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최은영
희령이 여름 냄새로 기억되었듯, 나는 이 책을 우리 할머니 냄새로 기억하고 싶다. 그 시절, 전쟁통 속에서 힘든 나날을 지낸 친할머니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떠오르는 소설이었다. 그 힘든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 그들의 인생을 경험과도 비슷한 수준의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또 다른 우리-시대적 배경만 다를 뿐 사람에게 상처받는 것은 동일한-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 할머니는 6.25 때 10대 언저리 소녀였다. 중학교 3학년 때, 할머니랑 잠시동안 같이 살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할머니한테 "전쟁 기억이 있냐"고 여쭤봤었다. 할머니는 눈이 펑펑 쌓였던 날, 기차를 타려고 뛰어가던 어떤 부인이 떨어트린 반지를 발견했다고 했다. 오래된 기억이라 그 외에 다른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할머니가 들려주던 눈 속 세상이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춥고 배고프고 무서운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했다.
<밝은 밤>은 경험해보지 못한 현실을 생생하게 상상하게끔 하는 책이다. 수많은 영화, 드라마로 재현된 전쟁통 시절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단순히 떠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감정이나 표정을 독자들이 직접 본 것처럼 그리게끔 하는 작품이다. 등장인물은 주인공 지연, 지연의 엄마 미선, 미선의 엄마 할머니다. 지연의 할머니를 예전에 잠깐 놀러 갔었던 '희령'이라는 도시에서 조우하게 되며, 할머니한테 어릴 적 기억에 대해 전해 들으며 새비 아주머니와 아저씨, 그들의 딸 희자, 그리고 할머니의 남편과 엄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 듣는다.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눈치를 보는 지연의 할머니, 여자이기 때문에 아무도 데려가지 않기 전에 이미 결혼한 사실이 있는 남편을 할머니의 사윗감으로 덜컥 정한 아버지, 딸 미선을 데리고 어떻게든 도망칠 때 여자라는 이유로 "저 사람도 문제가 있을 거야"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도망쳐야 했던, 그 시절의 심정이었다. 이 대목에서 여성 소설 측면의 관점으로 바라봤을 때, 여성 성폭행이나 데이트 폭력 같은 기사를 보면 사실 댓글창뿐만이 아니라 나의 지인, 가족들 사이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여자가 벗고 다녀서 당한 거 아니냐" 혹은 "데이트 폭력할 것 같은 사람을 사귄 여자가 잘못이다. 대화를 나눠보면 저 사람이 정상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냐"라는 말이다. 특히 주인공 지연의 남편이 외도를 했을 때에도 주위 사람들은 지연의 탓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부분도 그렇다. 우리는 왜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에게 초점을 맞추게 됐을까? 잘못을 저지른 건 100% 가해자인데, 왜 우리는 피해자에게서도 그 이유를 찾고 있을까.
이 소설은 우리가 갖고 있는 여성이라는 성 역할, 선입견, 인식에 대해 특정 인물을 통해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을 이루는 사람들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나 인생을 담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우리 모두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 삶은 '고통'이기 때문에, 그 고통의 맥락을 에피소드를 통해 독자는 체감하게 된다. 그러나 고통과 함께 우리 인생에서 관계 맺는 사람들의 따스함도 전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너무나 찰나”인데, “찰나에 불과한 삶이 왜 이렇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130p)” 그러나 그럼에도 지연이의 할머니, 새비 아주머니, 희자, 그리고 해 같은 새비 아저씨가 있기 때문에 고통을 감내하면서 살 수 있는 것 아닐까. 수많은 관계들 사이에서 나의 밝은 밤을 보내는 것. 이 소설이 준 가장 큰 교훈으로 다가온다.
소설의 연장선에서.
20대 끝자락, 30대를 맞이하는 시간에서 예상외로 나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주는 사람은 엄마다. 우리 엄마도 아직까지 관계 맺고 지내는 학부모 모임에 나갈 때마다 자랑할 거리를 찾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랑할 것이 별달리 없는 나는 우리 엄마가 ”자식을 전시품처럼“ 생각하진 않을까 싶고, 나에게 가장 상처 주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도 엄마이기 때문이다. 엄마와 자식 간의 끈끈한 관계 속에서 미움과 경멸이라는 감정이 등장한다는 것이 때로는 그만큼 복합적인 관계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지만,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태어나고 나서는 누구보다 날 많이 사랑해줬을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을 때 다시 이 책을 찾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둥글고 푸른 배를 타고 컴컴한 바다를 떠돌다 대부분 백년 도 되지 않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우주의 나이에 비한다면, 아니, 그보다 훨씬 짧은 지구의 나이에 비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너무도 찰나가 아닐까. 찰나에 불과한 삶이 왜 때로는 이렇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나무로, 기러기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인간이었던 걸까. 130
나는 엄마의 그 작은 기대마저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엄마를 철저 히 실망시켰다. 엄마에게 인정받기를 기대하고 번번이 상처받기보다 는 내 일에서 인정받고 친구들에게 지지를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로는 아는 일을 내 가슴은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식은 엄마가 전시할 기념품이 아니야. 마음속으로는 그 렇게 소리치면서도, 엄마의 바람이 단지 사람들에게 딸을 전시하고 싶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아팠다. 136
내가 지금의 나이면서 세 살의 나이기도 하고, 열일곱 살의 나이기도 하다는 것도. 내게서 버려진 내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도. 그애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관심을 바라면서, 누구도 아닌 나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