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실패자'라는 낙인

by 천비단



스웨덴의 명문대 룬드 대학교(Lunds University)에서 2017년에 나온 한 학위논문. 그 논문의 제목은 ‘Hell Joseon’, 바로 ‘헬조선’이었다(⌜‘Hell Joseon’ - Tales from a South Korean Youth Trapped Between Past and Present⌟). 한국에 사는 청년 8명을 인터뷰한 연구였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어째서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지, 그 분노와 절망이 어디서 오는지 규명하고자 했다.


인터뷰이들은 여러 이야기를 했다. 높은 실업률, 계층 이동의 붕괴, 과열된 교육열, 젠더갈등까지. 그 중에서 주목할만한 키워드가 하나 있다. 바로 ‘원샷 샤회(One Shot Society)’라는 개념이다. 원샷 사회란 ‘한 번 실패하면 끝장나는 사회’를 말한다. 사회적 안전망과 회복탄력성이 부족하여, 입시나 취업 등 인생의 주요 과업에서 단 한 번만 실패하더라도 실패자로 낙인 찍히고 재기가 불가능한, 단 한 번의 기회만 존재하는 사회. 논문은 한국을 ‘원샷 사회’라고 말했다.


‘원샷 사회’라는 용어는 2011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의 한 기사에서 한국 교육 시스템을 비판하며 탄생했다. 이후 많은 해외 언론이 한국을 원샷 사회라고 비판해왔다. 한국은 그 불명예스러운 왕관을 지금까지 쓰고 있다.


tempImagepGtXxO.heic <헬조선>, painted by Grok






한국은 RPG 게임과 비슷하다. 반드시 수행해야 할 필수 퀘스트가 쭉 늘어져 있고, 그것을 일정 기간 안에 클리어하지 못하면 패배한다. 게임이라면 진행이 조금 늦어지는 것 말고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은 현실이다. 현실 속 퀘스트를 깨지 못하면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그 낙인은 영영 지워지지 않는다.


이른바 어른들이 말하던 ‘성공 법칙’이다. 19살에 대입을 치뤄서 인서울, 명문대에 입학하고, 대학생 때 각종 자격증과 인턴 활동을 하며 스펙을 쌓고, 그 와중에 봉사 활동과 해외연수도 해야 하고, 졸업과 동시에 빠르게 취직에 성공해 자리 잡고, 20대 후반쯤 되면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하나라도 실패한다면 인생 전체를 위협할 만한 위험이 된다. 왜 그렇게 많은 수험생과 취준생이 자살을 택하는가? 수능을 망치고, 취직에 실패하는 것이 인생을 포기할 정도의 절망감을 주기 때문이다. 단순히 ‘멘탈이 나약하다’라며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한국이 자살률 1위라는 타이틀을 몇 년 간 공고히 지키고 있다. ‘실패에서 오는 절망’은 젊은 세대를 위협하는 사회적 문제다.






나는 사범대를 다녔다. 중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다. 4년을 공부했고, 임용고시 1차에서 떨어졌다. 임용고시를 치른 동기 중에서 1차에서 떨어진 건 나뿐이었다. 졸업식 날, 오랜만에 모인 자리에서 “다음 달부터 출근한다.”, “서류 때문에 학교에 다녀왔다.” 따위의 말을 주구장창 들었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내 손에 들린 화사한 꽃다발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재수했다. 1년 동안 스터디카페에 다니고, 질리게 봤던 교재와 인터넷 강의, 기출문제와 씨름했다. 그러나 결과는 또 1차 탈락이었다. 심지어 점수가 더 떨어졌다. 간간히 연락하던 동기들과 아예 연락을 끊었다. 연락할 수가 없었다. 그 절망과 수치, 시기와 슬픔을 가진 채 동기와 아무렇지 않은 척 얘기할 자신이 없었다. 한때 같은 꿈을 꾸었던 동기들, 그들은 자신의 꿈을 향해 착실히 향해 가고 있는데 나 혼자만 바닥에 고꾸라졌다.


