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효진 May 29. 2022

혼자 하지만 혼자만은 아닌

1년 간의 수영을 돌아보며


6월부터는 월수금 아침 8시반으로 옮겨서 수영을 한다. 일 때문에 바빠진 친구가 원래 다니던 월수금 저녁 7시반을 유지하기 힘들어지면서 나도 반을 옮기기로 한 것이다. 함께 수영을 다닌 지 약 1년 만이다. 같이 수영하는 걸로는 마지막 날이었던 금요일, 샤워를 마치고 수영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가 악수를 건넸다. “오늘이 우리 같이 수영하는 마지막 날이야. 수고했어요.” 그 손을 맞잡다가 괜히 감상에 빠졌다. 이러다 다음 달에 다시 저녁 7시반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당분간은 친구와 같이 수영장으로 향할 일이 없다.


“우리가 수영을 꼭 해야 할까? 굳이?” 지난해, 원래 현장 등록만 받던 동네 수영장이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며 온라인 접수를 받기 시작했고, 친구와 나는 그 틈을 타서 등록했다. 예전 같으면 새벽 5시쯤부터 줄을 서야 했을 텐데, 이렇게 온라인으로 등록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면서도 오랜만에 수영장에 가려니 썩 내키지 않았다. 나는 몇 년 전 수영을 배우다 잘 되지 않는 평영에서, 친구는 자유형 즈음에서 한 번씩 그만둔 전적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수영장으로 가는 길에 등록을 취소해야 할 핑계를 번갈아 가며 열 개 정도씩 댔지만 수영장에 도착하니 어느새 입장해야 할 시간이 되어 있었고, 여기까지 온 김에 그래도 한 번은 해보고 취소해도 되지 않나 싶은 마음으로 첫 번째 날을 보냈고, 그러다 보니 1년이 흘렀다.


그 사이 계절이 여러 번 바뀌었다. 여름에는 머리카락이 젖어있는 채로 한강공원 쪽으로 먼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며 해 지는 광경을 구경했다. 저기 해 지는 것 좀 봐! 한강 근처를 걷다가 친구가 가리킨 방향으로 눈을 돌렸을 때, 주황색으로 빛나는 해 아래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줄줄이 지나가던 광경이 떠오른다. 어떤 날에는 치킨이나 라면을 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비눗방울을 흩날리기도 했다. 겨울에는 수영장으로 향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억지로 롱 패딩을 걸치고 친구와 함께 춥다는 말을 오십 번 정도 하며 어떻게든 수영을 하러 갔다. 우리 집에서 7분만 걸으면 친구 집, 거기서 다시 10분만 걸으면 수영장이니까. 딱 7분만 참으면 수영장까지는 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2021년) 여름이었다....


그렇게 수영장에 가면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심한 내향인이라 같은 반에서 수영을 해도 좀처럼 인사를 먼저 건네지 못하는 나와 달리, 친구는 거의 반장으로 보일 만큼 모든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얼굴을 트고 스몰토크를 하는 타입이다. 월수금 저녁 8시반에 혼자 다니다가 친구가 있는 7시반으로 처음 옮겼을 때, 친구가 그 반의 모든 사람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저게 가능해?’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의 친구인 덕분에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조금씩 가까워졌다. 초급에서 몇 달 동안 함께 수영을 하다가 중급반으로 함께 올라간 언니들(그냥 ‘같은 반 사람들'이었다가 이름까지 알게 된 언니들이다.), 호흡과 발차기부터 시작했지만 수영을 너무 좋아하고 열심히 한 끝에 같은 초급반 출신들 중 가장 수영을 잘하게 된 남자분. 그리고 중급반의 어머님들. 친구들 덕분에 나도 그 사람들과 함께 한 레인에서 수영하는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친구가 없는 날에 수영장에 혼자 가더라도 외롭지 않았다.


