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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의 청춘 May 06. 2019

라마단이 시작되었다

라마단을 이해하는 법, 그리고 유의해야 할 점들

이슬람력을 기준으로 '성월'이라고 부르는 라마단이 시작되었다. 이슬람력에는 윤년이 없기 때문에, 매년 라마단의 시작은 달라진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올해는 작년보다 이른 5월 5일 저녁이 라마단의 시작이다. 따라서 말레이시아의 무슬림들은 오늘부터 6월 3일 저녁까지는, 해가 뜬 후부터 다시 해가 질 때까지 물을 비롯한 음료수를 마셔도 안된다. 금연도 해야 하며, 껌도 씹을 수 없고, 극단적인 경우 '침도 삼키지 말라'는 얘기도 있다 한다. 요즘 쿠알라 룸푸르의 낮 최고 기온은 대략 33-34도인데, 이렇게 덥고 건조한데 물을 마시지 못하는 게 내가 보기엔 가장 큰 고역일 듯하다.


라마단 금식은 이슬람 성인인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아 선포하며 시작됐다고 한다. 그 이후로부터 무슬림들에게 라마단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기도' 그리고 '금식'이다. 라마단 기간 동안 기도는 하루에 5번을 하던 평소보다 한번 더 하게 되고, 식사는 하루에 딱 두 번 할 수 있는데 해뜨기 전 한번 그리고 해진 후 한번 가능하다. 이 금식을 통해 고통과 자비의 의미를 깨닫고, 타인을 위한 '자선'을 베풀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해뜨기 전에는 하루를 준비하는 식사를 하고, 보통 해가 지고 난 뒤 '부까 뿌아사 Buka Puasa (Break, Open + fasting의 의미, 즉, 금식을 깬다라는 말)' 한번 가족, 친지, 친구들끼리 모여 식사를 하곤 한다. 모스크에서 금식이 끝났다는 소리가 들리고 나면, 이프타 Iftar라는 의식을 통해 달콤한 대추야자를 깨물거나 죽을 먹어 속을 달래고, 제대로 된 식사를 시작한다고 한다. 한 끼만 굶어도 흔히 '당 떨어지는 느낌' 덕에 눈앞이 핑핑 도는 내게는 얼마나 힘들지 상상도 하기 힘들다.


지금부터 내가 그동안 이곳 말레이시아에서 지내면서 라마단을 겪은 경험들, 그리고 참고하면 좋을 점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무슬림 친구가 있다면 배려할 것들

무슬림 친구들이 금식을 하는 중이기 때문에, 무슬림 친구들에게 '밥을 먹자'는 뉘앙스를 주거나, 무슬림 친구들 앞에서 벌컥벌컥 음료수나 물을 마시는 건, 존중과 배려 차원에서 해서는 안될 일이다. 라마단 금식 기간 동안 물을 마시거나 식사를 할 수 있는, 금식에서 예외시 되는 유일한 사람들은, 노약자, 임산부, 어린이, 환자들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식사를 하지 못해 배가 고픈 사람들에게 '밥을 먹자'라고 말하거나, 입이 바싹바싹 마르는 사람들 눈앞에서 시원한 음료를 대놓고 마시는 건 매너 없는 행동이 될 수 있으므로, 차분한 분위기에서 따로 식사를 하거나, 배고프고 예민해진 사람들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혹시 부까 뿌아사에 초대되었다면

간혹 라마단 금식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하는 무슬림 친구들도 있다. 외국인이나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생소할 수 있지만, 무슬림의 전통과 종교적인 신앙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 부까 뿌아사(해가 지고 난 뒤에 다 같이 모여 함께 하는 식사)에 초대되었다면, 기쁜 마음으로 응하고, 하루를 함께 해보는 것도, 무슬림 친구의 제안과 초대에 대한 존중의 의미일 수 있다. 물론 무슬림들이 금식을 절대로 억지로 권하지는 않으니 지레 겁먹고 부담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

보통 이 기간의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나 중동 지역들은 위치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보통 '건기'에 해당한다. 심지어 오늘 말레이시아 기상청에서는 지금부터 9월까지 '혹독한 더위'가 찾아올 거라며 건강에 각별히 유의하라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덥고 건조한 날씨에서 음식도 먹지 않고, 물도 입에 대지 않으며 하루를 견뎌 내기는 건강한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무슬림들이 일하는 회사나 관공서들은 무슬림들의 업무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감안해, 업무시간을 단축하거나, 업무량을 줄이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무슬림들과 거래가 많은 사람이나 회사라면 라마단 기간 업무 진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감수해야 한다. 무슬림들이 운영하는 식당은 문을 닫을 수 있기도 하다.

