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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몸글몽글 Dec 29. 2017

내 마음을 아나 <땐뽀걸즈>

쌤! 쌈바 줄도 맞추어야 한다고!     


영화가 시작 된지 2분 도 채 안될 때 나온 이 한마디가 내겐 사자후였다. 그러니까 전국상업경진대회 동아리경연 리허설 준비로 무대에 오른 거제상업여자고등학교 땐뽀(댄스스포츠)동아리반 단장 박시영이 객석에서 우두커니 서있는 땐뽀반 담당 체육교사 이규호에게 쌈바 대열을 맞추지 않고 뭐하냐며 일침을 날리는 장면을 마주하니 그전까지 쌓았던 <땐뽀걸즈>에 대한 편견과 냉소가 순식간에 무너져버린 것이다. 영화 개봉시기에 <땐뽀걸즈>티처를 보고 흔하고 뻔한 일본풍 청춘성장물 스포츠영화로 치부했다. 나아가 지난 4월 KBS스페셜에서 방영한 방송의 영화판이니 학교체육 캠페인 일환으로 여겼다. 이토록 특별하고 의미 깊은 영화를 업신여겼다니 죄가 크다. <땐뽀걸즈>에 속죄할 때까지 귀양살이를 해야 마땅하다. 이에 반성문을 제출한다.     


  

특별한 스포츠영화 <땐뽀걸즈>

우선 영화 줄거리부터 특별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70자로 소개한다면 ‘거제상업여고 댄스스포츠 동아리가 2016년 10월 하순 충청북도에서 열리는 제 6회 전국상업경진대회 동아리 경연대회에 참가하는 과정’이다. 대부분 청춘성장물 스포츠 영화에서 대회는 특정 스포츠종목 단일 대회이고 규모도 전국대회는 기본이고 국가대표 선발전과 국제대회가 득세한 마당이다. 그런데 전국상업경진대회에 동아리 경연을 다룬다니! 이 얼마나 신선한가. 원래 전국상업경진대회는 상업 정보 다양한 분야에 재능을 가진 학생을 발굴 육성하는 취지이기에 회계실무, 금융실무, 창업아이템, ERP, 정보활용능력 경진대회가 핵심이다. 동아리 경연대회는 부대 행사와 같다. 또한 동아리 경연도 댄스스포츠 뿐만 아니라 밴드 댄스 풍물 사물놀이 한국무용, 힙합댄스, EDM디제잉 공연 등 여러 장르가 뒤 섞여 있다. 땅 끝 지역 상업여고 댄스스포츠 동아리가 입상을 해도 대학진학이나 취직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대회에 나간다는 것.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기 위해 무대 위에 오르는 과정, 심지어 대회 본 공연 영상은 과감히 생략한 감독의 연출이 돋보이는 다큐멘터리다. <땐뽀걸즈> 관객들로부터 경기 영상이 궁금하다는 민원에  이승문 감독은 대회 참가가 영화의 클라이막스로 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결과보다 과정의 중요함을 새롭고 감동적으로 전해준다.   

   


 다른 한편으로 전국상업경진대회 동아리 경연에서 학교체육 역점 정책인 학교스포츠클럽리그 사업의 한계점으로 지적 받는 종목의 부족함을 확인하게 된다. 지난 10월에 열린 제 10회 전국학교스포츠클럽대회 24개의 경기 종목 중 댄스스포츠는 포함되지 않았다. 댄스스포츠 외에도 기초종목인 수영, 육상, 체조 등 기조종목 누락도 종종 문제로 제기된다. 앞으로 기초종목이든 뉴스포츠 종목이든 지금 보다는 많아져야 하는 게 분명하다. 땐뽀반도 동아리대회를 넘어 전문 학교스포츠클럽리그에서 댄스스포츠 종목경기에 참여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체육계에 주는 의미 교사와 학생 또는 지도자와 선수의 수평적 관계    

