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생각해?'
한쪽 다리가 완전히 망가진 것 같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매번 다니던 길 저쪽에서 무슨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길래 방향을 돌려서 거기로 가려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쿵'하고 환한 무언가가 내게 돌진해 오더니 내 몸뚱이가 크게 휘청 거리면서 공중을 몇 바퀴를 돌다 떨어진 것 같아. 그런 이상한 느낌은 처음이었어. 진짜 정신이 없더라고.
엄청 쓰라린 느낌이 들었어. 몸속의 뭔가 크게 뒤틀린 것 같아. 어릴 때 동네 꼬마 애들 몇몇이 나를 발로 걷어찬 적이 있었어. 그땐 그냥 조금 상처만 나고 말았던 것 같은데. 그냥 내가 엄청 보기 싫은가 보다 싶었지. 길가에 나뒹구는 돌을 집어던지더라고. 그때 잠깐 옆구리에 날카로운 뭔가가 박히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그 뒤로 그 자리에 상처가 남았었어. 그땐 아찔했는데, 지금은 희미한 자국만 남아있어. 다행히 엄마가 잘 보살펴 줬거든.
엄마는 언젠가 나를 치었던 비슷한 것에 실려간 뒤로 본 적이 없어. 그래서 그 뒤론 그냥 엄마랑 자주 가던 곳 근처에서 터벅터벅 이리저리 돌아다녔던 것 같아. 친구들도 만나기도 했지만 다들 정신없이 사는지, 매일 만나진 못했었지.
그러다 일이 터진 거야. 매번 가던 길이었는데 왜 그랬을까? 그날 저녁 근처에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가 있었는지 그날따라 쓰레기가 많이 나오더라고. 근사한 음식들을 많이 버렸는지 비릿하면서도 동시에 달콤한 묘한 냄새가 났어. 매번 가던 길을 지나가던 것뿐이었는데. 그날 내가 정말 재수가 없었나 봐. 그렇게 빨리 뭐가 달려오는 건 정말이지 피할 수가 없더라고.
분명 그 안에 있던 사람도 뭔가를 느끼긴 했을 텐데, 그 집 같은 거대한 덩어리에서 뭐가 열리더니, 두 사람이 내리고 이리저리를 둘러본 다음, "나 개차나?"처럼 들렸던 말이랑 "차는 안 마가저써?" 같은 얘길 한참 나누다가 모로 누운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가자"라고 "내비드면 강 주게찌"라고 들렸던 무슨 말을 주고받다가 다시 상자 같은 거에 올라타고 굉음을 내더니 그냥 가버렸어.
너무 목이 마르더라. 놀라서 그랬나 봐. 몸이 축 늘어지는 게 느껴지면서 중심이 안 잡히더라고. 터벅터벅 걸어 다니고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게 하루의 즐거움이었는데, 이제 다른 쪽 다리에 힘을 주고 천천히 움직여야 되는 거 같아. 다리가 완전히 구부러진 것 같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요즘 이 동네에 사람들이 꾸준히 오진 않아서, 아무리 봐로 별로 건질 게 없더라. 그렇게 따지면 그날은 꽤 운수가 좋은 날이었는데.
어쩌겠어. 그냥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나 말고도 아프게 사는 애들은 많으니까. 그냥 이 동네가 조금 싸늘한 것 같아. 예전에 나를 발로 걷어찼던 애들 중에 어렴풋이 기억나는, 노란 모자를 쓴 애가 있는데, 음식을 잘 먹고 다니는지 덩치가 꽤 커졌더라? 보통 아침마다 무슨 보따리 같은 걸 매고 어디를 가는 것 같던데 오늘 갑자기 마주쳤어.
"아.. 얘 다쳤구나. 다리를 완전히 못 쓰게 됐네."
나를 바라보는 걔 눈동자가 보였어. 천천히 이리저리 나를 훑어보는 거 같더니 이내 "쯔쯔" 같은 소리를 내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시내 쪽으로 걸어가더라.