군대에 갔다. 선임들은 자기보다 나이가 몇 살은 더 많은 후임의 등장에 당황했다. “사회에서 뭐 하다 왔냐”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다. 임용고시에 떨어졌다고. 선임들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나이가 맞지 않음을 이상하게 여긴 선임은 재수해서 대학 갔냐고 물었고, 나는 임용고시를 두 번 떨어졌다고 말했다. 더 이상 사회에 있을 때 얘기는 하지 않았다.


군대에 있을 때는 퍽 편했다. 그곳에서는 진로에 대해 고민할 게 없으니. 꿈이니, 학력이니 해봤자 군대에서는 다 똑같은 병사일 뿐이다. 서로에게 어떤 비전이 있는지보다는 오늘 일과가 뭔지가 훨씬 중요했다. 간부들은 내가 성실하다며 좋아했고, 덕분에 10개월이나 분대장을 하다가 전역했다.


전역하고 며칠은 좋았다. 해방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해방감도 오래 가지 못했다. 전역하고 나니 나는 아무 스펙도 없는 27살이 되어 있었다. 막막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미 내 인생은 실패한 게 아닌가?






tempImageUtgqL2.heic <실패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painted by Grok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한다. 젊었을 때 많이 실패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성공할 때까지 도전하고 실패해봐야 그 경험이 귀한 밑거름이 되어서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나는 그런 조언을 하는 사람들을 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 운 좋은 꼰대쯤으로 치부하고 만다.


한국은 실패했을 때 리스크가 막심하다. 한국 사회는 실패에 관대하지 않다. 냉정하고 엄격하다. 수능이나 임용고시 같은 중요한 시험은 1년에 한 번밖에 없다. 한 번 실패하고 재도전하려면 1년을 꼬박 기다려야 한다. 재도전할 때 돈이 무지막지하게 필요하다는 점은 말 안 해도 당연하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실패자’라는 낙인이다. 당신은 아는가? 부모님의 기대를 배반하고 실패해버리고 만 자식의 비참함을. 친구들이 회사 얘기를 할 때 나 혼자 할 얘기가 없어 입 다물고 있는 적막함을.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리란 저주에 사로잡힌 무기력함을. 외국은 실패한 경험이 자산이 된다던데, 한국은 결점 사항밖에 되지 않는다. 27살이란 나이는 늦어도 너무 늦은 나이다.


그렇기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명언은 개소리다. 실패는 돈 많은 금수저에게나 허락된 특권이다. 여러 번 재도전해도 좋을 풍족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경제적 기회가 있는 사람만 실패를 여러 번 겪을 수 있다. 나도 돈만 많았다면 하루종일 공부만 하고 합격할 때까지 임용고시에 계속 도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몇백만 원에 육박하는 교재비, 강의비, 독서실비를 감당할 수 없다. 실패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나? 꿈에 도전하는 데 무지막지한 돈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배웠다.


예전에 공무원 열풍이 돌았을 때,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부족한 도전정신을 욕했다. 안전한 선택만 한다고, 꿈도 열정도 없어 도전하질 않는다고. 하지만 공무원 열풍이 돈 까닭은 그것이 실패하지 않을 안전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도전정신이 부족하다? 맞는 말이다. 젊은 세대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실패하지 않기 위해 공무원이 되길 바라고, 인생의 대부분을 포기했다.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아이도, 차도, 집도 죄다 포기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랬다.






앞서 소개한 ‘헬조선’ 논문에, 짧은 글귀가 하나 있다. Acknowledgements라는, ‘감사의 글’로 흔히 번역되는 글이었다.


감사의 글

화창한 11월 어느 날, 정오가 되기 직전,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건물 7층에서 한 남학생이 뛰어내렸습니다.

그는 가방에 “이제 푹 쉬고 싶다.”라는 쪽찌를 남겼습니다. - 서울, 2013

이 논문을 이 젊은 청년과 매년 스트레스, 절망, 혼란에서 벗어나 평화를 찾기 위해 일찍 생을 마감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바칩니다.


Acknowledgements

On a sunny November day at campus, just before noon, a young male student jumps out the window on 7th floor of the business department building at Konkuk University.

In his bag, he leaves a brief note saying “I want to take a deep sleep now”. – Seoul, 2013.

I dedicate my thesis to this young man, and the many other young South Koreans who every year end their lives too soon, to find peace from stress, despair and confusion.




월,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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