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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의 청춘 Feb 04. 2021

코로나 블루 시대, 나의 스위트 홈

스위트 홈이거나 쉬트 홈이거나

글: 이주혁 / 표지 그림 : 로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은 틀렸다. 접촉과 어울림이 세상을 무너뜨리고, 지난 2020년을 빼앗아갔다. 밖에 나가지 않을수록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날을 앞당길 수 있는 뼈아픈 역설의 시대에, 이제 집은 철저하게 ‘비대면 인간들의 소우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갈 곳 없는 날들과 나갈 수 없는 집


유튜브를 보며 요가를 한다.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내린다. TV 리모컨을 들고 영화 목록을 끝없이 탐색한다. 화상 통화 버튼을 슬쩍 눌러본다. ‘슬기로운 실내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 새벽에 배달된 식자재로 요리를 한다. 택배 기사님은 이 시대의 구원자인 것만 같다. 괜히 이곳저곳의 먼지를 닦는다. 계속 문지르다 보면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 램프라도 마주한 기분이다. 딱히 갈 곳도 없지만 ‘제발 이 집에서 자유롭게 나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해본다.


어제는 넷플릭스로 좋아하는 뮤지컬 실황을 감상했다. 몇 번을 봐도 지루하지 않은 <레 미제라블>의 25주년 기념 공연이었는데, 들을 때마다 감동받는 넘버 ‘One Day More’는 의젓하게 넘어가놓고, 꽤 이상한 지점에서 눈물이 맺혔다. 카메라가 기립 박수를 치던 수천 명의 관객을비추던 장면이다. 사람들 사이의 꽤 가까운 거리, 얼굴에 번지는 웃음과 환희에 찬 표정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마스크 없이 환한 미소가 생경했던 탓이다. 실소가 터졌다. 그 웃음이 어색해 또 울컥했다. 저 문밖에서 이를 드러내며 웃을 날이 아득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 블루의 시대, ‘즐거운 나의 집’은 어디에


영어로 “Home, Sweet Home”이라고 표현하면 “역시 집이 최고야. 어딜 가도 집 같은 곳은 없어”라는 뜻이다. 누구나 즐겨 쓰는 이 표현은 영국의 음악가 헨리 비숍 경이 지은 1823년 오페라 <클라리, 밀라노의 아가씨>라는 작품에 처음 등장했다.      


Home, home, sweet, sweet home.

집, 집, 오, 즐거운 나의 집.

There’s no place like home, there’s no place like home!

세상에 내 집처럼 좋은 곳은 없어.      


Sweet home, ‘즐거운 나의 집’이라고 번역된 표현 속에서 흔히 ‘달콤한’이라는 의미로 알고 있는 ‘Sweet’라는 단어도, 어떤 상황이나 상태가 마음에 들 때, ‘좋은’이라는 뜻으로 쓰이기 때문에 ‘즐거운’이라고 번역됐을 테다. 좋은 일이 있을 때, “Oh, That’s so sweet. 정말 마음에 들어”라든가, 꽤 괜찮고 좋은 사람을 표현할 때, “He’s so sweet. 그는 정말 다정해.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걸 보면, ‘sweet’라는 단어가, 집을 뜻하는 ‘Home’ 앞에 온다 해도 굳이 ‘왜’라며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만 같다.

 

즐겁고, 좋은 공간이자 마음에 드는 공간, 집. 사전에 등장하는 집은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해 지은 건물’을 뜻한다. 칼바람 부는 생업의 전쟁터로 나갔다가도 동물의 ‘귀소본능’처럼 돌아오는 게 자연스럽고, 지친 몸에 휴식을 허락하는 안온한 공간. 온전한 자유와 편안함을 허락하는 나만의 장소. 2020년, 끝이 보이지 않던 한 해를 보내며 집을 묘사하는 표현에 무언가가 빠졌다고 느끼는 건 나뿐일까. ‘감염병으로부터 나와 우리를 지키는 공간.’


