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 필수인 산책의 순간들
강아지들이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 세상을 탐험하는 시간. 하루 종일 참아온 배변을 할 기회. 다른 강아지들과 냄새로 정보를 교환하는 둘도 없는 파티 타임. 이 모든 걸 짧은 단어로 표현한다면 바로 '산책'이 아닐까 싶다. 뭐, 물론 '깐식!'이라든가 '먹어!', '옳지'에도 꼬리를 흔들며 좋아 하지만.
산책이란 두 글자에 꼬리를 신나게 흔들어 대는 건, 이제 막 한 살이 된 우리 주봉이도 예외는 아니다.
"주봉아, 산책 갈까?"라고 물으면, 이내 자기 침대로 가서 하네스를 끼울 준비를 하고 꼬리를 프로펠러보다 빠르게 흔들거나, 문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아이고, 종일 얼마나 나가고 싶었을까.' 싶은 마음에 미안해지곤 한다.
다만, 개집사들의 하루가 또 그렇게 녹록지만은 않다. 우리 강아지 사료값 벌려면 잠도 부족해, 밥도 먹어야 해, 일도 해야 해, 운동도 해야 해... 하루 종일 바쁜 마음으로 움직이다 쉽게 녹초가 되고, '아, 너무 피곤한데 산책 좀 건너뛰어 볼까?'라는 목소리가 귀에서 맴돈다. 최대한 하루 두 번은 산책을 시켜주려고 노력하지만, 마음과 몸이 분리된 것만 같은 날도 있으니 어쩌랴.
"아빠가 오늘 너무 힘들어. 주봉아. 산책 못 갈 것 같아."라고 아무리 진심으로 해명(?) 아닌 해명을 해도 주봉이는 아마 '아빠, 산책' 밖에 알아듣지 못할 텐데....... 나는 이내 한숨을 크게 쉬곤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하네스와 리쉬를 꺼내 온다. 요즘처럼 간간히 비 오는 날엔 부득이 산책을 하지 못할 때도 있는데, 비를 싫어하는 나도 아주 가끔은 비 오는 게 반갑다.
산책에 꼭 필요한 준비물은, 글쎄, 배변봉투, 하네스, 리쉬, 조금의 간식이나 물이다. 물론 이건 기본 준비물이지만, 내가 웬만하면 잊지 않고, 오로지 나만을 위해 챙기는 건 바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가진 에어팟.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듣거나 유튜브를 보려고 가지고 나가는 게 아니다. 나간 김에 전화를 길게 하자고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사람의 왕래도, 차들의 움직임도 적은 곳이다. 그래도 모두의 안전을 위해 주변 소음을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폰을 끼는 이유는 한 가지.
무례한 질문들이 무섭고 싫을 뿐
그냥 음악을 듣느라
못 들은 체하고 지나가고 싶은 것이다.
"몇 살이에요?" - 한살이요. - "잡종이라 한참 더 크겠네."
"얘는 종이 뭐예요?" - 믹스견입니다 - "아유, 어쩐지."
"잡종이라 건강하게 생겼네. 오래 살겠어." - 활동량이 많고 밥을 많이 안 먹어요 - "저런 잡종이 원래 그래."
"유기견인데 생각보다 엄청 이쁘네요." - 엄마, 아빠, 형제들도 다 예뻐요 - "어쨌든 누가 버린 거잖아요."
"엄마 쟤는 너무 말랐어. 징그러워." - 운동을 많이 해서 그래요 - "그래도 싫어. 색깔도 별로야."
"쟤는 처음 보는 애다." - 네, 저도 입양한 강아지예요. - "아유, 그럼 무슨 종인지도 모르겠네."
개를 보자마자 '웡! 웡! 으르렁!' 하면서 뛰어오는 아이들을 전혀 제지하지 않는 부모들도 많거니와 - 아이보다 먼저 '월월' 하고 소리 지르는 사람도 있으니 말 다했지.
주봉이는 어릴 때 '강아지다!'라면서 뛰어오며 달려드는 아이들에게 놀란 적이 많아서, 지금도 아이들을 보면 무서워하는데, 어느 날 주봉이에게 계속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이 있어서, 그 아이의 부모에게 "저기 죄송한데, 얘가 예전에 놀란 적이 있어서, 저희 개도 지금 불안해하는데, 혹시 아이들이 소리 좀 안 지르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했더니 "아, 쟤 무나 봐요? 싸나워요?" 라고 반문하더라.
오로지 내 선택으로 기르는 강아지 때문에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싶은 생각은 없거니와, 강아지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도 많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이전의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릴 만한 어이없는 사건 사고도 많은 세상이니까.
다만 그런 질문들이 나와 내 강아지가 세상을 무섭고 싫다고 느끼게 만든다는 걸 상대도 조금은 헤아리면 좋겠다는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나도 누군가와 마주칠 땐, 멀리서 잠시 기다렸다 가거나, 바디 블로킹을 하거나, 목줄을 항상 짧게 잡고, 반대편으로 길을 건너가곤 하면서 조심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우리 아이는 절대 물지 않아요.'라거나 '저희 개 원래 순해요.'라는 헛소리를 하기보다, 아무리 교육을 시키고 조심한다 해도 결국 개의 본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내 강아지가, 행여나 남을 물거나 놀라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노심초사의 마음으로 산책을 하기 때문에.
내가, 오늘 처음 보는 당신의 아이나 가족에게
엄마, 아빠를 하나도 안 닮았어요.
입양한 아이라서 그런가 보네요.
애가 참 말랐어요.
피부색 때문에 매력이 없네요.
성격이나 태도가 별론가요?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해치려고 드나 봐요?라고 함부로 입밖에 꺼내지 않듯, 종일 산책만 기다리면서 꼬리를 흔드는 주봉이가, 굳이 무례하고 뾰족한 아픈 질문들을 듣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으면 하고 바란다.
주봉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인간의 말과 단어가 채 몇 개 되지 않는다는 게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