사실 <땐뽀걸즈>는 내 안의 위선을 수면위로 드러내주었다. 국내 체육문화 중에서 가장 필요한 요소가 자기표현과 발언권이라 말하며 내면 깊숙이 숨겨둔 꼰대기질 말이다. 올 한 해 스포츠인권강사 활동을 하면서 ‘스포츠인권 증진에 무엇보다 필요한건 표현의 자유와 발언권이다.’라는 말을 선언문마냥 읊어댔다. 이를 설명하고자 지난 5월 프로야구 선수에서 연기자로 전향하여 주말드라마 주연을 맡을 정도로 큰 인기를 받는 배우가 주말 예능 방송에 나와 20여 년 전 고등학교시절 자신을 지도해주던 야구부 감독을 만나는 프로그램을 자주 예로 들었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이렇다. 유명 배우는 감독을 만나러 간다. 감독은 배우의 모교가 아닌 중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배우가 훈련장에 도착하자 학생들은 반사적으로 모자를 벗어 반삭발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능동적으로 배우가 가져온 간식거리 담긴 박스를 들어 날랐다. 휴식시간이 되자 배우는 벤치에 앉은 운동부원에게 간식을 나누어 주며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다. 배우는 자신의 야구부 생활을 회고하며 조언을 해준 다음 아이들에게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지 물어보라고 말한다. 그러자 일동 침묵. 밤송이가 나무에 흔들리 듯 반삭발 헤어스타일인 열댓 명이 넘는 아이들의 머리가 살짝살짝 움직일 뿐 누구하나 입을 열지 않는다. 결국 감독님이 얼굴 제일 잘생긴 아이가 질문하라면서 한 아이를 지목한다. 여기까지를 설명하고 나는 탄식을 감출 수 없다며 다른 연예인이 모교 방문을 하는 장면을 비교했다. 교실 자체가 콘서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열광의 도가니가 되는 영상을 언급하며 체육문화에서 자기표현과 발언권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그런데 <땐뽀걸즈>는 내 안에 있던 허위와 보수성의 민낯을 드러나게 했다. 학생들이 교사에게 반말하고 농담하며 중요한 훈련에도 웃는 모습에 심기가 불편해진 내 자신이 발견됐다. 그나마 다행인건 이런 감정이 오래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 당혹스러웠던 장면을 다시 돌려보자 박장대소를 하게 됐다. 이를테면 체육교사가 대회 준비로 열심히 연습하는 학생들을 위해 치킨을 시켜주었지만 ‘매간(매운간장)’을 안 시켰다는 이유로 학생한테 타박은 물론 가슴팍에 꿀밤을 맞고 발길질로 엉덩이를 차일번하는 장면. 모처럼 댄스스포츠 복장을 갖추어 입은 쌤이 무도실로 입장하자 학생들은 환호와 함께 누군가 “다 컸네. 이제 장가가자”라고 말하는 장면 등이 그랬다.      


땐뽀반의 웃음은 주로 쌤으로부터 발생된다. 신뢰가 가고 편한 쌤이기에 땐뽀반은 유쾌한 웃음을 방울방울 달고 댄스스포츠를 한다. 땐뽀반은 웃음과 함께 여러 감정을 교감한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손가락만 봐도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정도다 .땐뽀반 선생님은 감정이 짙어지면 입에다 손을 대는 버릇이 있다. 곤란하거나 당혹스럽거나 안타까울 때 증상이 더 심하다. ‘매간’을 안 시켰단 이유로 타박을 받을 때 선생님은 ‘매간’을 안 시킨 자신의 실수를 통감하며 기도하듯이 모은 두 손을 입에 갖다 댄다. 그러자 단장인 시영이는 선생님의 제스처를 따라하며 웃는다. 가슴팍에 꿀밤이 들어올 때도 선생님은 손을 입에서 떼지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한다. 월세 63만원을 스스로 버는 학생의 사정을 들을 때, 선생님은 검지 손가락을 옆으로 눕힌 다음 마우스피스처럼 입에 문다. 그리곤 학생에게 자신의 무심함을 고백하고 미안하다는 뜻을 전한다. 땐뽀반 학생들의 자유로운 대화와 자기표현은 서로 웃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함께 힘들어하는 선생님의 공이 크다.   



   

내 마음을 아나

소통, 교감은 체육 분야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문제에 해결의 중요한 요소로 손꼽힌다. <땐뽀걸즈>는 교사와 학생, 지도자와 선수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쾌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나도 땐뽀반 학생과 선생님의 표현을 많이 배우고자 한다. 그래서 요즘 아래와 같은 땐뽀반 배은정 학생과 쌤의 대화가 귓가에 맴돈다.  

    

“알기는 알겠는데 몸이 안 따라줘서 그래. 쌤이 내 마음을 아나.”

“그래. 니는 잘하고 싶지 않겠나.”         


그래서 이 장황한 글을 읽는 이들에게 내 마음을 표현해본다. 


“알기는 알겠는데 글쓰기가 안 따라줘서 그래. 내 마음을 아나.”     




글쓴이 : 이경렬

대학에서 생활체육과를 전공. 호텔 트레이너, 체육교사를 꿈꿨으나 어쩌다 2014년부터 체육시민단체에서 활동 중. 주요 관심사는 스포츠인권과 스포츠문화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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