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인의 청춘 Jun 25. 2019

조 로우, 말레이시아의 그 후 1년

부정한 세상에 눈을 뜨고 살아가야 하는 극한의 피로감

[2018년 5월 9일, 말레이시아 야당의 총선 승리를 염원하며]


오늘은 말레이시아의 14대 총선일이다. 61년간 장기 집권했던 여당의 이른바 '심판'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늘 그래 왔듯 또 부정선거의 이야기며, 언론 장악이며,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돌고 돈다. 선거 결과가 나온 뒤엔 시위, 폭력사태 등이 있을 수도 있단 얘기도 SNS로 떠돈다. 친구들은 내게 며칠만이라도 제발 안전히 피해 있으라며 걱정의 메시지를 보내준다.


여당연합의 수장인 나집 총리가 우리 돈으로 8천억 (제대로 까 보면 당연히 1조도  넘겠지만) 이상을 '해 먹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도 또 여전히 여당연합이 이길 거라는 얘기가 있다. 지긋지긋한 이 상황을 '청소'하자며 모이라는 구호에는 힘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적수가 없으면 야당에서 내세운 수장은, 이전에 이미 총리를 역임했던 93세의 마하티르다. '93세가 무슨 정치냐'라는 말이 나도는 게 당연하니, 그는 '내 건강은 여전히 멀쩡하다'며 선거운동에 나와서 스쿼트를 하며 박수를 보내달라 한다. 심지어 그는 여당 나집 총리의 정치 스승이었다. 같은 길을 걸었던 스승과 제자의 대결? 그러니 답답한 상황이라고 할 수밖에.


젊은 사람들은 오늘은 휴일이라며 그저 좋아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차피 바뀌지 않을 거라며 투표에 관심이 없다. 연예인들은 '제발 투표하자'며 인증샷을 올리고, 만약의 혼돈 사태를 대비해 내 친구들은 모두 가족들과 함께 하겠다며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사람이 투표자 명단에 올라오고, 접전이 예상되는 지역에 외국 노동자를 대거 투입해 투표인단 수를 조정했단 뉴스도 있다. 단 한 사람의 이름으로 60표 이상이 투표될 거라는 이상한 투표인단 집계도 나왔다. 심지어 개표 중간에 갑자기 정전이 발생해 개표 부정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니, 전국의 전기 수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말레이시아 격 '한국전력'의  '개런티' 메시지까지 Facebook에 나왔다.  




이러면 안 된다. 잘못된 것을 알고 바로잡는 것,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는 일,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것, 그것이 정치 그대로의 의미다.


자회사를 차려 비자금을 조성해 8천억을 해 먹고, 해외 순방길엔 그 부인이 온갖 보석과 명품백 쇼핑으로 손이 모자랄 지경이라면서도 멀쩡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는, 그것이 정치인가. 비자금 조성이 전 세계에 알려지고, 심지어 비자금으로 해외 연예인들, 정치인들에게 뿌려댄 선물을 압수당하기까지 하면서도 부끄럽지 않은 권력이 과연 영원해도 되는 것인가. 이번에도 61년을 넘어선 장기집권이 가능하다면, 과연 언제 많은 이들이 소원하는 '미래'가 찾아올까.




적어도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마음대로, 멋대로 한다면 반드시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대한민국은 1년 전 그렇게 모였고, 그렇게 승리했다. 여전히 심판은 진행 중이지만, 어떤 이들은 그 승리를 아직도 모함하지만, 나는 그런 변화가 오롯이 대한민국 국민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말레이시아는 과연 바뀔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뜻을 모았을까. 이곳 사람들이 입는 노란색이 바로 그 '청소(Bersih)'의 의미다. 그 노란색이 왕의 색깔이기도 한 게 참 역설적이지만. 오늘은 잠이 쉽게 오지 않을 것 같다.




[2019년 6월 25일, 조 로우와 YG의 스캔들을 바라보며]  


그렇다.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버닝썬 게이트'부터, 부적절한 성접대, 마약 연루 연예인 파문, 끊이지 않는 스캔들이 결국은 말레이시아까지 관련이 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조 로우는 총 42개의 기소 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전직 총리 나지브의 숨겨진 '돈줄'이자 '돈세탁 담당자'였다. 조 로우는 지금도 도망자 신세에 있으며, 이를 조롱하는 캐릭터 상품까지 나왔다.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었던 '월리를 찾아라'를 풍자한 '졸리를 찾아라'가 바로 그것이다.

