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상 최초로 이성을 서로 미워하는 세대, MZ세대
혹시 ‘한남’, ‘한녀’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처음 들어보는가? 그렇다면 한번 뜻을 유추해보자. 어디보자, 일단 ‘남’, ‘녀’가 쓰였으니 이건 남자, 여자일 테고… ‘한’… 설마… ‘한국’? 정답! ‘한남’, ‘한녀’는 바로 ‘한국 남자’, ‘한국 여자’의 줄임말이다.
요즘 것들 별걸 다 줄이네, 한국남자, 한국여자를 줄이는 이유는 또 뭐야, 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데 주의할 게 하나 있다. 신조어 하나 알았다고 ‘한남’, ‘한녀’라는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하면 안 된다. 함부로 이 말을 꺼냈다가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한남’, ‘한녀’는 ‘한국 남자’, ‘한국 여자’를 폄하하고 경멸하는 혐오 표현이기 때문이다.
왜냐고?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MZ들 사이에서 어느 순간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한국은 ‘한국 남자’, ‘한국 여자’라는 단어를 내뱉을 수도 없을 정도로 남녀 갈등이 심각하다는 것을.
한국의 남녀 갈등은 심각하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80%가 ‘남녀 갈등이 심각하다’라고 답했으며, 이 수치는 조사 대상 국가 중 1위였다. 더군다나 ‘자신의 성별이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냐’라는 질문에 20대 남성은 79%가, 20대 여성은 80%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서로가 성차별의 피해자라고 호소하는 상황이다.
인터넷 세계에 들어서면 그 갈등을 실감할 수 있다. 일간베스트, 메갈리아 등 이성을 혐오하는 사이트들이 유행했다. 일베는 한국의 여성을 ‘된장녀’, ‘김치녀’라고 폄하하면서 여성혐오를 주도했다. 메갈리아는 ‘미러링’이라는 명목하에 남성이 여성에게 가했던 여성혐오를 그대로 남성혐오로 되돌려주었다. 남초/여초 사이트 사이의 온라인 남녀 갈등은 점점 심각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문제는 극단주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커뮤니티 속에서 외부의 정보를 차단한 채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잘못된 정보가 퍼지고, 막연한 분노와 혐오가 불길처럼 퍼져나갔다. 커뮤니티 속에서 이성은 점점 나라를 좀먹고 파멸로 이끌어간 사악한 존재로 악마화되어 갔다. 확증편향에 빠진 인터넷 커뮤니티는 혐오의 배양소였다.
그렇게 온라인 세계에서 커져버린 혐오와 갈등은 현실 세계까지 악영향을 끼쳤다. 각종 혐오 범죄가 일어나고, 성별 간 정치적 양극화가 일어나고, 연애와 결혼마저 꺼리게 되었다. 오랜 기간 지속된 갈등은 서로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MZ세대는 한국 역사상 최초로 이성을 서로 미워하는 세대가 되었다.
정말로 한국 남자들은 여자를 억압하고 탈취하는 가부장제의 화신이자 잠재적 성범죄자인 걸까? 정말로 한국 여자들은 의무는 나몰라라 하고 권리만 취하려고 하는 이기적인 존재이자 스탑럴커인 걸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설사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소수일 것이다. 근데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나 성별 갈등이 심각해진 걸까?
내 생각에 남녀 갈등의 본질은 ‘나 살기가 너무 힘들다’는 호소다. 닫힌 성장과 무한 경쟁, 자산 격차와 N포. 모든 젊은 세대가 겪는 문제다. 모두가 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이 불행의 호소가 피해의식으로 발전되어 ‘상대 성별보다 우리 성별이 더 불행하다’로 이어진 것이다.
젊은 세대는 어릴 때부터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다고 배웠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크고 나니 가부장제의 혜택은 누리지도 못한 남자는 가부장제의 가해자라고 불리며, 군 복무나 경제적 부양 같은 전통적인 남성의 의무는 여전히 강요받았다. 여자는 채용 성차별과 임금 격차, 딥페이크나 성범죄의 불안에 시달리며, 결혼과 출산이 경력 단절로 이어진다는 위협을 받았다.
남성과 여성이 느끼는 각자의 문제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다.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대신,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성에게 분노가 향했다. 자신들이 겪은 차별과 부조리를 모두 상대 성별이 원인이라고 탓하며 혐오와 갈등을 키워갔다. 이 와중에 이성혐오 커뮤니티가 덩치를 키우고, 정치나 미디어가 갈라치기를 유도했다. 서로의 문제를 이해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담합하기보다, “쟤네가 문제야”라며 혐오와 갈등을 증폭시켰다.
오래 지속된 남녀 갈등은 젊은 세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연애와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율이 떨어졌다. 정치적으로 양극화되었고, 서로를 적으로 여기게 되었다. 일상 속 흔히 겪는 차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해도, ‘너 일베/메갈이냐’라는 되물음만 듣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불행에 대해, 자신의 불행에 대해 입을 다물게 되었다.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제기하고 대화를 나누며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한다. 하지만 남녀 갈등은 그 모든 과정을 틀어막았다. ‘한창 스펙 쌓아야 할 때 군대에 가야 해서 취업에 불리하다’, ‘아이를 낳으면 커리어가 단절되어 두렵다’와 같이 지극히 합리적인 불만을 말해도, 그 발언이 혐오주의로 낙인찍힌다. 결국 정상적인 문제 제기는 사라지고, 극단적인 혐오 발언만 남았다. 대화가 사라지고, 문제 해결은 안 되고,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결국 우리는 대화조차 포기하고 단절되었다.
서로 사랑하고 이해해줘야 할 사이가 다투고 상처입히는 모습이 씁쓸하다. 결국 모두가 불행하고 슬픈데, 그 불행과 슬픔 때문에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다. 그저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많이 힘들었구나” 하는 그 말 한마디만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미워하게 되진 않았을 텐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랑을 잃어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