조직에서 나는 늘 소속되지 못한 채 겉돌았고, 시간이 내 곁에서 부유했다.
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되니 너무나 두려웠다. 나는 여전히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알지 못했고, 사회적으로 갈고 닦인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운이 좋았고, 마지막으로 지원한 회사에 합격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