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기
우리들은 괴물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나와 같은 인간이면서도 끔찍하다 여겨지는 일을 저지른 이를 '이해 불가능 한' 괴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이 (좁게는 길에서 침을 뱉고 담배를 피거나, 예의 없이 구는 사람, 크게는 범죄자들 등으로 다양한) 들과 우리가 같은 인간이며, 그들 안에 있는 관념과 편견이 내 안에도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한다. 그래서 우리는 괴물을 만든다.
몇년 전에 아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활동적이며, 운동권이고, 빈민가에 자발적으로 봉사를 하러 다니곤 했다. 그는 우리가 공통적으로 아는 어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의 도덕성에대해 비난하면서, 그 사람보다 자신이 훨씬 나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는 물었다. "정말? 네가 훨씬 낫다고 생각해?" 그가 그런 질문을 하는 나에게 화가 났는지, "당연하지. 나는 봉사도 다니고, 약자를 위해서 노력하고, 정치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나중에는 당연히 천국에 가야한다고 생각해." 하고 우기던 모습이 기억난다. 더불어 그의 뿌듯한 표정도... 그러나 그 자신 또한 완벽한 이가 아니었다. 그를 옆에서 지켜 보면서, 나는 그가 빈민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며 연민을 느끼는 동시에 우월적인 태도를 취하며, 자신이 백인이고 중산층인 사실에 대해 자랑스레 여긴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는 미지의 존재인 신을 믿으면서도 한의학을 믿지 못한다고 비난하는가 하면, 여성우월주의나 남성우월주의로 타성他姓을 비난하고 조롱하면서, 동시에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에 대해서는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네이버 기사의 댓글에 맘충이니, 조선족이니, 외노자이니, 좌파니, 우파니하며 비난하는 이가, 전쟁사진 속 즐비한 시체들을 보고 전쟁은 끝나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을 일으킨 전범의 내면에 있는 분리하며 험오하는 편견과 관념은 인터넷 창에서 차별적인 댓글을 토해내는 이들의 내면에도 똑같이 존재한다. 당신이 가진 분리주의가 향하는 곳이, 남자이건, 여자이건, 흑인이건, 백인이건, 동양인이건, 기독교이건, 유태교이건, 이슬람교이건 무슨 상관인가. 궁극적인 속성은 똑같은데 말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댓글을 달고 있는 이들에게는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그래서 나에겐 니체의 이 말이 다른 뜻으로 다가온다. 심연을 들여다 보는 순간, 우리 자신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심연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아한다. 그들의 내면에 있는 것이 나의 내면에도 있으며, 이 비참하고, 끔찍한 세계를 이루는 요인에 내가 있다는 것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기아와, 난민 문제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라보아야 한다. 꾸미지 않고, 정당화하지 않으며.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정말 변할 수 있다.
우리의 관념이 그저 표면적인 관념이 아니라, 존재로 확장되어질 수 있도록, 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