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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 S Apr 04. 2021

말로 쌓는 관계들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


내가 말하고 있잖아의 제목을 다르게 이해하기 시작한 건 소설 중반쯤을 넘게 읽던 때였다. ‘말’하고 있잖아에 말이 특별한 소재로 등장한다는 것. 이 소설은 실어증을 앓는 주인공이 같은 교정원에 다니는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며 이겨나가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무작정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그 누구보다 사람에게 약한 인물이기도 하다. 


말. 나는 사실 말하기를 굉장히 좋아한다. 말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말을 거는 걸 특히 더 좋아한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계속해서 궁금하고, 듣고 싶어 자꾸만 말을 걸기도 하고, 엄마 아빠에게도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묻는 것은 좋아하지만 대답은 회피하는 경향도 있고, 오디오 공백을 참지 못하면서도 어느 때에는 오디오 공백을 간절히 바랄 때도 있다. 


이렇듯 시도 때도 없이 일관적이지 못한 나와 말의 관계는 지인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내 대답에는 사실 일관성이 있던 적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 흔한 이상형도 항상 변했고, 나 스스로를 이야기할 때조차 일정했던 적이 없던 것 같다. 그렇다고 허언증을 앓는 것은 아니지만, 난 내가 뱉는 말이 날 규정한다고 생각했기에 가끔은 나 자신을 다독이고 설득하기 위해 내가 뱉는 좋은 말로 날 ‘좋게’ 규정하려 했다. 


지금도 고쳐지진 않았다. 그래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아, 나 이거 좋아하네”하고 깨닫는 순간들이 꽤 있다. 나 스스로에게 마음으로 묻는 것보다 상대방과의 대화(상호작용)을 통해 나 자신을 알게 되는 순간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관계란 우리가 살아가며 맺는 가장 평범하고도 소중한 연결이기에 나는 이 점이 싫지만은 않다. 나 스스로에게 묻지 않고 주위 사람들과 나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들이 꽤 좋다는 뜻이다. 이 점은 주인공과 나의 닮은 점이라고도 생각하고 싶다. 마음을 뺏기고 싶어 하지 않지만,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만 보면 모든 경계가 풀리고 졸졸 뒤따르는 사람.


짧은 분량에, 평범한 소재라고도 생각하는 사건들의 연속이지만 상처라는 키워드가 가장 중심인 주인공이 위기를 극복해가고, 상처를 함께 치유해가는 과정이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상처를 혼자 짊어질 이유가 없다. 관계를 맺으려고 태어난 존재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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