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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풀 Feb 10. 2022

노동 경쟁력

손발인가 두뇌인가?

인간을 정의하는 다양한 표현이 있다. 

가장 대표적이며 유발 하라리로 인해 더욱 일반화된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로부터 호모 일렉투스(직립 보행하는 인간)’, ‘호모 파베르(도구를 사용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 등등 모두가 인간을 지구 상의 모든 다른 존재와 구별 짓는 뚜렷한 표현들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사람이야 말로 ‘호모 트레 시우스(Homo Trashius)’ 즉, ‘쓰레기를 만드는 인간’으로 구분 짓고 싶다. 지구 상에 인간만큼 무책임하게 쓰레기를 양산하는 종이 또 있을까? 오죽하면 지질학자들은 오늘을 ‘인류세(Anthropocende)’라고 명명했을까… (이 얘기도 다음으로 미루자)


아무튼, 인간은 생각할 수 있기에 직립 보행하면서 자유로워진 두 손을 가지고 도구를 만들 줄 알기에 오늘에 이르렀다. 압축하면 인간의 역사는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다. 동물을 이용하기 시작한 이래 수력과 화력, 나아가 이를 발전시킨 증기기관, 전기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손발의 수고를 덜기 위함이다. 그러던 것이 컴퓨터와 인공 지능 시대에 들어서면서 급기야는 손발을 넘어 뇌의 수고까지 기계에게 전가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이 지점에서부터 인간의 기대와 고민이 발생한다. 성인의 뇌는 대략 1.5킬로그램으로 신체의 2~3%를 차지한다. 하지만 뇌가 소모하는 열량은 인체 소비의 20%를 넘는다고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나면 배가 고픈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하니 뇌의 에너지 소비는 대단하다. 따라서 그 노력을 대신할 수 있는 발명은 더더욱 대단하다. 문제는 그 노력의 상당 부분이 인간이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답게 하는 영역이라는 점이다. 


지금 우리는 약한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와 있다. 레이 커즈와일이 말하는 특이점(Singularity)- 대략 2045년 정도로-을 지나면 강한 인공지능, 즉 모든 면에서 인간 뇌의 능력을 넘어서는 단계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 봐야 지금부터 고작 2,30년 앞의 일이다. 디지털 전환기에 들어선 지난 수 십 년의 변화 추이와 속도로 미루어 볼 때 능히 가능한 일이다. 먼 미래의 공상이 아니다. 지금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나이요 지금 사회에 들어선 세대는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할 나이다. 이들에게 있어 취업, 전업 혹은 창업은 무슨 의미일까? 아니 보다 더 근본적인 물음으로 ‘일’이라는 게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게 될 것인가?


디지털 전환기에 들어서기 직전까지 우리는 인구 감소를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전력을 투구해 왔다. 그리고 이후는 잘 아는 대로 인구 증가를 위해 수십조 원의 재원을 들여가며 노력하고 있다. 인구 증가를 멈추기 위한 노력이 먹혀들었다면 오늘의 출산 장려 책 또한 그 빛을 봐야 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염려하는 대로 쉽사리 그리 될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작금의 인구 감소는 손발과 같이 기계가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 지능이나 로봇과 같이 인간 그 본연의 존재인 뇌가 해야 할 역할을 대신할 수 있게 된 현상과 자연스럽게 일치하는 변화가 아닐까? 산업사회는 손발이라는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더 많은 인구를 요구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손발보다는 뇌가 더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대신한다. 


손발에서 머리까지 기계에 의존한다면 인간이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 당장의 취업에서 조금 먼 장래의 커리어까지 고민한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 찾기에 몰입해야 하지 않을까? 가장 흔하게는 창의성이라고 하지만 그 조차도 딥러닝이니 머신러닝이니 하는 기술들이 인공 신경망을 기반으로 앞서갈 듯하니 난감하다. 그래도 내 보기엔 단기적으로는 창의성이요 장기적으로는 인성이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츠의 하이테크, 하이터치가 이를 대변한다.


인구의 감소는 비단 노동력 때문만은 아니다. 지구의 생존을 위해서도 절실하다. 코로나 2년 차를 맞이한 지난가을에서 요즘 겨울에 이르기까지, 올려다보는 하늘은 과거 6,70년 대의 푸른 하늘 그대로다. 지구 상의 인구가 40억 이하이던 시절이다. 40억은 지구라는 생명체가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용량이라고 한다. 지구는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인간더러 그렇게 살라고 한다. 

우리의 선택은 두 가지다.  

40억처럼 살 수 있도록 환경이나 이동을 자제해 가든지 아니면 과거 몇 차례의 자연재해로 인한 멸망이 아닌 인간이 자초한 재해를 앞당기든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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