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이 돼라
젊은 시절, 해외 특히 유럽에 출장 가면 난감했던 일 중 하나가 백화점 개점 시간이 들쭉날쭉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해외 출장을 가면 직장 상사나 동료들에게 간단한 선물을 돌리곤 했다. 집에 있는 가족들도 내심 뭔가를 기대하고. 해서 바쁜 틈을 타 일을 마치자마자 달려가면 어느새 문을 닫았다. 안내판을 자세히 보면 심지어 요일마다 어느 날은 오후 4시 또 언제는 오후 5시 하는 식이니 한국 기업의 퇴근 시간으로는 어느 날도 불가하다. ‘이 넘들은 일은 안 하고 맨날 놀기만 하나’고 투덜댔던 기억이 새롭다.
얼마 전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 기업이 전 직원 주 3일 출근 혹은 완전 재택 중 택일의 근무 방식을 발표했다. 또, 정부는 코로나로 인한 소상공인 방역 지원금 지급을 개시한다. 보편적 기본 소득의 시작인가?
코로나의 2년은 20년의 사회 변화를 앞당겨 놓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옥스퍼드 대학 부설 연구 기관인 마틴 스쿨이 발표한 직업의 소멸과 새뮤얼 아브스만이 주장한 지식 반감기(2014)는 어떻게 되나? 일자리는 더욱더 빠르게 감소되고 지식의 수명 또한 더더욱 짧아질 게 뻔한 노릇이다. 그렇다면 사회 진출을 앞둔 학생이나 취준 생들은 어쩌란 말인가?
전통적 개념의 일과 일 자리는 이미 포화 지점을 넘어서고 있다. 인공 지능이나 로봇이 부재하던 2~30년 전의 유럽이 그랬 듯이 오늘 우리는 있는 일 자리를 나누거나 혹은 긱(gig)이나 임시직 등 고용 방식이나 개념을 바꾸거나 그도 아니면 자기 방식의 일 자리(창직)를 만들어야 한다.
일은 직업이고 직업은 취업이라는 획일적 사고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만 한다. 주변 지인 중에 대학 재학 시절부터 스튜어디스 만을 목표로 취업 준비를 해 오는 여성이 있다. 코로나로 인한 여행업의 불황기로 취업의 문이 현격히 좁아졌음에도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끈기는 자칫 오기로 변질될 수 있다.
직업은 곧 취업이라는 등식은 안전 혹은 안정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영국의 경제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0여 년 전, 한국 사람은 안정이라는 병에 걸렸다(Safety is everything in Korea)는 기사를 낸 적이 있다. 때문에 중학생 때부터 취업 준비를 하고 고등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공무원인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직장의 평생 고용, 대학의 정년 보장 시절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누구도 정년퇴직을 기대하지 않는다. 또, 그 어렵다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을 어렵사리 입사한 신입사원들이 첫 해 자진 퇴사율이 30%에 육박한다는 보도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들을 종합해 보면 답은 한 가지, 집단적 사고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일이다. 집단적 사고는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누적돼 온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중 매체 등 규모의 경제로 인한 산물이다. 사회는 이미 탈 대량 시스템으로 전환된 지 오래다. 사고의 전환이 이를 따르지 못할 뿐이다. 서점에 나가 보면 이런 변화를 지적하는 책들이 넘쳐 난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 정체성의 경제학.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부당하고 불리한 이유가 100가지가 넘어도 해답은 ‘각자도생’이다. 믿을 수 있는 건 나 자심 뿐이다. 모든 전략과 전술을 각개전투에 수렴시켜야 한다. 넘버 원이 아닌 온리 원에 집중하라던 이어령 교수의 외침이 그립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