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쉬고 싶진 않았는데
최근 뉴스 기사나 커뮤니티에서 자주 보이는 단어가 있다. 바로 ‘쉬었음 청년’이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단어라서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쉬었음 청년’이란 직업이 없고 구직활동조차 포기한 청년을 뜻한다. 통계청에서 진행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지난 일주일간 무엇을 했습니까?’란 질문에 ‘쉬었음’이라는 대답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쉬었음 청년’이 유래했다. 이 단어에 담긴 오묘하고 폭력적인 뉘앙스 때문에 밈이 되었다.
2025년 조사에 따르면 이 ‘쉬었음’ 인구가 2003년 경제활동인구조사를 시작한 이래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고 한다. 2025년 쉬었음 인구는 264만 1000명이다. 문제는 ‘쉬었음 청년’이 너무 많다. 한창 경제활동을 해야할 20대와 30대가 둘이 합쳐 70만 명이 넘는다. 그들이 왜 쉬었는지 이유는 1위가 ‘원하는 일자리를 못 찾아서’였다.
어른들은 기사를 보며 분노한다. 한창 일할 젊은 놈들이 놀고만 있다니. 뼈 빠지게 일하고 돈 벌어서 세금도 내면서 미래의 우리를 부양해야 할 거 아니냐, 집안에서 쉬고만 있으면 세금은 누가 내고 연금은 누가 채우냐.
‘쉬었음’이란 단어는 마치 일을 하기 싫어서 휴식을 즐기거나, 자발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개인의 나태함 때문에 일을 안 하는 것처럼 들리게 한다. 그러니 어른들은 욕할 수밖에. 열심히 돈 벌어서 자신들을 부양해야 할 젊은이들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집에서 쉬기만 했다니.
하지만 MZ세대는 이 ‘쉬었음 청년’이란 단어에 분노한다. 우리가 쉬고 싶어서 쉬었냐, 우리는 ‘쉼당함 청년’이라고 반박한다. 아무리 우리가 한심하고 충동적이고 미래 대책이 없는 세대라 불리더라도, 놀고먹기만 하는 게으름쟁이는 아니라고 울부짖는다.
MZ세대가 구직활동을 포기한 이유는 무기력함 때문이다. 부모님은 학생이었던 내게 아낌없이 지원했다. 굶는 일 없도록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해 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대기업까진 아니더라도 좋은 기업에 입사해서 부모님께 효도할 일만 남았다.
하지만 현실은 차갑다. 지원서를 넣는 족족 떨어진다. 간신히 서류 심사에 붙어 면접을 보러 가니 경쟁률이 몇백 대 일이 기본이다. 경쟁자들의 스펙도 심상치 않다. 그렇게 허무하게 탈락 문자를 받는다. 생활비라도 벌려고 알바를 지원해도 알바도 뽑히지 않는다. 아니, 알바하는데 명문대생인지 자격증이 있는지가 뭐가 중요하다고?
취업이 어렵다는 소리는 예전부터 있었다. 서울대를 나와도 취업이 안 된다느니 하는 곡소리가 심심하면 뉴스에 나왔다. 그 서울대를 나와도 취업을 못 한다니. 이럴 거면 왜 좋은 대학에 가려고 그렇게 고생했는지 모를 일이다. 취업을 못 하는 명문대생들도 똑같이 당황스러운 마음일 것이다. 좋은 대학에 합격했으니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입사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지원서를 넣는 족족 탈락하는 마당이니. 사기를 당한 기분 아닐까.
젊은이들은 취업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를 겪는다. 취업률은 나날이 나빠진다. 반복되는 실패, 번아웃과 우울증. 심각하게 상처받은 젊은이들은 스스로 구직활동을 포기하게 된다.
기성세대는 답답해한다. 아니, 갈만한 일자리가 없어서 취직을 못 한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널리고 널린 게 일자리인데. 회사마다 사람이 없어서 난리인데 일자리가 없다는 MZ들의 변명을 이해하지 못한다. 도리어 젊은 세대가 욕심이 너무 많다고 한다. 대기업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눈높이가 너무 높다, 힘든 일은 하지 않고 편하게 돈 많이 버는 직업만 하려고 한다며 욕한다.
하지만 MZ세대가 그러는 이유가 있다. MZ세대는 중소기업을 기피한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극단화된 이중구조다. 2025년 고용노동부의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일자리의 84.4%는 기존 인력이 그대로 일한다. 이직이 활발한 외국에 비해 높은 수치다. 한국은 노동경직성이 굉장히 크다. 한번 대기업에 입사하면 웬만해서는 쭉 일한다. 그말인 즉슨, 중소기업에 입사하고 경력을 쌓아 대기업으로 이직할 기회가 매우 좁다는 뜻이다. 실제로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비율은 12%에 불과하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중소기업에 들어갈 바에 졸업을 유예하고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혈안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한국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대기업의 30% 수준이다. OECD 평균인 50%보다 한참 낮은 수치다. 노동유동성은 낮은데,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임금이며 복지가 극명하게 뒤떨어진다. 이러니 젊은 세대 사이에서 중소기업을 ‘좆소기업’이라고 멸칭하고, 좆소기업에 취직하는 것은 실패라고 여긴다.
그리고 반대로 묻고 싶다. 각고한 노력 끝에 서울대에 들어간 당신의 자식이 이름도 알려지지 않는 중소기업에 입사하길 바라는가? 나는 단언할 수 있다. MZ세대의 눈높이를 높인 것은 바로 기성세대다.
부모님들은 정말 모든 것을 바쳐서 자식을 공부시켰다. 비싼 학원이며 과외며 인강에 돈을 쏟아부었다. 자식들은 하고 싶은 일도 포기해가며 부모의 기대에 부응했다. 명문대생이라는 화려한 타이틀 뒤에는 부모의 수많은 희생이 존재한다.
부모들은 자식에게 염원을 쏟는다. 명문대에 들어가 대기업에 입사해 승승장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자식은 그 바람에 거역할 수 없다. 애초에 식당 일을 하시는 아주머니나 쓰레기를 수거하는 환경미화원을 가리켜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저런 거 하면서 산다”라는 저주를 들으며 자란 우리다. 당연히 대기업에 입사하는 게 유일한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대기업에 떨어지는 것, 별볼일 없는 중소기업에 입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생을 실패한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렇기에 돈이 다 떨어져서 당장 돈이 급한 게 아닌 이상 좆소기업은 선택지에서 배제해버린다. 그래서 ‘원하는 일자리가 없다’고 대답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노력해도 집 하나 장만하기 어려운 사회다. 기성세대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부동산을 폭등시키며, 사다리를 걷어차는 사회를 만들어놓고 왜 젊은이들에게 노력이 부족하냐, 눈높이가 왜 그렇게 높냐고 꾸중한다. 우리가 원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닌데. 좋은 대학, 좋은 회사에 들어가라고 부추긴 게 바로 당신들 아니었냐고. 왜 이제 와서 말을 바꾸냐고. 나도 집안에만 틀어박힌 한심한 어른이 되고 싶진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