모르겠어. 오늘은 제대로 된 밥이라도 먹을 수 있을지. 길 너머로 얕은 물이 흐르는 데가 있는데 거기 가면 물이라도 좀 먹을 수 있어서 좋아. 근데 다리가 불편해지니까 오르락내리락하기가 힘들더라. 올라오다가 몇 번 데구르르 구를 뻔했지 뭐야.
밥도 못 먹고 흙먼지 날리는 도로가에 앉아 있었는데 날이 뜨거워서 그런지 현기증이 났어. 그때 노란 모자 애가 시내 쪽에서 뚜벅뚜벅 내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이더라. 또 걷어차러 오는 건가 싶었는데 갑자기 등 뒤에 있던 그 보따리 같은 데서 먹다 남은 치즈 버거 한 덩이를 던져줬어. 솔직히 냄새는 꽤 좋았는데, 나를 걷어차던 애가 던진 음식을 받아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좀되긴 되더라. 그래서 그 애의 노란 모자챙 아래로 보이는 파란 눈동자를 지그시 올려다봤어.
* 너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너의 뇌를 꺼내서, 대답을 찾고 싶어. '무슨 생각해?', '너는 지금 행복하니?', '지금 이런 내가 불쌍하니?', 머리를 쓰다듬어줘. 어서 말을 해줘. 내일 또다시 나를 찾아와서 네 점심시간에 먹다 남은 샐러드라도 던져줄 건지 말이야. 나한텐 계속 올 건지가 중요해. 그럼 결국 나는 너를 믿게 될 거거든.
몸이 뒤틀려버리고 나니까, 어딜 맘대로 다닐 수도 없어서,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꽃도 나비도 못 보러 가겠더라. 나비가 코 끝에 앉으면 약간 몽롱한 기분이 들어. 몸을 빙그르르 돌리거나 날갯짓을 할 땐 말이야. 세상에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다시 멀어지는 것만 같아. 가끔은 그렇게 세상이 내게 점점 희미하게 멀어지는 것 같기도 해.
잘 먹질 못해서 느낌으론 몸이 좀 가져워진 것 같은데, 불편한 건 여전한 것 같아. 한쪽 다리를 완전히 딛기가 힘드니 그냥 느리게 살아갈 수밖에 방법이 없는 거 같아. 시내라는 곳에 사는 어떤 애는 다리에 붙이는 바퀴 같은걸 달고 다닌다고 하는데 나에게 그럴 일은 생길 것 같지 않아.
말해봐. 지금 나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불쌍하니? 내가 가엾니? 아님 내가 한심해 보이니? 내 이름이라도 불러봐. 참, 어렸을 때 까까머리를 했던 꼬마 아이가 매일 나를 쓰다듬어 주면서 '스캇'이라고 불렀었는데. 원한다면 너도 날 그렇게 불러도 좋아. 내가 지금 불쌍해 보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나는 단 하나의 믿을 수 있는 아이가 필요해. 내겐 믿음이라는 게 제일 중요하거든. 날 때리거나 해치지 않고, 날 버리지 않고, 내가 곁에 있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그런 아이 말이야. 그럼 내 크고 두터운 꼬리를 흔들어 줄게. 배가 좀 고플 땐 힘들 수도 있겠지만. 걸어올 때, 언제나 멀리서도 나를 쉽게 볼수 있게 말이야.
그럼 멀리서 네가 나를 '스카아앗'이라고 부르는 희미한 소리에 '웡, 웡'이라고 두 번 대답해 줄게.
[1] 참고: 이 매거진 [아주 짧은 공상]은 실제 있었던 경험을 토대로 그 순간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상상하며 쓰는 짧은 소설을 공유하는 매거진입니다. 길을 가다가 다리를 다친 강아지를 보고 쓴 소설입니다.
[2] 글 속의 * 표시한 부분은 영화 <나를 찾아줘Gone Girl> 첫 대사를 응용한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