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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Mar 27. 2024

초코우유 테러 사건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은 어떤 정신 나간 존재인가


 십 대 후반 남학생들이 모인 기숙사에서는 정말 골 때리는 사건이 매일 일어난다. 3년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아보자.




1. 아오오니 테러 사건


 다른 방 출입하지 말라는, 있으나 마나 한 규칙이 있었다. 우리들은 그딴 규칙 무시하고 다른 방에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사감 선생님도 굉장히 자유분방한 분이어서 눈에 띌 때만 대충 혼내고, 우리를 거의 방임했다. 덕분에 우리는 내 방 네 방 가릴 것 없이 더욱 미쳐 날뛰었다.


 다른 방 침입이 자유롭다보니 일찍 잠드는 친구는 손쉬운 타겟이 되었다. 아무리 경계해도, 잠에 든 타겟에 작업을 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때 나는 불면증을 치료하겠답시고 매일 밤 12시에 침대에 누웠다. 덕분에 나는 ‘타겟’이 되었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니 눈앞이 새까맸다. 잠결에 어리둥절한 나는 곧 A4 종이가 내 얼굴을 덮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으로 종이를 뗐다. 이마에 붙은 테이프가 찍 소리를 내며 뜯겼다. 눈을 비비고 정신을 차린 다음, 대체 무슨 종이인지 보았다. 그 종이에는 큼지막한 아오오니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안은 생각보다 깨끗한데?


 ‘아오오니’는 쯔꾸르 공포게임에 나오는 괴물로, 그 당시 내가 굉장히 싫어하던 캐릭터였다. 초등학생 사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끈 놈이지만, 나는 외계 바이러스에 오염된 듯한 보라색 피부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눈깔이 매우 불쾌했다. 이런 사진을 내 얼굴에 붙여두다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오오니 면상을 마주 보게 하려는 간악한 속셈이었다.


 머리를 감고 샤워실에서 막 나온 3학년 형이 그게 뭐냐고 물었다. 내가 사진을 보여주니 형은 화를 냈다. 대체 누가 이딴 짓을 하냐고, 그 새끼 잡아서 족쳐야겠다고 벼렀다. 나보다 더 화를 내서 좀 당황스러웠다. 후배 사랑이 뛰어난 형이었다.


 범인은 1학년이 틀림없었다. 내가 아오오니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만 말했기 때문이다. 조식을 먹으러 가기 전 친구들이 다 모였을 때 내가 3학년 형이 범인을 찾고 있다고, 잡히면 좆될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친구가 쭈굴거리며 자기가 했다고 자백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쌍욕 몇 번 던졌다. 그렇게 아오오니 테러 사건은 싱겁게 끝났다. 하지만 그 친구의 범행은 멈추지 않았다.




2. 초코우유 테러 사건


 기숙사 2층에 컴퓨터실이 있었다. 학생들이 인터넷 강의를 자유롭게 보도록 마련한 공간이었다. 그렇다 보니 2층은 남자방이 있는 층이었지만 사실상 남녀 공용 층이었다. 화장실도 남자화장실 여자화장실 둘 다 있었다.


 그때 우리 학교 선생님들 사이에서 거꾸로 수업이 유행했다. 거꾸로 수업이란 학생이 미리 집에서 강의를 보고, 학교에서는 강의가 아닌 다양한 활동을 하는 수업이었다. 수학, 영어, 역사 과목이 거꾸로 수업을 했다. 선생님들 종특이다. 학생이 지 수업만 듣는 줄 안다.


대학교 가면 더 심할 줄은 몰랐지 ㅋㅋ


 덕분에 나는 2층 컴퓨터실에 자주 내려왔다. 3층에도 작은 컴퓨터실이 있긴 했지만, 그곳은 2, 3학년 선배들이 점령했다. 1학년은 2층 컴퓨터실을 쓰는 게 국룰이었다.


