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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 S Feb 10. 2022

쓸쓸함과 아름다움, 그 사이

관금붕, 연지구


한 권의 책을 읽고 덮은 것 같은 여운이 남는 영화가 있다. 관금붕 감독의 <연지구>는 그런 영화다. 영화는 1930년대 매염방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기생인 매염방은 장국영을 만나 첫눈에 반하지만, 신분 차이로 인해 음독자살을 선택한다. 이후 50년이 흐른 뒤 귀신이 돼 신문사에 다니는 만자량에게 ‘도련님을 기다리고 있다’는 광고를 싣는다. 장국영은 나타나지 않았고, 알고 보니 음독자살 당시 목숨을 건져 지금은 모든 돈을 잃고 단역배우로 살아가는 70대 노인이 된 사실을 알고 떠난다. 


이 영화는 전반적인 분위기와 음악,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많은 여운을 선사한다. 신비하면서도 어딘가 무서운 듯한 분위기로 시종일관 관객들을 의심하게 만들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장면 이후 반전이 담긴 결말을 확인하게 된다. 마치 충격적인 내용이 담긴 소설을 읽은 것처럼. 실제 <연지구>는 <패왕별희>를 쓴 이벽화의 통속 소설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는 등장인물에 초점이 쏠린다. 매염방과 장국영, 장국영과 매염방. 그들은 이뤄질 수 없는 지독한 운명 아래 사랑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욕구를 갖고 있었으므로. 


영화를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캐릭터에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아래, 그들은 어떻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연지구>에서는 사랑을 택한 매염방과 어쩔 수 없이 살아난 장국영, 그러나 그 이후에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애처롭고 힘들게 보냈을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남기는 여운은 쓸쓸함과 사랑, 이미 벌어져 버린 시간 사이에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지 않았을까. 


1987년도 영화다 보니 목소리는 당연히 더빙이었고, 화면 곳곳에 보이는 설정들이 옛날 영화임을 인지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로 가득했다. 그렇기에 2022년에 보는 지금. 조금은 지루하면서도, 웃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장국영의 살아있음을 온전히 느낄 수 있고, 또 한 번 경극 배우로 나온다는 점이 장국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가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장국영의 미모와 쓸쓸한 감정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한 영화, <연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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