훔친 것처럼 돈을 써라 / 훔친 것처럼 마셔대라 / 졸리를 찾아라 / 돈, 파티, 졸리, 무한 반복 등 위트 있는 굿즈는 많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말레이시아의 전 총리 나집 라작 (Najib Razak) 2009년 말레이시아 총리직을 맡았고, 머지않아 말레이시아의 국부 펀드 1MDB의 고문 위원장이 되었다. 1MDB 기금을 관리했던 조 로우는 1MDB기금에서 개인 계좌로 무려 45억 달러를 축재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에 문어발식 기업 인수, 명품 수집, 부동산 구입, 예술 및 자선 사업을 벌여왔다고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뉴욕 맨해튼에 있는 3,350만 달러의 호화 주택이 조 로우의 소유라 보도했는데, 이와 별개로 베벌리 힐스의 또 다른 저택이 로우의 소유였다가, 이 두 호화 주택 모두 나집 총리의 자산으로 등록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조 로우는 그렇게 축적한 부정 재산으로,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놨다. 2011 년에 킴 카다시안의 결혼 선물로 32만 달러 페라리를 줬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는 피카소와 바스키아 회화를 선물하기도 했다. 미란다 커에게 준 선물은 8백만 달러의 다이아몬드 보석이었다. 여기엔, 그 유명한 골드만 삭스까지 연루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2019 년 6월, 조 로우는 Kpop의 희대 사건이 된 버닝썬 스캔들에 연루되어,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지독한 부정 부패, 그리고 한국의 더 어처구니없는 스캔들


한 나라의 총리가, 국민 최저 소득이 30만 원 남짓인 나라에서, 8000억 이상을 부정 축재하고, 그를 도와 개인 자산을 늘려온 자가, 온 세상을 조롱하듯 쥐고 흔들었다는 것은 얼마나 우리 사회가 권력에 취약한지 여실히 느끼게 해 준다. 권력을 갖는다는 것은, 높은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그래서 엄청난 책임과 자기 검열, 자기 통제가 뒤따라야 하는 일임을 뜻한다. 소위 '하이쏘(High Society)'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어깨와 삶의 무게는 그만큼 더욱 무거워야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들의 삶의 무게는 놀랄만치 가볍다. 말레이시아의 조 로우라는 '작자'가, 월드 스타 싸이를 만나는 일이 너무 쉽고, 그렇게 조 로우가 한국의 버닝썬, 유럽의 호화 성접대 여행에 함께 하며, 한국의 성매매 여성들이 동원되고, 그들에게 수억, 수천만 원 대의 선물이 제공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월드스타 빅뱅의 멤버들이 군대에 가기 때문에, 회사의 80% 수익이 줄어들 것이 걱정돼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다 보니, 접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양현석 대표의 말은 그래서 썩 불쌍하지도, 가엽지도 않다. 세계를 주무르는 Kpop을 알리는 회사 대표로, 사업 다각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더러운 작자들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는 말은 실소를 금치 못 하게 한다.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나. 몰랐다면 바보고, 알았다면 벌을 받아야 한다. 지금도 전 세계를 활보하며 세상을 비웃고 있는 조 로우는 그런 접대를 받으며 얼마나 한국이라는 나라가, 자신을 숭배하는 것 같은 세상이 우스웠을까.


말레이시아의 모든 클럽과 Bar에 YG의 노래가 나오고, YG리퍼블릭이 성업하고, 삼거리 포차가 YG의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유명해지는 것, 승리가 말레이시아 쿠알라 룸푸르의 가장 비싼 쇼핑몰 파빌리온에 차렸던 '아오리라멘'이, 그의 팬들로 북적이게 되었던 모든 것은, 말레이시아에 사는 한국인인 나로 하여금 '참담하고 비참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트위터와 페이스톡 타임라인이 Kpop 버닝썬과 조 로우 기사가 도배되는 것도, 너무나 끔찍하고 창피하다.


조 로우가 싸이를 만났고, 싸이는 조 로우가 말레이시아의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테고, 조 로우의 씀씀이와 조 로우가 만나는 사람들에 입이 떡 벌어졌을지 모를 일이나, 그는 결국 부패 정권의 부정 자산을 축재했던 '졸개'에 불과했다. 자국에 입국도 못 하고 도망 다니는 신세인 그가, 미란다 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킴 카다시안에게 주었던 수억 대의 선물들이 이제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모두 '부정한 것' 뿐이다.


