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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린 Dec 16. 2023

아파트를 매도하며 배운 점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쓸만한 조언

십 삼 년 간 다섯 번의 부동산 매매를 했다. 지난 달에는, 십여 년 간 보유했던 그리고 가장 애정을 갖고 있던 아파트를 매도 했다. 돌덩이와 다름없는 무생물의 자산이지만, 오래 보유하고 애정을 갖고 관리 하다 보면, 팔 때의 기분은 싱숭생숭하다. 현금을 쥐어서 좋기도 하지만,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교차한다.

 

가끔 신이 나기도 하지만, 종종 고생이 뒤따르는 자산 매매와 관리, 매도 과정을 거치면서 몇 가지 배운 점이 있다. 손해를 보면서 시행착오를 했다고 표현하는 쪽이 맞겠다. 좋은 일만 있었다면 기분에 취해 배운 점을 새길 일이 적기 때문이다. 블로그에서 꽤 많은 검색을 하더라도, 사실에 근거한 지식은 쉽게 얻을 수 있지만, 경험에 의한 시행착오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간 배운 점들을 정리해 보았다.



1. 믿을 수 있는 전문가(부동산 중개인, 세무사)와 오랜 기간 거래를 하는 것이 좋다. 


좋은 집을 선택할 수 있게 정직한 조언을 해주고, 갖고 있는 집을 제 값 받고 팔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공인중개사의 능력에 영향을 받는다. 호황기에는 어디든 내놓기만 해도 잘 팔리고 좋은 물건들도 발에 차일 정도로 많겠지만, 경기가 안 좋을 수록 공인중개사의 능력이 더 빛을 발한다.


친척 할머니 중에 80~90년대 부동산으로 큰 자산을 일구신 분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할머니의 그 수완이 궁금해서 직접 물어봤다. "할머니, 부동산 비싼데, 어떤 부동산을 얼마 주고 사야 할지 어떻게 알아요?"

할머니의 답은 뻔하지 않았다. "복덕방 주인한테 돈을 다른 사람보다 많이 주면 돼. 그럼 그 사람이 할머니한테 좋은 걸 가장 먼저 알려주고, 내 것도 필요할 때 금방 팔아주거든. 좋은 사람 있으면 원래보다 돈을 좀 더 많이 줘. 그래도 내가 버는 돈은 훨씬 크니까." 할머니는 몇 년 전 돌아가셨지만, 그 질문하던 날의 기억은 생생하다. 그날로부터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할머니의 수완에서 배울 점이 있다.  


경기가 어려울 때, 부동산을 매도하거나 세입자를 구하는 일은 마음을 졸이기 일쑤다. 정해진 일자까지 계약이 없으면, 막아야 하는 돈이 수 억 원인데 그런 돈이 나에게 있을 리가 만무하니 잠도 안 온다. 그럴 때, 공인중개사의 집요한 영업이 나를 살린다. 여러 부동산에 내놓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투망을 넓게 던져 뭐라도 걸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 보단 작살로 정확히 조준하는 편이 승률이 높다. 게다가, 신축 아파트의 경우 비슷한 물건들이 동시에 시장에 나오는 경우가 많아 어떤 물건은 빨리 나가고 어떤 물건은 그렇지 않는데, 이는 공인중개사가 내 물건을 얼마나 밀어 주는 지에 굉장히 영향을 받는다.

사는 사람 입장에서도, 워낙 큰 금액이고 몇 군데 돌아봐서는 뭘 해야 할지 판단도 잘 안 서는데, 세일즈맨이 열정 없이 설명하면 굳이 계약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모 중개사와 4-5년 거래를 한 적이 있다. 그 중개사는 법정 수수료 보다 훨씬 싸게 내가 보유한 아파트에 세입자를 두 번 구해줬었다. 친척 할머니의 조언과는 다르게 단기적 비용에 매몰되었던 나는 무저건 싼 곳을 구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세입자가 나갈 때 집에 중대한 손상이 있는지를 체크해야 하는데, 그런 절차 따위는 없었다. 빌트인 가전을 영구적으로 손상시켰고, 문, 붙박이 가구 등이 다 썩어서 뜯어내야 할 정도로 상했는데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온 다음에야 알았다. 이사 나가는 날 확인하지 않으면, 그걸 나중에 청구하기란 쉽지 않다. 오롯이 임대인이 다 메꾼다.



세무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데,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근로소득 외의 소득이 늘어날 수록, 세금은 복잡해지고 금액도 확확 늘어난다. 양도세 한 건 처리한다고, 여행 가서 슈퍼에서 물건 계산하듯이, 세무사에게 의뢰하고 연락을 끊으면 안된다. 2020년 이후, 부동산 관련 세법은 패치워크처럼 개정, 개정, 개정을 거듭했다. 더불어 세무사의 수임료도 2017년 대비 두 세배 상승했고, 그마저도 양도세는 접수도 잘 안 해준다. 워낙 복잡하고 확인할 게 많은데, 잘못 계산하면 세무사의 손해가 막심하니 말이다. 예를 들어, 하반기에 집 매도 계약이 되면, 종부세 관련해서도 종부세 신고를 해서 세무서와 금액 조정을 해야 하고, 다주택자라면 경정청구를 할 수도 있으며, 종전주택을 2년 이내 매도해야 하는지 3년까지도 되는지도 기재부에 질의를 해서 확인해야 하기도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양도세 감면 조건으로 상생 임대 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다. 이를 일반 소비자가 미리 딱 다 알아서 세무사에게 이렇게 해주세요, 라고 하면 상호간 편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러니, 좋은 세무사가 있다면 지금 당장 의뢰할 것이 없더라도 잘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2. 목적을 먼저 생각하고 잊지 않는다.