 그날 나는 수학 강의를 들으러 컴퓨터실에 앉아 있었다. 복도쪽 자리에 앉아 수학책을 펼쳐놓고 강의를 듣고 있었다. 갑자기 오른쪽 어깨를 누군가 툭툭 쳤다. 나는 뭐지 싶어 고개를 돌렸고, 곧바로 시야가 어두워졌다. 찌이익 하는 물총 소리와 함께, 내 얼굴이 알 수 없는 액체로 뒤범벅되었고, 코끝에 단내가 진동했다. 나도 모르게 “아이 시발!”하고 경기를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그 새끼였다. 일전에 내 이마에 아오오니 사진을 붙였던 그 새끼. 놈이 눈에 띄게 당황스러워했다. 그 놈 한 손에 초코에몽이 들려 있었다. 대체 뭐 하는 새끼지?


테러에 사용된 흉악한 초코에몽


 놈은 급하게 화장실에서 휴지를 뜯어왔다. 나는 휴지로 얼굴을 닦으며 컴퓨터실을 나왔다. 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딴 짓을 했는지 물었다. 그 새끼는 겁만 줄 생각이었는데, 진짜로 초코우유가 발사될 줄 몰랐다고 변명했다. 우유팩을 한 손으로 꽉 쥐면 빨대로 내용물이 발사된다는 사실을 몰랐다니, 진심으로 병신인가 의문이 들었다. 그 새끼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우물쭈물하더니, 갑자기 “사까시”라고 중얼거리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대가리에 총 맞았나?


 그날 이후로 녀석은 기숙사 사람들 사이에서 재앙으로 통했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무슨 짓을 할지 예상할 수 없는 인간. 걸어다니는 차르봄바, 살아숨쉬는 리틀보이 같은 놈. 위에 쌍욕을 적었긴 했지만 나는 그 친구를 그다지 싫어하진 않았다. 원래 그런 놈인 걸 그때쯤엔 깨달은 지 오래였어서. 그냥 길 가다가 똥 밟은 기분이었다. 오히려 그 새끼랑 나랑 이름이 비슷해서 잘 모르는 여자애들이 나를 그 새끼로 착각하는 게 훨씬 기분 나빴다. 그렇게 초코우유 테러 사건은 기숙사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으로 남았다.




3. VR 야동 감상회


 어느 날 9시에 샤워하러 방에 들어가니, 2학년 형들이 침대에 걸터앉아 머리에 이상한 걸 끼고 허공에 손을 휘젓고 있었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 나올 법한 기계였다. 나는 곧 그것이 VR 기기라는 걸 깨달았다. VR을 말만 들어봤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가운데 VR을 쓴 형이 앉아 있고, 그 양쪽으로 다른 형들이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나는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VR 세계에 가면 건장한 남성도 풍만한 가슴을 가진 여성이 된다는 괴담이 있다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형들은 아직도 VR에 빠져 있었다. 나는 로션을 바르며 대화를 들었다. “오 시발 개쩐다.” “야 나도 빨리 볼래.” “와 존나 리얼하네.” 대체 무슨 게임을 하길래 저리 신나 하는지.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게임을 하려면 컨트롤러 같은 걸 손에 들고 있어야 하지 않나? 왜 아무 컨트롤러 없이 고개만 여기저기 까닥거리지? 집중해서 대화를 듣자, 나는 형들이 게임을 하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형들은 VR 야동을 보고 있었다. 홀리 쉣….


 나는 이것을 사감 선생님한테 알려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기숙사에 VR을 들고 와서 야동을 보다니. 규칙에 위반되는 거 아닌가? 아니, 스마트폰을 하지 말라고 했지 VR을 하지 말라는 규칙은 없었는데. 그리고 청소년에게도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야동을 보는 게 불법도 아니고. 아니, 한국은 불법이던가?


 아니 근데 왜 내 방에서 저러고 있는지. 빨리 꺼져줬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VR 야동 감상회는 쉽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선배들은 헤벌레 입을 벌리며 진지한 평론을 나누었다. 그 경광이 굉장히 뭐랄까… 아스트랄해 보였다. 괜히 분위기 깨지 않기로 했다. 나는 조용히 문을 열고 자습하러 갔다.




