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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Mar 28. 2024

닭죽 테러 사건

한국 고등학생의 여름방학


 ‘방학’은 학업에 지친 학생들에게 내리는 가뭄 속 단비이자, 꿀 같은 휴식이다. 하지만 한국 고등학생이라면 ‘방학’이 갖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성적을 올릴 ‘찬스’라고, 어른들은 말했다.




 방학이 오면 희망하는 사람만 기숙사에 입사했다. 원래는 방학 중에는 아예 개방을 안 하는데, 기숙사 담당 선생님이 방학 개방을 추진한 모양이었다. 남학생에게 특히나 까칠한 선생님이었지만 기숙사에 진심이었던 것 같다. 수업 시간에 스타 얘기만 덜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대체 기술 시간에 480p 화질의 스타 경기를 왜 보여주냐고. 그것도 테테전을.


내 눈


 나는 매 방학마다 기숙사에 들어갔다. 기숙사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 수 있고, 이렇게라도 안 하면 방학에 아예 공부를 안 할 게 뻔했다.


 당연히 급식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음식을 싸왔다. 마트에서 사 오는 사람도 있고, 반찬을 싸 오는 친구도 있었다. 휴게실 냉장고는 다양한 락앤락통으로 가득 찼다. 나는 마트에서 콘푸로스트와 우유, 일회용 그릇, 숟가락을 사 왔다. 아침은 시리얼을 먹고, 점심과 저녁은 편의점에서 사 먹었다.


 방학의 기숙사는 고요했다. 입사자는 몇 없었다. 항상 사람이 가득 차 있던 자습실은 텅텅 비었다. 나는 마음에 드는 자리 아무 데나 앉아 공부했다. 이 친구는 이런 문제집을 푸는군 구경하면서 말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자습실에 처박혀 공부하거나 학교에서 특별수업을 듣거나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참으로 바쁘고 나른한 방학이었다.




 방학(放學)은 놓을 방 자에 배울 학 자를 쓴다. 말 그대로 배움을 잠시 놓는다는 뜻이다. 학생은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학기 사이에 방학을 끼어 넣어 학생이 푹 쉬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어른들은 방학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방학이 성적을 확 올릴 기회라며, 딴 놈이 놀 때 너는 공부해야 한다며, 학원과 인터넷 강의에 방학 특강이 우수수 쏟아졌다. 학생들은 방학이 되면 학기 중보다 더욱 고달픈 스케줄에 시달렸다.


'잠은 죽어서 자라'는 말이 명언으로 통하는 나라


 어른은 기어코 아이를 공부시킨다. 당신의 염원과 바람을 한껏 불어넣어 풍선처럼 부풀린 다음, 아이를 책상에 앉히고 문제집에 머리를 짓누른다. 우리는 어른에게 주입받은 ‘학생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책가방을 메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학원을 쏘다녔다. 방학에 놀면 죄책감을 느꼈다. 방학에 쉬는 것은 죄였다. 그것이 고등학생의 방학이었다.


 나는 텅 빈 자습실에 혼자 서서, 페인트가 벗겨진 학교 외벽을 바라보았다. 알록달록한 페인트를 번지르르하게 발랐지만, 군데군데 허름하고 낡은 속살이 드러났다. 여름방학의 학교는 학생을 잃고 쓸쓸해 보였다. 나는 일기장에 글을 끄적였다. 환희에 가득 차 아이처럼 즐겁게 뛰어다녔다. 내 발은 흥건히 피에 젖어 있었다.




 개학하고 기숙사에 돌아오니, 3층 휴게실에 악취가 진동했다. 우리는 코를 막고 냉동고 문을 열었다. 한쪽 구석에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락앤락 통이 있었다. 방학 입사 기간이 끝나면 학생들은 집에 돌아가고, 기숙사의 모든 전기가 끊긴다. 그렇다면 냉동고에 자리한 저것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락앤락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사체를 부검하는 부검의처럼,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끔찍한 죄악이 우리를 덮쳤다.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휴게실을 뛰쳐나갔다.


 1학년 후배가 방학 입사 때 들고 온 엄마표 닭죽이었다. 나는 닭죽이 전기 끊긴 냉동고에 몇 주 숙성되면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되었다. 알고 싶지 않았는데. 그 후배는 기숙사 동급생, 선배들에게 평생 들을 쌍욕을 들었다.


내가 알던 닭죽 색깔이 아닌데


 우리는 3층 휴게실 냉장고 문과 창문과 입구를 이 주일 넘게 열어두었다. 3층 복도는 금세 악취에 점령당했다. 자습실 문이 열릴 때마다 희미한 악취가 침범했다. 정말 끔찍하고 역겨운 냄새였다.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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