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의 가난에 대하여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온갖 채팅방이 존재한다. 말하는 즉시 강퇴당하고 오로지 사진으로만 소통해야 하는 침묵방, 특정한 컨셉을 가지고 채팅하며 노는 컨셉방 등등. 그중에서 특이한 채팅방이 있다. 이름하여 ‘거지방’이다.
‘거지방’은 돈을 아끼고 소비 충동을 억누르기 위한 사람들이 모인 채팅방이다. 자신의 지출 내역을 채팅방에 올리면, 사람들이 다시는 그런 무의미한 소비를 하지 말라고 따끔한 호통을 친다. 취지는 그럴싸한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거지방 레전드 짤을 보면 그냥 드립치면서 노는 곳 같다. 버블티를 먹고 싶다고 하니 컵에 검은색 스티커를 붙이라든가, 퍼스컬 컬러 진단을 받았다고 하니 색종이 얼굴 옆에 대라든가…. 온갖 창의적인 훈계가 쏟아진다.
‘무지출 챌린지’라는 것도 있다. 일정 기간 지출을 최대한 아끼고 인증하는 챌린지다. 배달앱을 삭제하고, 회사에 도시락을 싸가고, 점심마다 발걸음하던 카페 대신 탕비실에서 믹스커피를 타먹는다. 절약하고 절약한 지출 내역을 SNS에 인증사진으로 올리면 뿌듯함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무지출 챌린지를 브이로그로 촬영해서 공유하기도 한다.
이렇듯 MZ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아낀다. 자신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돈을 아끼는 과정을 공유해가며 절약한다.
기성세대는 혼란스러울 것이다. MZ들은 과소비의 화신 아니었나? 점심값에 맞먹는 두쫀쿠를 사먹고, 툭하면 해외여행을 떠나서 돈을 탕진하는 게 MZ 아니었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저축 같은 건 전혀 하지 않고 현재의 쾌락에만 충실한 게 MZ 아니었나? 그런데 어째서 MZ들이 돈을 아끼는 걸까?
그런 의문을 품은 당신을 위해 알려주겠다. MZ들이 돈을 아끼는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당연한 소리다. 돈이 없으니까 절약할 수 있는 건 절약하는 것이다. 오히려 MZ세대와 기성세대를 비교하면 경제력은 기성세대가 우위에 있다.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해 자리를 잡아가는 MZ세대의 경제력은 대부분 별 볼 일 없다. MZ세대는 한국 역사상 최초로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세대다.
어른들은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른다. MZ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세대라니? 배곯고 살 일 없는 이런 시대에 ‘가난’이라는 단어가 마땅한가? 젊은 놈들이 진짜 가난을 알기나 하냐고. 하지만 이건 내 개인적인 헛소리가 아니다. 여러 전문가가 연구하고 조사하고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정말로 MZ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가난하다.
저성장 시대를 맞이했고, 성공의 기회는 줄어들었다. 계층 이동은 어려워졌고, 자산 격차는 벌어졌다. 노동 시장이 붕괴했고, 소득은 감소했다. 여러 연구와 자료는 젊은 세대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노력해도 가난을 극복하기 힘들 거란 사실을 말해준다.
나는 여기서, MZ세대가 느끼는 실질적인 가난의 감정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이것에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심리적 가난’이라고 하겠다.
21세기 MZ세대의 가난은 부모 세대의 가난과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70-80년대는 정말로 ‘먹을 게 없어서 굶는’ 형식으로 가난했다. 우리나라가 무상급식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전에만 해도 초등학교를 다니려고 해도 돈이 무지막지하게 들었다. 선생님에게 촌지를 내지 못해 차별당하고,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챙겨가지 못해 배를 쫄쫄 굶으며 학급 친구들이 밥을 먹는 것을 구경해야했다. 자식 한 명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다른 자식들은 공장에 취업시키는 일이 흔했다. 부모 세대의 가난은 ‘절대적 가난’이다. 지금처럼 무상급식을 지원해주고, 돈이 없어도 의무교육은 받을 수 있는 시대는 ‘절대적 가난’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젊은 세대는 ‘상대적 가난’을 겪는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는 게 아니라, 배는 부르지만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예전에는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어떻게 사는지 몰랐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 달랐다. 학교에서 폼 나는 옷을 입은 친구가 자랑하는 말이나, 뉴스에 나오는 소식을 통해 부자들의 세상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그들은 만날 일도, 접촉할 일도 없었다. 그래서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도 본인이 가난한 줄 모르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상위 계층의 일상을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된다. 티비, 유튜브, SNS 등 온갖 곳에서 돈 많은 자들이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삶을 향유하는지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다.
내가 일주일 동안 라면만 먹으며 연명하고 있는데, 미디어 속 부자들은 100만 원이 넘는 돈을 한 끼 식사에 태운다. 조금만 피드를 내리면 수북한 현금 다발을 양손에 들고 있는 래퍼들의 사진이 보인다. 꼭 연예인이나 재벌 3세들만 그런 사진을 올리는 게 아니다. 일반인들도 오마카세 사진이나 사치스러운 명품 사진을 자랑하듯 올린다. 심지어는 돈이 없어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다는 사진에는 테이블 위에 자연스럽게 외제차 차키가 올려져 있다.
어른들은 욕할지도 모른다. 배가 불렀다고. 굶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해야지, 다른 돈 많은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게 눈꼴 시려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신적 빈곤’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실제로 사는 데 별 지장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사치 부리는 것을 보면 괜히 내 처지가 초라해 보인다. 그리고 나와 남을 비교하며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끼게 된다. 신체가 아니라 정신이 빈곤을 겪는 것이다. 부모님 세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침대에 누운 채 의미 없이 피드를 내리며 박탈감에 시달린다. 이것이 MZ가 느끼는 가난의 정체다.
우리가 돈을 아끼는 이유는 대단하지 않다. 저축해서 집을 산다거나 하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다. 몇 달 후 떠날 해외여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말에 맛집에 가서 맛있는 한 끼를 먹기 위해, 그토록 사고 싶었던 비싼 물건을 사기 위해. 사소하다면 사소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것을 위해 우리는 돈을 아낀다.
부모님은 자식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셨지만, 가난은 모습을 바꿔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우리는 배부른 채로 굶주리는 세대가 되었다. 21세기의 가난은 죽은 듯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