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연결한다는 그들의 야망, 그리고 그 이면
최근 몇 년간,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개발도상국들을 상대로 무료 인터넷 망을 보급한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대표적으로 구글의 Project Loon이나 페이스북의 internet.org가 있죠. 접근 방식이나 구체적인 실행 방법에 대한 차이는 조금 있겠지만, 기본적인 발상은 인터넷 연결이 어려운 제 3세계 국가들에게 무상으로 인터넷을 제공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물론 세계를 ‘연결(connect)’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인터넷에 접근할 수 없는 상황, 즉 정보격차를 해소한다는 것이 표면 상의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인권 NGO 혹은 자선사업단체가 아닙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니, 윤리경영이니 뭐니 해도 기업의 가장 본질적인 목표는 이익 창출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공짜’라고 말하는 여러 가지 서비스들조차, 사용자들이 직접적으로 지불하는 현금이 없다 뿐이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대 공짜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무료’ 서비스인 구글 포토의 경우, 텐서플로우 등의 딥러닝 기술을 이용하여 유저들의 사진에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추출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구글이 제공하는 Gmail, Google Maps 등의 수억 명의 사용자를 가진 다른 구글 서비스와 결합하여 구체적인 프로파일링을 통해 맞춤형 광고 등의 수익원으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구글 서비스 약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Google의 자동 시스템은 맞춤 검색결과, 맞춤 광고, 스팸/멀웨어 감지 등 귀하에게 유용한 제품 기능을 제공할 목적으로 귀하의 콘텐츠(이메일 포함)를 분석합니다. 이러한 분석은 콘텐츠 전송, 수신, 저장 시에 수행됩니다.
페이스북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입력한 개인정보(나이/성별/거주 지역 등), 위치정보, 업로드한 사진 등을 분석하여 맞춤형 광고를 제공합니다. 어떤 광고를 몇 초 동안 봤는지, 혹은 어떤 종류의 광고를 얼마나 많이 클릭했는지에 따라 다음번에 내 타임라인에 뜰 광고가 달라집니다. 페이스북 광고를 한 번이라도 집행해본 사람이라면 광고 시스템이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되어있는지 느껴봤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이용하며 간혹 소름이 돋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그들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동의하고 제공한 그들의 취향과 관심사 등을 파악하여 광고를 내보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들의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돈 대신 우리의 개인정보를 매 순간마다 팔고 있습니다.
이런 기업들이 제3세계에 앞다투어 무상으로 인터넷을 제공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의 개인정보를 밑천 삼아 수조 원 대의 매출을 올리는 그들이, 갑자기 착한 기업이라도 되려는 걸까요?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기업의 공통점은 플랫폼 서비스를 기반으로 성장한 회사입니다. 플랫폼 서비스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장(場)’과 원활한 운영을 위한 룰을 지정해주고, 그 안에 사용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들을 통해 그들을 ‘가둬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용자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이용하기 위해 구글 계정을 만드는 순간,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해 페이스북에 가입하는 순간 이미 플랫폼에 갇힐 준비는 모두 끝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대부분의 인터넷 사용자들은 모두 알게 모르게 주요한 플랫폼들 안에 갇혀 있습니다. 이런 플랫폼 서비스의 가장 큰 관건은 ‘얼마나 많은 사용자를 가둬놓는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기업들의 성장은 곧 사용자들의 증가와 직결됩니다. ‘사용자 증가율=기업의 성장률’이 되는 것이죠. 따라서 플랫폼 기업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용자들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에 더해, 거대 플랫폼 사업자들의 주요 수익모델이 광고가 된 현시점에서는 광고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용자가 필수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구글(알파벳)의 2017년 Q3 실적보고서를 살펴보면 총매출 277억 7천200만 달러 중 약 87%가량인 240억 6천500만 달러가 광고 부문 매출입니다. 상대적 후발주자인 페이스북의 경우는 광고사업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더 높은 편인데, 올해 3분기 총매출 103억 2천8백만 달러 중 광고 매출이 101억 4천2백만 달러로, 총매출의 98% 이상을 광고 매출이 차지하고 있습니다(페이스북 2017년 Q3 실적보고서).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사용자의 유입은 단순한 유저 수의 증가가 아닌, 직접적인 매출로 직결됩니다. 따라서 이들 거대 플랫폼 사업자들은 새로운 사용자들을 끌어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수밖에요.
그런데 지금 인터넷 환경을 보자면 새로운 사용자들을 확보하는 것이 그렇게 녹록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페이스북이나 구글과 같은 초대형 플랫폼의 경우 이미 거의 모든 인터넷 사용자들이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죠. 현재 인터넷에 접근 가능한 인구 중,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서비스를 하나라도 이용하지 않는 비율은 정말 미미할 것이 분명합니다. 다시 말해, 이는 신규 사용자의 유입을 거의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고, 그렇다고 기업이 '이 정도면 우린 할 만큼 했어'라면서 성장을 멈추겠다고 선언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신규 사용자의 유입이 줄어드는 그 순간, 플랫폼 기업들의 본격적인 고민은 시작됩니다.