4. 북괴 간첩 침투 사건


 3층 자습실 옆에 작은 컴퓨터실이 있었다. ㄷ 자로 배치된 테이블에 컴퓨터 8대 정도 놓여 있는 작은 장소였다. 보통 2, 3학년이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기숙사에서 직접 관리하는 2층 컴퓨터실과 다르게, 3층 컴퓨터들은 남학생들이 자율적으로 관리했다.


 어느 저녁이었다. 7시 자습 시간은 기숙사 담당 학교 선생님이 감독했다. 보통 자습실 입구 왼쪽에 책상 하나 두고 책을 읽거나, 2층 사감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마 남자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자습 감독을 맡는 것 같았다.


 평화롭게 휴대폰으로 힙합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외우는 중이었다. 갑자기 선생님이 문을 열고 “어떤 새끼가 바탕화면 바꿨어?”하며 외쳤다. 우리는 대체 뭔 일인가 어리둥절했다.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왼쪽 창문을 가리켰다. 의자에서 일어나 상체를 뻗어 창문 너머를 보았다. 컴퓨터 모니터가 전부 김정은이 근엄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는 사진이 띄어져 있었다.


전쟁 중인 상대 국가의 수장을 이렇게 놀리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는 박장대소가 터졌다. 선생님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빨리 바탕화면 바꾸라고 난리였다. 평소 까칠한 선생님이 웃참을 하면 저런 표정을 짓는구나 싶었다. 컴퓨터실에 들어갔다. 사방에서 김정은이 박수를 치며 나를 맞이하였다.


 “우리 사이에 간첩이 있어!” 난리가 났다. 빨리 기숙사 사상검증 들어가야 한다고, 북괴 새끼 잡아야 한다고 농담이 오갔다. 그날 대체 누가 바탕화면을 바꿨는지 아직도 범인을 모른다. 간첩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간첩신고는 113.




5. 신입생 실종 사건


 2학년이 되고 개학 전날 신입생 환영회가 열렸다. 나는 의자를 끌고 와 앉아서 구경했다. 사감 선생님이 들어와 머릿수를 세었다. 그러다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왜 한 명이 없지?”


 비상사태였다. 신입생 한 명이 실종되었다. 기숙사생이 외부에서 어떤 사고라도 당하면 기숙사 입장이 곤란해진다. 사감 선생님은 급하게 1학년들을 보고 애한테 연락해보라고 명령했다. 1학년들은 바쁘게 핸드폰을 들었다. 전화, 카톡, SNS 등등 가능한 모든 연락 수단을 동원해서 실종자를 찾았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실종자에게 연락이 닿지가 않았다.


 대체 뭔 일인가 싶은 그때,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여학생 중에도 1학년 한 명이 실종된 것이다.


 입사 첫날 신입생 두 명이 실종되다니.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평소 여유로운 산들바람 같던 사감 선생님도 크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중, 어떤 남자애가 뜬금없이 말했다.


 “근데 걔네 둘 커플인데요?”


어라?


 곧바로 웃음이 터졌다. 커플인 남녀가 동시에 실종되다니. 정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사감 선생님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분위기를 진정시키고 아이들을 자리에 앉혔다.


 “대체 이렇게 추운데 어딜 간 겨….”


 사감샘이 혼잣말했다. 그러자 어떤 친구가 말했다.


 “샘, 지금 걔네는 우리보다 뜨거울 거예요….”


 우리는 건물 바깥에 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웃었다. 이번에는 사감 선생님도 웃음이 터졌다.


 다음날 그 커플은 퇴사당했다. 이렇게 빠르게 퇴사당한 것은 기숙사 역사상 최단기록일 것이다.




 돌이켜보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 어떤 정신 나간 짓을 벌이는 존재인지 톡톡히 경험하였다. 이런 곳에서 팔다리 멀쩡하게 3년을 무사히 지낸 사실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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