수영을 꾸준히 하는 이유를 ‘물을 워낙 좋아하고, 수영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기분이 좋아서'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거짓말은 아니다. 자유형을 한 바퀴만 돌아도 기진맥진하다가 세 바퀴쯤은 그럭저럭 돌 수 있게 되었을 때. 누가 내 양팔을 물아래에서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접영이 무겁다가 어느 날 힘이 붙었을 때. 오리발을 끼고 배영을 하면 코와 입으로 물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던 시기를 지나 오리발의 스피드를 즐길 수 있게 되었을 때. 수영을 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운동은 비교적 정직하게 결과가 나오는 분야여서, 연습을 거듭하는 이상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실력이 늘기는 는다. 최근 가장 크게 기뻤던 건 심장이 튼튼해졌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을 때였는데, 원래 200 가까이 치솟았다가 잘 내려가지도 않았던 심박이 웬만해서는 190을 넘기지 않을뿐더러 안정적으로 회복되기까지 하는 그래프를 보며 말 그대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진짜 심장이 튼튼해졌잖아? 하는 이상 나아지고 달라진다는 감각이 수영을 계속했던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실력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수영을 1년 동안 이어가게끔 한 건 그게 아니었다. 오만 쓸데없는 소리를 하며 친구와 수영장까지 함께 걷는 길. 수영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며 보는 일몰. “내가 효진 씨 집까지 데려다줄게" 하며 친구가 집까지 데려다주는 것. 꼭 우리 집 근처 간식 가게에서 아몬드 빼빼로를 사고야 마는 친구의 습관. 얼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영원히 이렇게 살면 왜 안돼?”라고 묻는 우리 둘의 입버릇. 한 레인을 쓰는 사람들의 실력이 쑥쑥 느는 것을 보고, 질투하고, 감탄하는 것. 오늘은 누가 오고 누가 안 왔는지 살펴보고 안 온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일. 사이드 턴을 하는 동안 우리가 인사를 하면 자연스럽게 받아주며 멋지게 자유형을 해서 반대쪽으로 돌아가는 중급반 어머님의 모습 같은 것들. 수영 실력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서 시무룩해질 때도 이런 것들 덕분에 변함없이 일주일에 세 번은 수영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요즘 주변에 풋살을 하는 사람이 늘면서 ‘나도 팀 스포츠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라고 고민했다. 수영… 재미있고 좋지만 더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거나 기록을 단축하고 싶은 건 아닌데, 언제까지 혼자 하는 운동을 해야 할까. 더 늦기 전에 나도 팀 스포츠의 기쁨을 알아야 하는 건 아닐까 싶었던 거다. 수영은 혼자 하는 운동이다. 자유형을 몇 바퀴 돌든, 평영이 잘 되든 아니든, 그건 나의 문제고 나만의 기록이다. 하지만 완전히 혼자 하는 운동만은 아니다. 같은 레인에서 수영을 하는 우리는 한 팀이 아니지만, 서로의 성장을 봐주고 서로를 궁금해하고 안부를 물으며 함께 수영을 한다. 우리는 수영장의 풍경을 같이 만든다.


“어머님, 저희 오늘이 이 반에서 수영하는 마지막 날이에요. 다음 달부터는 다른 반으로 가요. 저는 다른 요일, 이 친구는 아침반으로요.” 친구가 중급반 어머님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평소에도 익살스런 말을 많이 해서 우리를 웃겼던 어머님은 우리 둘의 얼굴을 한참 보다가 장난스럽게 “얼굴을 자세히 봐 둬야지. 안 까먹게.”라고 말씀하셨다.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이빙을 하고 수영장을 반 바퀴 빙 돌아 걸어가는 동안 어머님이 내 옆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앪겨?” ‘앪긴다'라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라 되물었다. “네?” “왜 앪기냐고.” “네?” “그러니까, 왜 앪기냐고.” 나는 어머님의 어깨를 괜히 감싸안으며 다시 물었다. “어머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아니, 왜 다른 반으로 앪기냐고.” 아, 그렇구나. 왜 옮기냐는 말씀이셨구나. “친구가 바빠져서 이 반에 더 이상 올 수 없대요. 그래서 저도 옮기려고요.” “그렇구만. 그래, 친구 따라 강남도 간다잖아.” 어머님의 실없는 농담 덕분에 나는 한 번 더 웃었다. 헤어지는 마음이 슬프지만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를 읽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