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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융 Dec 06. 2018

이야기는, 살아있어서 잘리면 피가 난다.

내가 좋아하는 책 '단편적인 것들의 사회학'에서 저자 기시 마사히코는 이런 얘기를 한다. 

'이야기는, 살아있기 때문에 잘리면 피가 난다.' 


우리는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이야기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런 순간 순간은 아름답다. 좀처럼 목격하기 힘든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와 술 한잔을 기울일때, 어느 순간 그 사람의 눈이 반짝이며 이야기 그 자체가 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그 사람이라는 인간을 사랑하게 된다. 


그런 이야기를 가장 잘 이끌어내는 것은, 우선 나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그러나 어느샌가부터, 반복되는 나 자신의 이야기는 나 자신의 2차적 창조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닫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준비가 되었어요.' 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주는 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혹은 그런 관계가 시간이 지나 형성될 때가 있다. 그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다시 돌아와, 우리가 이야기 자체가 되어버린다는 그 말에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이야기를 자르거나, 그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다. 상대를 상처주는 셈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이건 비단 나와 다른 누군가와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나와 나 사이의 관계에서도 해당되는 일이다. 내 안에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산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 중 어느 것은 스스로를 빛내며 나의 입을 통해, 몸을 통해 살아나기를 간정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은 많은 순간 나에 의해, 다름 아닌 나 자신에 의해, 무시되어지고 만다.  그리고 무시된 이야기는 다시 좀 처럼 나오기를 힘들어한다. 혹은 다른 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기를 쓰거나. 이야기를 거부하는 몸과, 자신을 표현하려는 이야기 자체가 싸우게 되면서, 인간은 점점 더 비뚤어지게 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어른'이 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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