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인의 청춘 May 26. 2020

코로나가 드러낸 말레이시아의 열두 가지 민낯

모호하기도, 단호하기도, 이상하기도. 

말레이시아는 일찌감치 MCO, 이동통제명령을 시작했다. 3월 18일부터 시작된 이동통제명령은 현재까지 CMCO(조건부 이동통제명령)라는 이름으로 지속되고 있다. 적어도 6월 9일까지 지속될 CMCO는 과연 언제 끝날 수 있을까. 말레이시아는 동남아 국가 중에서 코로나를 잘 대처하고 있는 나라로 평가받고는 있다지만, 코로나가 보여준 말레이시아의 민낯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여기 코로나가 드러낸 말레이시아의 몇 가지 민낯을 정리해 본다. 

네? "도라에몽"이라고요?

아쉬운 점은 부부 또는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가정폭력 신고도 덩달아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정부에서 집콕 생활 중 "여성이라면 응당 도라에몽처럼 상냥하게 웃으며 남편을 대해야 하고, 쓸데없는 잔소리를 하지 말라. 집에 있더라도 후줄근한 옷은 입지 말고, 화장을 하며 스스로를 예쁘게 치장하는 것도 잊지 말라"는 어불성설 격의 한심한 코로나 캠페인을 선보이는 바람에 원성을 들어야 했다. 덕분에 한동안 많은 사람들이 도라에몽 목소리를 흉내 내며 정부를 조롱하는 영상들로 SNS 타임라인이 도배되기도 했다. 


체포되거나 벌금을 물게 된 사람이 수만 명이라고?

말레이시아의 이동통제명령 이후, 집에 머무는 걸 참지 못하고 산책, 조깅을 하다 체포된 사람도 여럿이다. 그뿐 아니라 식료품 점을 가겠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검문에 걸린 사람, 주간 이동이 금지(예컨대 경기도에서 충청도는 넘어갈 수 없는 룰이 있다)되어 있는데도 주 경계를 넘어 이동하다 걸린 사람도 부지기수다. 우리나라 언론에는 벌금이 약 28만 원이라고 나왔고 한국 네티즌들은 무슨 벌금이 저렇게 적냐고 토를 단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벌금은 말레이시아 링깃 (MYR, RM) 기준 1,000링깃을 환율에 따라 환산한 것인데, 최저 임금 기준이 1,200링깃인 나라에서 1,000링깃은 거의 한 달치 월급 수준이기에,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벌금이 문제가 아니라, 나가지 말라면 좀 나가지 말 것이지. 


쇼핑몰 물건이 곰팡이로 뒤덮였다고?

생필품, 식료품을 제외한 모든 상업 시설을 폐쇄했던 3월 18일의 MCO는, 눈으로 보기에 믿기 힘든 광경을 자아냈다. 매장을 열지 못하고 에어컨 가동을 중단하자 메트로 자야 (Metrojaya)라는 쇼핑몰 물건들이 습하고 더운 나라답게 매에 진열된 모든 물건이 하얀 곰팡이로 수북이 뒤덮인 모습이었는데. 에어컨을 틀지 못하며 건조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영상을 지켜본 전 세계의 네티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해당 이슈는 전 세계에 보도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뉴스에도 등장했다. 


K드라마를 보며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자.

이동통제명령이 시작된 3월 18일부터 꼼짝달싹 못하게 된 말레이시아에서는, 스마트폰과 인터넷 활용률이 높아질 것을 배려해 국민 모두에게 무료 데이터를 제공하는 정책이 시행되기도 했다. 가장 눈에 띄게 사용이 증가한 인터넷 서비스는 단연 유튜브, 페이스북, 넷플릭스, VIU, TONTON (VIU와 TONTON은 현지 스트리밍 서비스)등이었는데, 넷플릭스에서 "K드라마를 보며 이 힘든 시기를 이겨내자"라는 K드라마 추천 '짤'들이 쏟아져 나왔고,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낭만 닥터 김사부], [하이 바이 마마], [킹덤] 등은 5순위 안에 들었을 뿐 아니라 , [호텔 델 루나], [쌈 마이웨이], [스카이 캐슬] 등 기존의 드라마들까지 말레이시아의 Best 10 시청작에 드는 기염을 토했다. 가장 최근에는 [부부의 세계]가 엄청난 인기를 끄는 바람에, 집에서 그렇게 부부싸움이 많아졌다고. 첫 화를 보고 트렁크 청소(Feat. 이태오의 비밀 가방)부터 했던 남편들이 그렇게 줄을 이었다고 한다. 


