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기자 Jun 07. 2023

월세는 허상이다

나쁜 집주인

꽤 오랜 기간 서울에서 손꼽히는 교통의 요지에 살았다. 핫플, 인스타 맛집 등등 유명한 곳은 걸어서 갈 수 있었고 천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한강이 나왔다. 전시회 등에 갈 때도 부담 없었다. 지하철 역이 코 앞이어서 어딜 가든, 그리고 얼마나 늦게 오든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약 3달 전, 집 주인이 보증금을 갑자기 10배로 올린다고 했다. 반전세로 바꾼다는 뜻이었는데 정말 황당했다. 안 그래도 집이 너무 좁아졌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의 이사는 기분이 너무너무 더러웠다. 이 더러움은 정말 당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보증금 10배. 1000만원이 1억이 되고, 2000만원은 2억이 된다. 아직도 그 집주인이 도대체 뭔 정신머리였는지 모르겠다. 그 집에 융자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얼마인지는 까먹고 있었다. 그 때쯤 다시 확인해 보니 시세의 절반이 융자로 잡혀 있었다. 이런 집에 보증금 대출을 해줄리도 만무하며, 내 돈으로 보증금을 낸다 하더라도 매우 어려울 뻔했다. 와 생각할 수록 나쁜 집주인이네 진짜.


픽사베이


어찌저찌 지금은 주거 환경은 좋아졌지만 교통이 덜 좋은 곳으로 이사왔다.


그러면서 내가 느낀 것은 교통 좋은 곳의 월세살이는 허상이라는 거다. 언제든지 나갈 준비를 해야 하며, 내가 그 지역에 살 만한 경제력이 있다는 걸 증명해주지 않는다.


집을 구할 때 기준은 월세일 때 다르고, 전세일 때는 또 다르고, 당연하겠지만 매매일 때는 더 다르다.


요즘 전세이슈가 너무 커 관련 기사를 자세히 보는데 한 때 정치권 및 전문가들이 전세 대신 월세 살라는 이야기를 참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진짜 뭔 생각인가 싶다.


그리고 전문가들이라고 나와서 하는 말이 지금 집 매입하지 말고 더 기다리라고 말들을 많이 한다.


집 없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사 나올 때 에피소드가 두 개 있는데, 경비 아저씨들이 워낙 관리를 잘해주시고 친절하셔서 전날 롤케익 두 개를 드렸다. 교대하시는 분께도 부탁드려요 하고. 그리고 이사 당일 정신없는 와중에 경비아저씨 한 분이 올라오셨다. 너무 고마워서 그냥 갈까봐 얼른 올라왔다고 잘 살라고 하셨다. 이사가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나머지는 이거다. 짐을 모두 빼고 부동산에 카드키며 비밀번호며 다 알려줬는데 보증금이 아직 안 들어온거다. 부동산에 따졌다.


"보증금 받기도 전에 이렇게 다 줬는데, 임대인은 전화를 안받는다는게 말이 되나."


그렇다. 그는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새 세입자는 버티고 있는 나를 두고 집을 막 청소하고 있었다...나는 부동산 실장이라는 사람에게 계속 따졌고, 참다가 내가 집주인에게 전화하려는 찰나 입금됐다는 알림이 떴다. 사전에 10시30분에 모든 것을 완료하기로 약속한 상태였지만 그로부터 시간은 30분 더 지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집주인이 누군지 정말 주의하라고 공개하고 싶을 정도다. 그 집주인은 얼마 되지도 않는 보증금으로 왜 이 난리를 치나,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성실하고 약속을 지키는 상식적인 집주인이 되자. 임차인도 성실하게 집을 관리하고 집세를 납부할 의무가 있지만, 집주인도 똑같은 의무가 있다. 그리고....가능하면 집주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ㅜ

작가의 이전글 혼밥하는 사람한테 아주 가끔 일어나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