싸이는 양현석에게 '사업 다각화'라는 미명 하에 조 로우에게 그런 '부정'한 것을 선물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시대의 '하이쏘'들은 그렇게 부정한 것들을 서로 주고받는다. 양현석은 그렇게 선물 받은 '누구도 함부로 맞이하기 쉽지 않은 기회'를 통해, 또다시 '부정한 것', '더러운 것'을 선물했다. 그 대가가 무엇이었든, 양현석은 Kpop의 위상과 노력, 이미지, 역사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나는 그들이 나눈 대화가 무엇이었을지 알지 못한다. 나는 그런 하이쏘도 아니며, 하이쏘를 갈망하지도 않는다. 대개 하이쏘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세상은, 나와 같은 사람들의 세상과는 '버전'이 달라서, 나는 아이폰 3를 쓰는데, 그들은 iOS12를 쓰는 느낌이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스펙이 딸려서' 작동이 안 되는 기계인 거다.




문득, 이왕 외국에서 일하게 됐고, 제대로 해 볼 거면 '하이쏘'에서 놀아봐야 하지 않겠냐던 내 전직 상사가 생각난다. 네가 원한다면 왕족, 국회의원, 미디어 수장들을 소개해 주겠다던 그의 말에


'저는 그런 하이쏘도 아니고, 관심도 없으며, 제일 중요한 건, 그 하이쏘들이 결국 저한테 관심 없을 거예요. 저는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거든요.'라고 대답했다.




말레이시아 총선이 끝난 지 1년이 지났다. 마하티르의 새로운 정부가 얼마나 많은 '적폐 청산'을 통해서, 선과 악을 규정짓고 악을 심판하는데 과감히 정진해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적어도 '청소(Bersih)'라는 구호를 앞세워 광장에 모였던 수많은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제대로 살고자 하는 염원'이 조금이나마 이뤄지길 바란다.


다만 '조 로우'라는 사람의 이름이 한국의 온갖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를 장악하고, 9시 뉴스를 뒤덮는 작금의 사태에 오는 피로감은, '아, 정말 끝도 없다'는 피로감이 아니라, 뭔가 '제대로 된 끝, 즉 정의를 말할 결론이 영원히 없을 것 같은 절망감'에서 오는 피로감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장자연 사건, 김학의 사건, 승리 사건, 버닝썬 스캔들 등 이른바 '하이쏘'들만 아는 진실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우리 중 그 누구도 제대로 된 '끝'을 보지 못했다. 세상 가장 추악하고 흥미진진한 누아르 영화가 오픈 결말도 아닌, '상영 중단'되어 버린 일이 어디 한두번이어야 말이지.


오늘도, 내일도 '버닝썬', '조 로우', '양현석'이라는 단어를 말레이시아 페이스북에서 봐야 하고,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너라면 진짜배기 진실을 알지 않느냐'며 묻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달아오르고 피곤함을 느낀다. 아무리 파헤치려고 해도 드러낼 수 없는 '하이쏘'들의 진실은, 추악, 경악, 극악의 끝에 있다. 이 사람들이 그 어떤 짓을 해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인생에서, 나는 또 아무렇지 않게 내 삶을 묵묵히 살아가야 한다는 게 내가 느끼는 극도의 절망감이다.




세상이 원래 부정하단 걸 잘 안다. 세상에 선보다 쉬운 것이 악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악을 행하는데는 수치와 염치가 '없으면' 되지만, 선을 행하는데는 용기와 뚝심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사람들이 '정의'를 외치는 이유가, '부정'이 너무나 가득하단 걸 우리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방증이라 생각한다. '부정'한 세상에서 매일 조금씩이라도 '정의'라는 매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기를, 우리가 윤활유를 붓고, 냉각수를 보충하고, 닦고 조여서, 적어도 '정의'라는 엔진이 식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EBS 오디오 천국 [그곳은 어때 말레이시아] 팟빵 콘텐츠 듣기 

제가 진행하는 말레이시아 소개 라디오 프로그램이 독립 채널로 새로 탄생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 드릴  예정이니, 구독, 좋아요, 댓글, 질문 많이 남겨 주세요. 보내주신 의견 중 좋은 주제는, 추후 방송에서도 다룰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772785


* 인스타그램 팔로우 

- 제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시면 말레이시아의 맛집, 여행지 등의 사진들을 쉽게 접하실 수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 대해서 궁금한 점은 DM주셔도 됩니다. 참고로 3년동안 말레이시아에서 찍었던 모든 사진과 동영상에 #그곳은어때말레이시아 해시태그를 적용해 두었으니, 말레이시아 여행하실 때 참고하셔도 좋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bangsarbae_kr/


이전 15화 라마단이 시작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