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근만근의 돌덩이를 이고지고 사는 삶. 눈을 가리지 않고선 버틸 힘이 없고, 절망에 빠진 것 같은 구부정한 어깨와 탄력없이 접힌 뱃살. 내 삶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가 이 그림과 만나게 해준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원망도 됐다.
내 삶의 숨기고 싶은 모습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다. 그래도, 어디에 존재하는 희망이라는 것을 여전히 찾고 싶다. 부지런한 작가는 그 마음조차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아래 그림도 같이 전시해 두고 있었다.
스스로를 탈탈 털어 나무를 키워내고 낙엽까지 떠나보낸 시기, 이제는 좀 쉴까 하고 지친 발걸음을 옮기려는 모습. 그래, 덜 원망스럽고, 더 위로가 된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진다. 사실 이 작가의 작품들 중 처음 눈을 끄는 것은 하얀 돌의 그림들이다.
프랑스 중부 지방에 위치하며 와인산지로도 유명한 루아르 (Loire) 지방에 이런 류의 돌들이 많이 나고, 채석장도 잘 되어 있다고 한다. 작가는 거기서 돌을 가져다가 표면을 맨들맨들하게 한 뒤 그림을 그리고 알콜로 색이 돌에 '새겨지도록' 한다고 한다.
하얀 돌과 스케치로 만들어내는 흑백영화 같다. 길을 가다가도 뒤를 돌아보게끔 하는 매력있는 작품 스타일이고 섬세한 그림이다.
작가가 궁금해진다. 어떤 모습을 한 사람일까.
마침 그가 갤러리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불어도 잘 못하지만, 먼저 다가가 인사를 했다. 작품 잘 봤고, 정말 다 좋다. 라고 진심을 담아서 얘기를 했다. 고맙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나의 마음이 전달되었을까, 아니면 형식적이라고 생각했을까.
사실 관계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작가에 대해서 더 상상을 해봤다. 그의 첫 인상은 '착실한 모범생'이다. 모범생답게 데생과 조각을 넘나들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였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많은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굉장히 부지런한 작가임을 반증하기도 한다.
그의 조각은 나무를 깎아 만든, 2m가 넘는 거대한 소년의 상이었다. 통나무를 쉼없이 깎고, 실수하면 처음부터 또 깎고. 다 깎고 사포질을 부지런히 했겠지.
엄마의 표현에 따르면 이 소년상은 물수제비를 하려고 준비하는 모습같다고 한다. 진중하고 결의에 차 있다.
작가의 인상도 그러했다. 진지하고 성실해 보이며,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매일 같이 작업을 할 것 같다. 꽤 자주, 미래가 불투명하고 지금 짊어진 삶의 무게는 헤아릴 수 없이 무겁다고 느끼겠지. 그래도 스스로를 갈고 닦고 물을 줘서 창작물을 꾸역꾸역 하나씩 내보내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게 지리멸렬한 하루하루를 채워가다 보면, 그리고 운도 좋다면, 그간의 고민과 노력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영감이 되는 그런 날도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