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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혜 Dec 02. 2023

족제비 일기

ㅡ닭 잡아먹은 족제비 놓아 주러간다



담양의 집필실, 글을 낳는 집에 머무를 때 일이다.

닭이 잇달아 죽어나갔는데, 그게 다 족제비 소행이었다.

물샐 틈 없이 막고 또 막아도 족제비는 뚫린 공간을 만들어내고 어디론가 잠입하여 닭을 물어뜯었다. 잡은 닭을 끌고나갈 수 없으니 겨우 몇 점 먹고 저만 빠져나가길 수차례. 드디어, 어느날 아침 닭장 안에 넣어놓은 덫에, 삽겹살에 족제비가 걸려들었다.


실물로 처음 보는 족제비였다. 단추처럼 동그란 눈이 반짝. 귀여운 외모에 속으면 안 된다고 할 정도로 사랑스러운 모습을 가진 녀석. 족제비가 덫을 빠져나가려고 파닥파닥거리다 지쳐서 멈추었다, 다시 탈출을 시도하다. . . 저 녀석, 어쩌나. 그동안의 만행과 상관없는 마음이 일어났다. 어쩌나. . 그렇지만 살려주길 바라는 마음을 감히 비칠 수는 없었다. 글집 촌장님과 사모님이 얼마나 속을 끓였는지 알고 있었으므로 족제비 앞에 너무 오래 머무는 것도 송구했다.


그런데 촌장님이 족제비를 놓아 주러 간다고 하셨다. 족제비를 자동차에 태우는 모습은 성자와도 같았다. 족제비가 찾아오지 못할 만큼 먼 곳으로 가서 풀어준다고 하셨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을지. 예사롭지 않아 보이던 족제비, 덜컹덜컹 차에 실려가면서 약도를 그리고 외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보다 뛰어난 감각을 가진 동물 아니던가. 아내나 남편이 기다릴지도 모르는 일.



문장 웹진 11월.  아르코창작지원금 발표지원금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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