뜨거운 차를 많이 마시고 코로나를 이겨내자고?

코로나 사태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건부 장관이 기자 회견을 하다가, "뜨거운 물을 많이 마시면서 코로나를 이겨내고 있다. 뜨거운 물을 많이 마시면 목구멍에 들어온 코로나 바이러스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뜨거운 물이나 차를 많이 마시길 바란다"라는 언급을 하는 바람에,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너나 많이 드세요"라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던 건 물론이다. 


"마스크는 충분합니다." 그럼 대체 어디서 살 수 있나요?

코로나 발병 초기엔 '증상이 없거나 충분히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많았다. 정부에서도 꾸준히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했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점점 사태가 악화되면서 마스크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는데, 문제는 어디에서도 마스크를 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마스크는 물론 손소독제도 모두 매진이었고, 그나마 구할 수 있던 저가 마스크도 원래 가격 대비해 천정부지로 올라, 길거리를 지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스크를 안 사서 안 쓴 것이 아니라, 못 사서 못 쓰는 상황이 지속됐다. 정부에서는 "말레이시아 마스크 수급 상황엔 전혀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라"라고 했지만, 정작 어느 매장에 가도 두 달이 넘도록 마스크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외국인들은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마스크 착용 인식이 너무 후지다고 불평했지만,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마스크 쓴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거지, 마스크를 안 쓴 게 '당당했던 게' 아니라는 사실. 


손소독제는 할랄 Halal이 아니기에 쓸 수 없습니다. 뭐라고요?

인구의 60%가 말레이 무슬림인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교 샤리아 율법이 정한 규정에 따라 알코올이 함유된 그 어떤 것도 몸에 대거나 마실 수 없다. 오죽하면 할랄 향수도 있을까. 흔히 잘 알고 있는 돼지고기 섭취를 하지 않는 것도 물론이다. 그걸 바로 '할랄 Halal'이라고 부른다. 오직 '신성한 것'만 섭취할 수 있다는 종교적 기준인데, 문제는 말레이 계에서 일어났다. 손소독제의 성분이 대부분 '알코올'이다 보니 알코올이 들어있는 손소독제를 쓸 수 없다며, 손 소독을 거부하거나 소홀히 한 것. 다른 민족들은 이에 하나 같이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당신이 위중할 때 병원에 가서 수술받을 때, 바로 알코올을 쓰는 것이다. 손 소독제가 무슨 문제냐."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방송으로라도 국민들을 더욱 즐겁게 하라. 

4월 23일부터 시작된 라마단은 무슬림이 전 국민의 60%인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중요하고 성스런 기간이기도 하다. 물론 3월부터 시작된 이동통제명령 탓에 2020년의 라마단은 그간의 라마단과 그 모습이 매우 달랐지만. 코로나가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예배를 금지한 것은 물론이요, 밖에 나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치러지는 라마단은 어색할 법도 했는데. 말레이시아의 총리가 매일 브리핑을 진행하던 중, "올해 TV,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프로그램에 각별히 신경 써 더욱 신나고 경쾌한 음악을 틀어주길 바란다"며, 직접 선곡한 노래들을 언급하기도 해 실소를 자아냈다. 현재 말레이시아 총리는 며칠 전 열렸던 내각 회의에서 접촉자로 분류되어 14일 자가격리 중이다. 

예배는 쉽게 멈출 수 없어요.

말레이시아는 한동안 22명의 수준의 적은 확진자 수를 꾸준히 유지하다, 2월 말부터 3일 동안 지속된 모스크 모임에서 집단감염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나라다. 무려 1만 6천여 명이 참석했던 예배에, 부르나이에서 말레이시아로 관광 온 확진자가 참석하면서, 그 후 하루 수백여 명의 확진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때문에 당국이 접촉자들을 걸러 테스트를 하는데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렸고, 그 결과 현재 7천여 명의 확진자를 낳게 됐다. 이 확진자 중 50%가 바로 예배로부터 시작된 집단 감염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도 결혼식, 가족 모임 등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N차 전염의 집단 감염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와, 마치 우한처럼 마을 전체, 아파트 전체가 봉쇄되는  EMCO(강화된 이동통제명령)가 발령되기도 했다.. 5월 24일부터 시작된 무슬림의 최대 명절 중 하나인 하리 라야(HARI RAYA)는 가족, 친지, 친구가 서로 모여 한 달여간의 금식성월, 라마단 Ramadan이 잘 끝난 것을 축하하는 행사지만, 올해 하리 라야는 최대 20명 이하로만 모일 수 있고, 경찰이 집집마다 방문해, 참석자 수를 세기도 한다고. 과연 아무 일도 없을 수 있을까. 


