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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들과 엄마

엄마는 프랜들리 해.

by 뚜샷뜨아

결혼과 동시에 나에게 찾아온 첫째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이다. 나의 육체를 통해 직접적인 관계를 맺은 아이. 탯줄 하나로 이어져 10개월 동안 나와 교감하던 아이를 잊을 수 없다. 나에게 '엄마'는 당연하고 원래 있었던 절대 불변의 존재였다. 첫째 아들이 '엄마'라는 존재에 신비롭고 위대한 가치를 추가해 줌에 따라 가족이라는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 특별한 존재로 인해 나의 세상이 아름다워진 것은 아니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숨 쉴 틈 없이 이어진 양육은 고통에 가까웠고, 나의 감정을 무디게 만들어 '나는 모성애가 없는 사람인가?'를 고민하기도 했다. 육아서에 적혀 있는 지침들은 나의 아들에게는 통하지 않았고, 간혹 아프기라도 하면 내 탓 같았다. 이렇게 서툰 엄마의 양육 방식으로 오히려 아들이 불안하지는 않았을지, 미안함이 있다. 그래서 첫째 아들은 나에게 늘 아픈 손가락이다.


'나에게 첫 번째로 찾아와 준 아들은 천사'라고 말하면 모성애가 있어 보일까? 자고 있는 모습은 날개 없는 천사 마냥 예쁘지만 깨어 있을 때는 천사보다는 외계인에 더 가깝다. 외모도 성격도 마냥 예뻐 보이지 않은 것이 그 이유다. 내 속에서 나왔지만 신기했다. 분명 내가 배 아파서 나은 아들인데 남편을 닮았다. 남편의 어릴 적 사진과 비교해서 누가 누군지 모를 만큼 닮아 있을 정도이다. 자세히 보아야 미간의 거리와 하관의 모양은 나를 닮아 있기도 하다. 엄마와 아빠 얼굴이 콜라보가 잘 되어 개성 있는 얼굴이랄까. 하지만 닮은 외모 때문에 행동이 미워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첫째 아들은 이 세상에 모든 것을 흡수하려는 외계인처럼 엄마 아빠의 모습을 스펀지 흡수 하듯 따라 했다. 아이를 통해 남편과 나의 흉한 모습을 보게 될 때는 냉수마찰 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고, 후회와 부끄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럴 때마다 어리고 순수한 아이가 세상에 잘 적응해서 살아갈 수 있게 하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실수와 깨달음을 반복하면서 부모의 세계로 품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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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그만 봐라, 바르게 앉아라. 주의 좀 잘 보고 다녀라.' 별별 잔소리를 매일 같이 반복하지만 올해 중학생이 된 외계인 아들 귀에는 방음벽이 있나 보다. 비록 나에게 아픈 손가락인 첫째 아들이기도 하지만 불쌍하다고 편하게 두면 인간이 될 것 같지가 않아 걱정이다. 나의 진심이 제대로 통하고 있는 건지 첫째 아들과의 관계를 가끔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어느 날 아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주면서 가볍게 물어보았다.

"네가 생각하기에 엄마는 어떤 사람인 것 같아?"

소리 지르는 엄마, 욱하는 엄마, 잔소리하는 엄마라고 말해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참이었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서 함께 높아진 잔소리 데시벨이 관계에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미쳤기 때문이다.

"음.. 뭐랄까.. 엄마는 프랜들리 해."

갑자기 영어로 말하니까 당황스러운데, 오해하지 말자. 아이가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다. 요즘 외우고 있는 영단어 인 게 틀림없다. 보편적인 아들을 둔 엄마의 대화처럼 아들 말을 해석하기 위해 스무고개를 시작한다.

"그게 뭐야. 엄마가 친절해? "

"응, 엄마는 친절해."

"뭐가 친절해? 맨날 너한테 소리 지르고 욕하는데? "

"그건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런 거잖아."

"그건 그렇지. 그럼 엄마가 혹시 허용적인 것 같아?"

"허용?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내가 원하는 거 다 하게 해 주지 않잖아."

"그렇지. 잘 아네. 그럼 엄마가 설마 친구 같아?"

"응, 난 엄마랑 친한 거 같아."


대화를 나누는 중에 여러 방면에서 놀라웠다. 본인이 잘못해서 야단맞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 영단어 friendly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전달하고 있다는 것. 엄마를 친구처럼 생각한다는 것. 그럼에도 엄마인 나는 현실과의 괴리감이 생겨서 계속 의심했다. 평소에 공감을 잘해주는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물론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관계가 바로 사소한 일이라도 수다 떨 수 있는 친구 같은 엄마와 아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답을 정해놓고 질문한 것이 결코 아니다. 아들의 생각이 진정 궁금했기 때문이다. 혹시 아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걸까? 우리는 통한 걸까? 우리 관계는 정말 이상이 없는 걸까?


아이의 말 한마디에 평생의 친구가 하나 생긴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는 아들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부족한 엄마이다. 하지만 늘 솔직하려고 애를 쓴다. 사랑하는 마음도, 의심하는 마음도, 불안한 마음도 솔직하게 보여주고 말해 주었다. 아들이 친구에게 대하는 표현 방식이 서툴러서 도움이 되고자 했던 것에서 시작했던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 우리의 관계에 도움이 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외계인의 탈을 쓴 인간에게 조금 더 다정하고 상냥하게 표현해야겠다. 나이스하고 프랜들리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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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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