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쫀쿠와 편의점 도시락

MZ세대는 왜 비싼 두쫀쿠에 환장할까

by 천비단




강산이 변하는 데에는 10년이나 걸리지만, 유행이 변하는 데에는 1달이면 충분하다. 1달이 뭐야, 요즘은 일주일 지나면 유행이 달라지는 것 같다. 마라탕은 유행을 지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고, 한때 열 걸음에 하나씩 나타나던 탕후루 가게는 자취를 감췄다. 요아정은 한번 먹어보기도 전에 사라졌고, 요즘은 두쫀쿠가 자영업자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어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삼각김밥보다도 양이 적어보이는 경단 같은 게, 8000원이나 한다고? 두 입 먹으면 사라지는 간식 따위를 위해 한 끼 식사 가격을 태우는 MZ들의 행태에 혀를 찼다. MZ는 돈을 아낄 줄 모른다고.


하지만 그와 반대되는 통계가 있다. 저가 브랜드로 유명한 ‘다이소’의 매출이 2024년 들어 4조를 찍었다. 다른 브랜드는 다 죽을 쑤는데 다이소만 승승장구하고 있다니? 그뿐만 아니다. 편의점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학생과 직장인이 늘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편의점 도시락이 호황이다. 음식점 가격이 만 원을 넘어섰는데, 편의점 도시락은 여전히 5천 원대여서 차라리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다는 것이다.


두쫀쿠는 잘만 먹으면서, 왜 다이소에서 화장품을 사고 편의점에서 점심을 먹을까? 과소비를 하는 듯하면서, 한편으로는 절약하는 MZ들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



두쫀쿠와 당근의 신께서 강림하셨다






이러한 MZ의 소비 형태를 ‘양극화 소비’라고 한다. 양극화 소비란 값이 싼 가성비 소비와 가격이 매우 비싼 프리미엄 소비가 동시에 나타나는 소비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돈을 아끼겠다고 점심은 3천 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을 사먹으면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10만 원이 넘는 오마카세를 즐기는 것이다. 중간 가격의 소비가 사라지고, 엠비슈머(Ambisumer, 양면적 소비자)가 늘어나는 현상이다.


실제로 카페 프렌차이즈만 보아도 이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한국은 길거리를 걸으면 열 걸음마다 카페가 나타난다. 그런데 요즘들어 이디야 커피가 점점 안 보인다. 스타벅스나 메가커피는 질리도록 보이는데, 유독 이디야 커피만 점점 찾기 힘들어진다. 그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이 스타벅스나 메가커피만 찾는다. 가격이 비싼 스타벅스에 가거나, 싼 메가커피에 가거나. 둘 중 하나를 가지 그 중간 가격인 이디야 커피는 굳이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MZ가 양극화 소비를 하는 이유를 변호하자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나에게 가치 있는 것에 집중하여 돈을 쓰기 위함이다. 쉽게 말하자면 며칠에 한번 가끔 두쫀쿠를 먹기 위해 평소에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며 돈을 아낀다는 것이다.






명언 GOAT



이러한 MZ들의 소비는 체념에서 기인한다. 젊은 세대에게 더이상 ‘계층 상승’의 희망이 없다.


옛날에는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많은 아버지들이 자신의 몸을 갈아가며 회사에 헌신했다. 자신의 건강이 하루하루 망가지고, 아내와 자식과의 관계가 소원해져 가면서도, 아버지는 자식에게 제대로 된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죽도록 일했다.


지금은 어떤가. ‘티끌 모아 티끌’이란 말이 떠도는 세대다. 어차피 돈 모아봤자 집 못 산다라는 체념이 세대 전반에 깔려 있다. 1억만 해도 평생 노력해도 모을 수 없는 돈처럼 느껴지는데, 집값은 10억이 우습게 넘어간다. 아무리 돈을 모아도 집 하나조차 갖지 못할 거란 좌절감에 빠졌다. 로또를 세 번은 맞거나, 우연히 인플루언서가 되거나, 비트코인으로 한탕 하지 않는 이상 내 집 마련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체념 끝에 우리는 포기했다. 불확실한 미래에 돈을 저축하길 그만 둔 것이다. 그 대신 현재의 사치에 돈을 쓰기로 했다. 저녁 한 끼에 10만 원을 태우고, 점심값만한 두쫀쿠를 먹고, 호캉스를 떠나기로 했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대학생 때 친구가 피시방 알바를 한다길래 피시방에 놀러 간 적 있다. 아직 업무가 끝나지 않았던 터라 나는 먼저 자리를 잡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저녁이 되고 알바가 끝난 친구가 내 옆에 앉았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밥 먹었냐?”하고 물었다.


“아니, 오늘 컵라면 작은 거 딱 하나 먹었어.”


친구는 로그인을 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시간이 몇 신데 그것만 먹고 일했어?”


나는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답했다.


“돈이 없으니까. 지금 일주일째 이러고 있어.”


큐를 돌리는 동안 우리는 밥을 시켰다. 친구는 치즈떡볶이에 닭강정에 라지 사이즈 콜라까지 과할 정도로 주문했다.


“돈 없다는 애가 뭐 그렇게 많이 시켜?”


나는 놀라며 질문했다. 친구는 부끄러운 듯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런 거 사 먹으려고 알바하는 거지.”






MZ세대는 집을 살 것이란 희망을 버렸다. N포 세대라는 단어는 이제 지겹다. 연애도, 결혼도, 집도 포기했다고 해서 N포 세대라고 불렀다던데, ‘포기’라는 단어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포기라는 건 바란 적이 있어야 쓸 수 있는 말이다. 우리는 애초에 목표한 적이 없다. 내가 돈을 벌어서 집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아예 없다. 운 좋게 로또에 당첨되거나 인플루언서가 되지 않는 한 말이다.


그래서 MZ세대가 돈을 모으는 이유가 바뀌었다. 과거 부모 세대는 집을 사기 위해서 돈을 저축했다면, 이제 MZ세대는 오마카세를 먹기 위해, 휴가 때 해외여행을 떠나기 위해 돈을 모은다. 비교적 저렴한 사치를 목표로 한 것이다. 집을 사기는 불가능하지만,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은 돈 몇 달 아끼면 가능하다.


어른들은 말한다. 그렇게 두쫀쿠 같은 것에 돈을 쓰는 건 미래가 없는 한심한 짓이라고. 사실 우리도 알고 있다. 아깝고, 불필요한 소비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미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10년 뒤 불투명한 미래보다, 당장 내 입안에 퍼지는 달콤함에 집중하기로 했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허기를 달래고, 그것보다 비싼 디저트를 씹으며 우리는 조용히 깨닫는다. 내 삶에서 내가 지불할 수 있는 행복은 딱 이 정도 크기뿐이라는 것을.


피시방 알바를 하던 친구와는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나는 가끔 궁금하다. 돈이 없어 소형 컵라면 하나로 하루를 버티던 그 친구는 이제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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