전 세계 콘돔의 25%가 자취를 감췄어요. 

말레이시아는 한때 고무, 주석 생산이 유명하기로 손꼽히는 나라였다. 지금은 고무나무가 많이 줄고, 대신 팜오일을 생산할 수 있는 팜유가 그 자리를 메꾸면서, 고무 수출량은 예전에 비해선 적어졌지만. 하지만 여전히 고무 제조에 있어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산업이 있었으니, 바로 콘돔이었다. 다만 이동통제명령 때문에 콘돔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전 세계 콘돔 생산의 25%를 담당하는 말레이시아의 콘돔 생산에 차질이 생겼고, 덕분에 콘돔 품귀 현상을 걱정할 정도였다고. 이젠 좀 나아졌으려나. 

대한민국에 정은경 본부장이 있다면, 말레이시아에는 누르 히샴 보건부 총괄국장이 있다. 

한국은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중앙 방역대책본부의 브리핑이 하루에 두 차례씩 진행됐다. 다수의 국민들이 그 과정에서 차분하고 진솔하고 신중한 모습의 정은경 '앓이'에 빠지기도 했다. 진중하고 흔들리지 않는 리더십에서 많은 국민이 안심을 느끼고, 최전선에 있는 의료진과 종사자들에게 '덕분에'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으니까. 말레이시아의 정은경 본부장 격인 사람이 바로 다토 누르 히샴 압둘라 보건 총괄국장.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답변함은 물론, 항상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 공개를 하며, 사태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상황을 진두지휘하는 누르 히샴의 모습에 많은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찬사를 보냈는데. "사랑해요", "존경해요", "응원해요" 뿐 아니라, 그를 보건부 장관에 임명하라는 목소리와 함께, 그의 생일을 전 국민이 축하하며 편지와 꽃다발,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누르 히샴은 "존경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의료현장에서 애쓰는 의료진들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의 페이스북 라이브는 언제나 총리의 페이스북 라이브보다 많은 시청자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5월 3일 이후, 21일 만에 다시 세 자릿수 확진자 

두 자릿수로 떨어졌던 일일 확진자 수가, 갑자기 172명으로 늘었다니. 과연 무슨 일일까. 원인은 바로 '불법 이민자들'이었는데. 방글라데시, 미얀마, 네팔, 인도네시아, 인도, 파키스탄 등 국적도 다양했지만, 이들이 이민자 격리병동에 수용되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건 왜일까. 말레이시아는 전 국민의 10% 수준, 약 320만 명이 외국인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 때문에 이민자들이 많은 나라에서, 옆 나라 싱가포르가 이민자 숙소의 집단 감염 폭발 상황을 목격하면서도 이렇게 늦게 이민자 감염을 찾아내다니. 그것도 조건부 이동통제명령이 딱 2주 남은 상황에서.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보인다. 물론 '너무 늦었다', '이민국 부정부패가 심각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필이면 세 자릿수 확진자가 나온 날이, 6월 9일 CMCO가 해제되기 정확히 2주 전이라니, 석연찮은 구석이 분명히 있다. 이전 총리인 마하티르 총리가 물러나며 긴급히 구성된 새 내각이, 코로나 사태를 이용해 국정 마비를 의도적으로 일으키고 있다는 논란까지 있으니 말이다. 충분히 정책 관련 토론과 회의 진행이 가능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의회를 속개하지 않고 '코로나 때문에 모일 수 없다'라는 변명으로, 필수적인 일들을 미룬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2주로 잡혔던 의회 개정을 하루로 축소해 빈축을 사고도 모자라, 결국 총리까지 자가격리에 들어갔으니, 말레이시아 코로나 소용돌이는 언제쯤 사그라들 수 있을까.


어서 빨리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어 모두가 건강하고, 즐거웠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2020년, 올해는 말레이시아 방문의 해다. 누구도 방문할 수 없는 방문의 해는 왠지 너무 씁쓸하지 않은가. 


https://youtu.be/Ar1SUM51a4s





이전 16화 조 로우, 말레이시아의 그 후 1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