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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샷뜨아 Apr 04. 2023

억울해하는 아들에게

감정을 다스려서 지혜롭게 살길 바라.

평소와 달리 친구도 없이 혼자 하교를 하고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걱정스레 물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평소보다 조금 늦었네. "

아들은 남아서 청소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제도 청소했다고 하지 않았어? 돌아가면서 청소 당번하는 거야? "

"아니, 청소당번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청소를 하고 가야 해. "

규칙을 어겼다는 말을 듣고 아이에 대한 불안감이 나를 엄습해 온다. 주위 신경 쓰지 않고 장난치는 모습들이 그려졌지만 예전 같지 않을 수도 있기에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 했다.  

"어떤 규칙을 어겼어? "

"좌측통행을 안 했어. 이번에는 안 하려고 한 거 아닌데 까먹었어."

"아~ 좌측통행을 안 지켰구나. 6학년이 되니 다르긴 하네 "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고 친 게 아니라서 다행이고 피해를 준 게 아니라서 또 다행이다. 

5학년까지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녀도 학교에서 큰 가이드만 주었지 특별히 제재를 가하지 않았는데 6학년이 되니 여러 가지 규칙과 처벌이 생겨난 듯했다.  

"좌측통행 중요하지. 가는 길 오는 길을 구분해야 서로 부딪히지 않으니까. 그런데 복도에서 선생님이 감시하고 계셨던 거야?"

"아니, 암행어사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 발견되면 이름이 적혀"

나로서는 친구끼리 감시하는 제도가 낯설고 과연 공정할지 조금 염려되기도 하다. 어찌 됐든 규칙을 지키지 않았으면 벌 받는 건 당연한 건데 왜 이렇게 억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어제는 장난치다가 안 지켰고, 오늘은 일부러 안 지키려고 한 게 아닌데 걸렸어. "

"그럼 선생님께 말해보지 그랬어." 

"소용없어. 암행어사 친구한테 말하면 되는데 누가 암행어사인지 몰라. " 

드러내놓고 감시하지 않으니 적어도 감시하는 자와 감시당하는 자가 얼굴 붉힐 일은 없을 것 같다. 친구들 사이에서 불만과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있기에 현명한 방법인 것 같기도 하다. 

"아들, 일부러 한 거 아니라고 해명하고 싶었는데 해명할 수 없어서 많이 억울했겠구나."

"응, 맞아. 진짜 일부러 한 거 아니라고. 실수한 건데.." 

'규칙이란 그런 거야. 의도가 어떻든 간에 결과를 보고 판단해.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책임을 져야 해. 규칙이란 게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만들어 놓은 최소한의 약속이거든. 설령 아무 피해가 없었다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바뀌면 규칙은 유지되기가 어렵겠지. 이제 너도 최고학년이 되었으니 규칙을 잘 지키는 법뿐만이 아니라 규칙을 지키지 않았을 때 책임을 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거야. 억울해할 필요 없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주절주절 옳은 말만 하면 아이는 듣지 않을게 뻔하다. 대신 나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엄마가 5학년 때 학교 복도에서 뛰지 말라는 규칙이 있었어. 그때는 나무로 된 복도였는데 뛰면 소리가 많이 났거든. 쉬는 시간에 같은 반의 장난꾸러기 남자아이가 엄마를 놀리는 바람에 잡으러 뛰어갔어. 복도에서 뛰면 안 된다는 규칙을 알고는 있었지만 쉬는 시간이었고 선생님도 안 보여서 괜찮을 줄 알았지. 그런데 마침 휴게실에서 나오는 다른 반 선생님에게 딱 걸렸지 뭐야. 엄마는 그 선생님 이름을 절대 잊지 못해. "김. 무. 식" 선생님. 몸집도 크고 목소리도 커서 무서웠는데 다짜고짜 엄마 뺨을 후려치는 거야. 맞아. 네가 광고에서 듣고 재밌다고 곧잘 따라 말하던 '싸다구'였어. 그래서 엄마는 그 단어를 좋아하지 않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뺨을 맞은 엄마는 아프기도 했지만 아픈 것보다 기분이 안 좋았어. 너무 놀라서 울지도 못했어. 만약 그때 규칙을 지키지 않은 벌로 청소를 시키고 반성하게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어때? 엄마 너무 억울했겠지? "    

"엄마 많이 아팠겠다. 나 내일은 좌측통행 잘 지켜서 청소 안 할 거야. "

"그래. 의도가 어떻든 간에 잘못한 건 인정하고 안 그러도록 노력하면 돼." 

아들의 억울함은 사라졌을까? 자극이 센 이야기를 듣고 본인의 감정이 무뎌진 것은 확실하다. 


아들에게 차마 얘기하지 못한 뒷이야기가 있다. 나 때문에 억울했을 아이가 있었음을 밝히지 못했다. 복도를 뛰어다녔던 건 두 사람이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다른 반 선생님께 뺨을 맞은 건 둘이었는지 혼자였는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워낙 충격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담임 선생님은 다른 반 선생님께 벌을 받은 아이들을 추슬러서 교실로 돌아갔고, 교실의 모든 아이들이 뒤늦게 들어온 우리를 쳐다보았다. 자리에 앉은 순간 나는 수치스러움과 민망함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고개를 파묻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담임 선생님은 무슨 상황이었는지 자초지종을 물으셨고, 쫓는 자에게는 이유가 있었기에 울먹거리며 말씀드렸다. 주위 친구들은 우는 나를 토닥여주고 남자아이를 흘겨보았다. 쫓기던 남자아이는 장난을 유발했다는 이유로 엎드린 자세로 회초리로 엉덩이를 세 번이나 맞았다. 나는 그 아이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고 다만 나의 슬프고 억울하고 아프고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감정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그 아이는 울지 않았던 거 같다. 꽤나 아팠을 텐데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그날 일이 생각났다. 장난은 같이 쳤는데, 그 아이는 나 때문에 더 크게 혼이 났다. 분명 억울했을 것이다. 용기 있게 설명하지 못한 어렸던 내 모습이 후회되고, 누구보다 억울했을 그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폭력에 무방비였던 우리는 어떤 대응도 하지 못했고, 더욱이 개인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었다. 반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아들은 본인의 입장이 가장 중요하고,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크게 보인다. 나의 아들은 부디 감정을 잘 다스려서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길 바란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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