자산을 매입할 때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부동산에서는 목적을 크게 3가지: 미래 가치를 위한 것 vs. 현금 흐름을 위한 것 vs. 나와 우리 가족이 살 수 있는 곳, 정도로 좁힐 수 있다.

자산을 매입하는 순간, (대부분의 경우) 상당한 현금 유동성이 없어진다. 즉, 급박하게 생긴 사건 사고에 대응할 수 있는 자금력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금리라도 올라가면, 없는 살림은 더 궁핍해지고, 내가 대처할 수 없는 상황에 불안과 짜증이 늘어난다. 가족 중 누군가 병원 신세라도 지면, 어렵게 마련한 자산을 손해 보면서 급하게 매도해야 하기도 한다.

그러니, 흔들리지 않고 좋은 매도 타이밍이 올 때까지 잘 버틸 수 있도록,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 하에, 좋은 시기가 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팔면 안된다.  



3. 유지 관리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부동산에서도 통할까? 낡은 아파트를 사서 보란 듯이 리모델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건물이 아닌, 아파트의 경우 리모델링을 했다고 해서 같은 동에 다른 집보다 훨씬 많은 전세금을 받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세입자는 올수리가 되어 있다고 해서 비싼 전세집을 들어가기 보단, 깔끔하지만 평균적인 금액의 집을 선택한다.

그러니, 갖고 있는 부동산을 필요한 만큼, 깔끔하게 유지, 관리하는 것은 필요하다.


아파트를 23년에 매도했는데, 22년 초 500만원 들여서 부엌 공사를 했었다. 그때만 해도, 좀 더 오랫동안 보유할 줄 알았고, "보기 좋은 떡"을 만들어야 전세도 잘 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사치였다. 좀 불편하지만, 멀쩡한 부엌을 뜯어내고 새로 한다고 하여 전세금을 더 받는 것이 아니다. 부지불식간, 같은 동에 다른 물건보다 우리 집 전세가 아주 조금 더 일찍 계약이 되었을 수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그건 의미가 없다.

게다가, 보일러 설치 비용이 아니면 부엌 공사는 자본적 지출로 처리가 되어, 양도세 감면 혜택도 없다. 그저, 부엌 공사 이후 들어온 임차인이 좀 더 편하게 살았다면, 홍익인간의 후예인 나는 그걸로 만족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보일러는 10년에 한 번, 고장났을 때 신규 설치하는 편이 낫다. 설치하고 5년 즈음 지나면 노인들 관절 아프듯, 보일러도 중간중간 막히기도 하고 난방이 안되기도 한다. 그때 한 번 수리하고, 10년 즘 되면 에너지 효율 높은 친환경 보일러로 신규 설치하는 것이 괜찮은 것 같다. 임차인 삶의 질도 생각하고, 환경도 아끼면서, 나중에 매도할 때 비용 처리도 되니 모두가 이로운 방향이다.       



4. 거래의 모든 순간, 영수증은 칼같이 챙기고, 클라우드에 저장한다.


아파트 매수하고 등기처리할 때 법무사 비용은, 매도할 때 비용처리가 된다. 그런데, 이런 수 년 전에 받은 영수증은 꼭 찾으면 없다. 이번에 매도한 아파트 법무사 비용도 아무리 찾아도 영수증이 없어서 당시 법무사사무실에 연락을 했더니, 5년이 경과해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 금액만큼 양도세 비용 공제를 못 받는다.


영수증은 발생과 동시에 바로바로 챙기고, 스캔을 해서 클라우드에 저장해둔다. 작은 금액이더라도, 그게 나중에 어떻게 쓰일지 모른다.



5. 다른 사람들의 편견에 상처받지 말자.  


20대 후반부터 부동산 거래를 했다.

내 개인적인 편견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자주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젊은 여자가 뭘로 돈을 벌어서 부동산 계약을 하고 있는 거냐?를 돌려서 묻기도 했고, 직업이 뭐냐고 묻기도 했다.  


대학교 때부터 과외 부지런히 뛰어서 한 달에 300만원씩 벌었고, 결혼 전 월급 60%씩 적금했고, 결혼할 때 주택담보대출 70% 일으켜서 아파트 분양 받았고, 원금 갚느라 수 년간 근검절약했다. 라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되는데, 그러질 못했다.


여자든 남자든, 나이가 많고 적든, 옷차림이 검소해서 그렇든, 상대방이 자격지심이 있어서 그렇든, 부동산 거래를 할 때 기분 나쁜 대우를 하거나 무례한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예의 없는 상대방에게 되물어야 한다.

"정확하게 답변하려고 하는데, 방금 그 질문은 이러 이러한 이유 때문에 물어보신 건가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겠는데, 어떤 점이 구체적으로 궁금한 건가요?

그게 왜 궁금한가요?"


그럼 혼자 기분 상할 일도 줄어들고, 세상에 존재하는 예의 없음을 하나 일깨워주는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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