코로나19 대유행은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에 ‘나를 격리하는 곳, 그동안 밖에서 하던 일을 해내야 하는 곳’이라는 새로운 기능을 부여했다. 자가격리라는 단어가 일상이 된 시대라서일까. ‘격리’라는 단어가 이젠 그리 어색하지도 않다. 1년쯤 지나자 먹고사는 일부터 운동 방식, 모임의 형태가 송두리째 바뀌었다. 영화 감상, 쇼핑, 취식의 행태도 달라졌다. 비단 일상만 변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직업과 꿈까지 바꿔야 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것을 뒤흔들고, 불확실성의 안개를 드리웠다.   

       

불확실성의 안개 속에서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

나라고 이 안개 속에 자유로울 재주는 없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일하며 4년이란 시간을 보내다 그곳의 코로나19 확산세가 걷잡을 수 없자 황급히 귀국했다. 이 막막한 시간이 1년이나 흐를지 몰랐기 때문에 ‘한때 즐거웠던 나의 집’을 두고 떠나왔다. 금세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딱히 돌아갈 방법이 없어 발 한 번 들이지 못하고도 10개월째 월세를 부치는 나의 입은 쓰다. 그러니 이런 내게 ‘Sweet Home’에서 ‘Sweet’라는 단어처럼 무용하게 느껴지는 것도 없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일을 시작했다. 라디오 방송 작가로 일할 기회였다. 말레이시아의 스위트 홈이 눈에 아른거려 고민도 했지만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불확실성의 기운이 나를 집어삼키기 전에 내 안전을 보장해줄 ‘집’이 필요했다. 집에서 거리가 꽤 먼 방송국을 매일 오갈 자신이 없어 급히 집을 또 구했다. 방송과 원고 작성 빼곤 딱히 다른 일상도 없지만 버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 행운이라면, 나는 이 행운을 천운이라고 기록하고 싶다. 그 공간이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기능한다는 것 말고는 ‘이 시국’엔 작은 불평도 쉽게 할 수 없다.


생방송 원고를 매일 쓰다 보니 들리는 거라곤 타닥거리는 키보드 소리와 적막한 공기를 채우려 틀어놓은 TV 소음뿐이다. 가끔 “쓰레기가 많네”라고 중얼거리거나 빨래를 널다가 허리가 무거워 한숨을 내쉬는 것 외엔 입을 뗄 이유도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을 마주치면 마스크를 슬쩍 올려 쓰는 시늉이라도 해야 마음에 부담이 없다.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라는 메시지가 허공에 부대끼며 여기저기로 튕기는 것만 같다.


내 의지대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하루아침에 바뀐다는 건 생각보다 큰 일이다. 삶의 거점이 원하지 않은 방법으로, 바라지 않은 때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은 생각 조차 해보지 못했다. ‘어떤 것에도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까지 잘 버텨왔다고 착각했다. “대체 이건 누구의 잘못일까”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해답은 없었다. 그 누가 이런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이제 세상에 가장 확실한 건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것뿐이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선험적 교훈이다. 불확실의 파도를 넘으며 버티는 힘을 기르는 것밖에는 누구에게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세상이 불평등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집 밖으로 나가며 가장 소름 끼치는 순간이 마스크를 두고 왔을 때라는 현실 앞에서 순식간에 모두 평등해진 세상이 왠지 처연하다.


불확실성의 세상에서 ‘불혹’을 위해 애쓰며, 더 오래 버티는 방법을 궁리 중이다. 집에서 벗어나지 않을수록 집을 더 빨리 벗어날 수 있는 역설의 시대에, 미소를 숨길수록 더 빨리 미소를 보일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가만 있자, 그때까지 나를 지킬 곳은 이 작은 집밖에 없구나. 집(Home)은 어찌 됐든 스위트 홈(Sweet Home)이었구나. ‘즐거운 나의 집’. 커피나 내려 마시며 영화나 봐야지. 오늘따라 커피가 유난히 진한 건지, 입안이 껄끄러운 건지, 입이 쓰다.



글. 이주혁

EBS FM <최수진의 모닝스페셜> 메인 작가이자 요가, 스쿠버다이빙, 달리기를 즐기는 라디오 DJ. 카카오브런치 작가로, 삶을 투영하는 글을 쓰고자 합니다         

한국국토정보공사 LX [땅과 사람들] 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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