2017년 3 사분기 기준 무려 20억 명이 넘는 MAU(Monthly Active Users)와 13억 명 이상의 DAU(Daily Active Users)를 보유한(페이스북 2017년 3 사분기 실적 발표 기준) 페이스북조차 이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현재도 사용자가 꾸준히 증가하고는 있기는 하나, 초기에 비하면 그 성장률은 지극히 미미합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페이스북의 사용자 증가율은 1%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현재 전 세계의 인터넷에 접속 가능한 인구의 대부분은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기업은 아직 제대로 된 네트워크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제 3세계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인도와 중국, 혹은 아프리카 대륙을 들 수 있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24시간 내내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삶이 너무나 익숙한 우리들은 최소한 인터넷 사용 환경에 있어서는 대단히 축복받은 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터넷이 조금만 느려도 지구의 종말을 맞은 것처럼 분노하는 우리와는 달리, 지구에 사는 70억이 넘는 사람들 중에 40억 명 이상은 인터넷을 사용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를 바꿔 말하면,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지금보다 3배는 더 성장할 여지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새로운 사용자는 곧 (돈을 벌) 새로운 기회니까요.
위의 미개척 인터넷 시장을 조금이라도 비집고 들어가는 것에 성공만 한다면, 플랫폼 사업자 입장에서는 시장 장악이 엄청나게 쉽습니다. 미개척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3분의 1보다 훨씬 더 쉽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쉽게 말해 ‘백지’ 상태니까요. 그들에게 접근할 때는 '전환 비용'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서비스에 대해 사용자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특정 플랫폼을 접하게 되면 그 플랫폼에 갇힐 확률은 매우 높아집니다. MS가 아직까지 시장 점유율에 있어 절대적인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PC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하던 시절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타 서비스들과 비교해봤을 때 하등 나을 것 없는, 경우에 따라 오히려 열악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카카오톡이 국내 메신저 1위를 굳건히 지켜온 이유 또한 스마트폰이 도입되던 시절 가장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여 플랫폼을 성공적으로 다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도 하지만, 습관의 동물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본다면 UX, 즉 사용자 경험이라는 것도 일종의 습관을 기초로 하여 발생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애플이 iOS6까지 유지했던 스큐어몰피즘이 굉장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스마트폰이라는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그때까지 접했던 환경을 최대한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윈도 8에 대한 사용자들의 가장 큰 불만도 없어진 시작 버튼이었죠. 결국 MS는 업데이트를 통해 원래 시작 버튼의 기능을 돌려놓고야 맙니다. 이만큼 습관으로 굳어진 사용자 경험은 생각보다 큰 영향력이 있습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사용자가 접하는 '첫 번째 서비스'를 자신의 플랫폼으로 유도하려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죠. 그렇지만 아까도 언급했듯이, 현재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 나름의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는 이미 습관으로 굳어져버린 지 오래입니다. 어지간히 공격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이상, 타 플랫폼의 사용자를 뺏어오기란 불가능에 가까워진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수의 새로운 사용자들을 자신들의 플랫폼에 가두기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플랫폼들보다 우선적으로 자신의 사용자 경험을 주입시키는 것입니다. 만일 구글의 Project Loon이 대성공을 거두어 아프리카 전역에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환경을 구축했다고 친다면, 그 지역 주민들에게 '공짜로' 인터넷을 제공하기 위해서 그들이 가장 먼저 요구하게 될 것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새로운 Google 계정이겠죠. 플랫폼의 Active User 숫자의 증가가 정체된 지금, 가장 쉽고 빠르게 새로운 사용자를 끌어올 수 있는 곳은 아프리카와 같은 미개척지만 한 곳이 없습니다.
사실 이미 이런 단계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인터넷 연결 가능지역에 있는 '백지' 상태의 잠재 사용자들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말입니다. Digital Native(개인용 컴퓨터, 휴대전화, 인터넷, MP3와 같은 디지털 환경을 태어나면서부터 생활처럼 사용하는 세대)로 대표되는 지금의 아이들은,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더욱 가치 있는 고객이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구글의 경우 몇 년 전에 출시된 YouTube Kids 서비스를 통해 어린 사용자들을 확보하고 있으며,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 또한 오래전부터 쥬니어네이버 서비스를 통해 저 연령 사용자층을 지속적으로 공략하는 중입니다.
결론적으로, 거대 기업들이 제 3세계 시장에 인터넷을 무료로 연결해주는 것은 광고 수익의 증대 및 이미 포화상태에 도달한 플랫폼 서비스의 해결 방안을 찾아 나아가는 행보입니다. 수억 명에 달하는 전환 비용이 없는 백지상태의 사용자들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여태까지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기업들이 무료 인터넷을 제공하는 것은 그들이 착해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수익구조를 바탕으로 한 방향성일 뿐입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본격적으로 새로운 사용자들을 확보하고 아프리카 대륙을 비롯한 인터넷 미개척지에 자리를 잡는 순간 새로운 플랫폼 전쟁이 벌어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며, 독과점과 같은 새로운 문제들이 대두될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가 '착한 기업'이라는 그들의 탈에 속지 않도록 더 조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