음식에 손을 대지 않고 모두가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풍경

힘은 없지만, 쇼핑은 하고 싶어, 소비의 절정

무슬림들에겐 라마단, 그 뒤의 하리 라야Hari Raya (라마단이 끝난 것을 축하하는 명절), 하지Haji (성지 순례)처럼 1년 중 중요한 때가 없을뿐더러, 가족, 친지, 친구들을 자주 만나야 하기 때문에, 1년 중 이때가 가장 소비가 많아진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하려면 옷도, 장신구도, 신발도 새로 사야 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려면, 음식도 장만해야 하고, 가전제품, 청소 용품, 주방 용품들도 새로 꾸려야 한다. 평소보다 더 많은 음식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라마단 기간이 시작하고 둘째주 즈음이, 무슬림들의 쇼핑 지출액이 1년 중 최대가 된다고 한다. 2주 뒤에 라마단이 끝나는 것을 감안해, 하리 라야를 축하하려면, 최소 2주 전에 쇼핑을 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금식을 어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금식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심지어 해가 뜨는 시간과 지는 시간도 국가마다 다르기 때문에, 해가 오래 떠 있는 지역에 있는 무슬림들은 더 오랜 시간 동안 금식을 해야 한다고 한다. 1년 중 해가 가장 긴 하지 때에 라마단이 겹치기라도 하거나, 백야 현상이라도 있는 지역의 무슬림들은 얼마나 힘들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1년 전 말레이시아에서는 어느 무슬림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시내의 한 허름하고 작은 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이때 우연찮게 다른 사람에게 사진이 찍혀,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오르게 되면서 무수히 많은 질타와 악플을 받아낸 적이 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식사를 하다니 불경하다'는 질책이었지만, 오죽했으면 공개된 장소에서 그랬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율법은 율법이니, 무슬림으로 태어나 반드시 지켜야 하는 숙명도 있을 테다.  


금식을 하고 나서 많이 먹고 싶은 건 당연한 욕구

하루 동안 지치고 힘들었으니 부까 뿌아사에 되도록 많은 양의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이 기간 동안 모든 식당들은 부까 뿌아사를 함께 즐기러 외식하러 나온 사람들을 맞이 하기 위한 프로모션, 특별 메뉴 등을 푸짐하게 준비한다. 너무 많이 급하게 먹어 건강을 해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이때 벌어지는 진풍경 중 하나는, 외식을 하러 나오는 시간이 온통 몰리다 보니 음식점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아,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먹고 싶은 음식을 해가 지기 1-2시간 전부터 시켜놓고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보통 7시 10분경에 해가지곤 하는데, 닭고기 요리가 인기가 많다 보니, KFC가 5시 반부터 무슬림들로 꽉 차는 경우를 본 적도 있다. 거의 두 시간이 가깝게, 맛있는 치킨을 시켜놓고 손도 못 대는 상황이 벌어지는 걸 보고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때문에 라마단 기간에 무슬림 국가에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시간을 피해 음식점에 찾아가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 참고로 전 세계인의 대다수가 사용하는 페이스북에는 라마단 기간 동안, 일출, 일몰 시간이 표시되기까지 한다.

해지기 두 시간 전부터 가득 들어찬 KFC. 음식에 손을 대지 않고 모두가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부정부패가 있는 곳에서는 '뒷돈' 요구가 늘기도 한다.  

라마단, 또 하리 라야 덕에 소비가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그 어느 때보다 무슬림들에게 '돈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의미도 된다. 따라서 라마단이 시작되는 기점으로 하리 라야가 끝난 뒤까지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부정부패가 만연한 곳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뒷돈'요구가 있기도 하다. 평소에 덜하던 신분증 검사라든지, 음주 단속, 교통, 세관, 금연 단속 등을 통해 '지금 당장 얼마를 주지 않으면 경찰서로 가야 한다'라고 말하고는, 어쩔 줄 몰라하는 상대방에게 '조금 깎아 줄 테니 얼마 내고 가라'면서 '현장에서 뒷돈'을 받아 챙기는 것이다.


물론 일부의 사례일 수 있지만, 실제로 현지 중국인 친구가 전혀 예상치 못한 면허증 단속에 걸려 '40만원'(1개월 최저 월급을 능가하는 금액)을 요구받고, 8만 원 정도를 주고 풀려난 적도 있다. 또 다른 친구는 통관 업무를 진행하는데, 수입품을 통관하는 곳에서 '관세 폭탄'을 덧씌운 뒤 '깎아 줄 테니 얼마 내고 가져가라'며 울며 겨자 먹기로 뒷돈을 주고 물건을 받아온 적도 있다.



전 세계 무슬림 인구는 현재 약 18억 명이며 2030년까지 22억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77억 명에 가까운 전 세계 인구 중 23프로의 사람들이 라마단을 보낸다는 얘기며, 2030년에는 그보다 더 많은 비중의 사람들이 라마단을 보내게 될 거란 얘기다.


대한민국에서는 라마단, 하리 라야, 하지 등 이슬람의 종교, 문화가 충분히 생소할 수 있지만, 전 세계 1일 생활권과 함께 교통, 무역 등의 장벽이 점점 더 사라지고, 신남방 정책이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며, 모든 것이 '초연결'되는 시대엔, 지구촌 10명 중 2명이 넘는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문화와 의식에도, 조금은 관심을 가져봄 직도 할 것 같다. 신성한 의미의 금식을 시작하며 자비와 자선을 베풀기 위해 고행을 감수하는 모든 무슬림 친구들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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