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나 작가의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에 대하여
지난 금요일 밤, 윤이나 작가와 나는 카톡으로 요즘 너무 재미있는 게 없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책에도 영화에도 드라마에도, 집중이 잘 안돼. 코로나19 시국이 너무 길어지고 있는 탓인 것 같아. 끝내주게 웃기고 재미있는 걸 보면서 금요일 밤을 보내고 싶은데, 대체 뭘 봐야 하지? 한참을 그러다가 윤이나 작가가 농담 삼아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근데 효진 씨는 내 책 있는데 재밌는 책 없다고 했냐.”
맞다. 내게는 이제 막 나온 윤이나 작가의 신간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가 있었고 심지어 나는 윤이나 작가와 재미있는 게 없다는 대화를 나누기 전에 그 책을 다 읽었다. 이 책으로 말하자면 거의 매일 라면을 먹고 라면을 잘 끓인다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윤이나 작가가 라면에 관해 쓴 에세이집으로, 그에게 집필 과정의 이야기를 거의 실시간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책을 받자마자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내 이름이 꽤 자주 등장하기까지 하는 책 아닌가! 내게는 재미가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는 책이 바로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다.
그럼에도 안 읽은 척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던 이유는 책에 대해 아주 멋진 글을 제대로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내 책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이 나왔을 때 윤이나 작가가 뭉클한 글을 써주기도 했고,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가 정말 좋은 에세이집인 만큼 나 또한 그 훌륭함을 잘 이야기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멋진 글은 됐고.... 그냥 글이라도 써보자.
나는 살면서 윤이나 작가만큼 라면에 진심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굳이 억지로 떠올려보자면 라면을 정말 좋아하는 우리 외삼촌 정도인데, 그냥 라면을 자주 드시고 많이 드실 뿐 라면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윤이나 작가보다는 진정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윤이나 작가가 라면을 잘 끓이는 방법에 관해 알려준 팁 중 내가 늘 떠올리는 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이렇게 적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물을 적게 잡아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이렇게 안 익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면이 푹 익지 않았을 때 불을 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노하우를 알게 된 이후로 혼자 라면을 끓일 때도 절대적인 경구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따르고 있다.
아무튼 그런 윤이나 작가가 쓴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에는 라면 얘기만 있는 건 아니다. 혼자인 삶을 씩씩하게 책임지는 일인 가구 여성으로서, 마감하지 않는 밤이 드문 프리랜서 작가로서, 많은 친구들의 다정하고 웃긴 친구로서, 의외로 라면을 맛있게 끓이지 못하시는 어머님과 라면을 즐겨 드시는 아버님의 딸로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조카의 고모로서 그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라면 이야기에 곁들여져 담겨있다. 윤이나 작가와 한때 함께 살았고 몇 년째 같이 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그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게 아닌 걸 알게 됐다. 비 오는 날 수영을 나만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점심으로 라면을 먹자는 말에 오케이 했었다거나(당연한 건가?), 어머님이 호떡 장사를 하실 때 집 아랫목에서 호떡 반죽을 숙성시키던 시기가 있었다거나, 지는 게 너무 싫어서 진 것 같으면 몰래 운다거나 하는, 그런 사실들을.
힘들고 지겹고 배고픈 모든 순간에 라면이 윤이나 작가에게 무척 좋은 음식이자 친구가 되어주었듯, 윤이나 작가는 내게도 라면처럼 꼭 필요한 만큼 따끈하고 든든한 우정의 마음을 자주 보내주었다. 두통이 심하다고 하면 약을 사다 주었고(약 뚜껑이 너무 안 열려서 여느라 거의 쇼를 해야 했지만), 갑자기 집 앞에 나타나 ‘오다 줏었다’ 모드로 소국 다발을 안겨주기도 했으며(꽃이 얼마나 튼튼했는지 거의 한 달을 집에 두고 즐겼다), 화가 나고 우울했던 날에 내가 쏟아내는 두서없는 말들을 들으며 나를 다독여주기도 했다.(고생 많았습니다...) “씁쓸하지만 달콤하고, 시큼하면서도 새콤하고, 짜다가도 싱거운”, 그러니까 “어른의 맛”을 실감하는 삶의 많은 순간에 윤이나 작가가 함께해주었다.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는 정말 웃기고 뭉클하고 훌륭한 에세이집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윤이나 작가의 친구이자 동료로서, 그에게 받은 것이 너무 많은 사람으로서 이 책이 아주 아주 많이 팔리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책이 많이 팔려서 윤이나 작가가 돈과 명예를 다 얻으면 좋겠고, 그에게 라면 광고도 들어오면 좋겠고, 가능하다면 이 에세이를 각색해서 웹드라마도 만들어지면 좋겠다. (농담이 아니다. 이 에세이집은 라면을 정말 좋아하는 비혼 여성 1인 가구를 주인공으로 한 웹드라마로 각색되기에 너무 적합한 책이다. 요즘 시류와도 맞는 설정 아닌지? 이건 라면 회사가 제작비를 대면 더 좋을 것 같다. 윤이나 작가가 직접 대본을 쓴다면 더 더 좋겠고.)
만약 누군가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를 읽은 후 도저히 참지 못하고 라면을 끓이게 되었다면, 꼭 책 제목을 해시태그로 달아 SNS에서 이야기해주었으면 한다. 윤이나 작가는 누군가 맛없는 라면을 먹는 걸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홍익인간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라면 제대로 끓이는 법을 댓글이나 멘션으로 알려줄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책을 읽은 사람과 윤이나 작가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거라고, 단언한다.
p.s.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어하는 챕터는 ‘아홉째, 시간과의 싸움’이다. 정확히는 그중 ‘달걀은 잠영처럼’ 파트다. 꼭 내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 부분이라서 그런 건 아니고...
p.s. 하지만 내가 가장 많이 운 부분은 ‘열한째, 맛있게 먹겠습니다’ 중 ‘어른의 맛’이다. 왜 울었는지는 읽어 보면 누구나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