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주의를 넘어선 '혐혼'의 세대
대한민국은 심각한 저출생 국가다. 하루 이틀 들은 얘기도 아니어서 놀랍지도 않다. 최근에는 출생율이 0.6명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연소멸 중인 국가다. 전세계 사회학자들이 군침을 흘리며 한국을 주시 중이라는 소문도 있다.
정부는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열심히 노력했다. 각종 전문가들과 정책을 논의하여 다양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가임기 여성 지도, 조이고 댄스, 초등학교 여학생 1년 조기 입학, 자녀가 셋이면 군 면제…! 이야, 낮이나 밤이나 민생의 안녕을 고심하시는 분들이 야심차게 고안한 정책 답게, 하나 같이 대단하고 아스트랄하다. 그럼 우리 정부의 바람대로 평소 케겔운동을 일상화하고, 아직 임신하지 않은 여자가 많은 동네로 떠나 아이를 낳아볼까? 와! 이대로면 10년 안에 출산율 10 찍겠는걸?
정부의 치밀하고 완벽한 저출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출산율은 해가 갈수록 떨어졌다. 심지어 몇 년 전에는 비혼주의가 유행하기도 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비혼주의’와 ‘유행’이라는 단어가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인가? 놀랍게도 사실이다. 안 그래도 저출생이 심각한데, MZ들은 비혼주의를 서로에게 추천하고 장려하며, 결혼하고 애 낳은 사람들을 퐁퐁남이니 흉자니 조롱하며 욕했다. 행복한 결혼 영상을 SNS에 올렸다가 악플이 심각하게 많이 달려 영상을 내리는 일도 흔했다.
아무래도 MZ는 ‘결혼’과 ‘출산’을 꺼려하는 것을 넘어, 혐오하게 된 모양이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우리는 부모의 희생을 목격하며 자랐다. 밤늦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좀비처럼 걸어들어오고, 주말에는 소파에 붙박이처럼 누워 주무시기만 하던 부모님. 내 학원비와 인강비를 듣고 당황하며, 거실 구석에 앉아 통장을 들여다보며 한숨 쉬시던 부모님. 젊을 적 꿈을 모두 포기하고, 어머니 아버지로서의 정체성만 남아버린 부모님. 그 모든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말았다.
부부싸움이라도 하고 나면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다가 어린 자식에게 ‘아빠 같은 사람은 절대 만나지 말라’며 신신당부했다. 돈을 안 가져오는 사람이랑은 절대 결혼하지 말라고, 안 그러면 당신처럼 고생만 한다고.
돈이라는 놈은 참 무서웠다. 서로 사랑하고 미래를 약조한 젊은 남녀를, 서로를 증오하고 저주하는 사이로 만들었다. 사랑만으로 가정을 꾸려가기에는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돈이 사랑을 죽였다.
우리는 부모님을 통해 배웠다. 돈이 없으면, 아이 낳을 생각은 절대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가난을 물려주는 것은 죄악이라는 사실을. 가난 앞에서는 사랑은 아무 힘도 없다는 사실을.
어른이 된 우리는 생각했다. 내가 결혼을 할 준비가 되었나?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고, 좋은 학교에 보내고, 각종 학원에 보내고, 명문대에 입학할 때까지 뒷바라지해줄 수 있나? 애 하나 키우는 데 2억이 든다는데, 그만한 준비가 되었나? 우리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MZ들은 결혼을 포기했다. '어차피 애 안 낳을 건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며 결혼도, 출산도 모두 포기했다. 제대로 기를 자신도 없는 아이를 낳기보다 제 한 몸이라도 잘 보살피는 길을 선택했다. 그것은 당연한 생존전략이다. 대부분의 생물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면 생식부터 포기한다. 그 선택은 절대 이기적인 게 아니다. 결혼은 생존을 위협하는 자살행위다.
이제 결혼은 늦게 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20대에 결혼한다고 하면 “왜 그렇게 결혼을 일찍 하냐?”라는 의문이 날라온다. 이 말이 웃기게 들릴 때도 있다. 신체가 가장 건강할 때 자손을 낳는 게 생물학적으로 따질 때에는 당연한 건데, 인간은 본능을 거슬러 생식 행위를 유예하기만 하니.
어른들이 왜 그리 이기적이냐며, 자기 몸 편하자고 자식도 안 낳냐고 타박할 때마다 우리는 억울하다. 우리가 정말 나 하나만 아는 이기주의자라서 아이를 포기했을까?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는 이기적이지 못해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 내 아이만큼은 부족함 없이 기르고 싶다는 그 지독한 책임감 때문에 아이를 낳길 포기한 것이다.
내 나이 때 부모님들은 나를 낳고 길렀다는 사실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아직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직 어른보다는 애새끼에 가까운 나이인 것 같은데, 부모님은 이런 나이에 한 가정을 책임지는 부모가 되었었다니. 죄송합니다, 어머니. 저는 당신처럼 책임감 있는 부모가 될 자신이 없네요. 저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