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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Mar 30. 2024

수능과 성인용 기저귀

수능 직전에 전립선염 걸린.ssul


 “전립선염입니다.”


 안경을 쓴 의사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나는 의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전 19살인데요?”


 “그니까 말입니다.”


 의사는 내 나이 따위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였다.


그게 무슨 소리요 의사양반




 고삼. 저 짧은 단어에 얼마나 많은 애환과 한이 담겨 있는가. 어릴 때는 몰랐지. 내가 고삼이 될 줄은.


삶에 찌든 고3의 모습


 수능은 고등학생에게 가장 큰 이벤트다. 수능 외에 대학에 가는 방법이 많아지면서 옛날의 거대한 위상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수능은 중대사항이었다.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3년, 길게는 12년 동안 고생한 결과가 어느 정도 결정되는 날이다. 수시로 지원한 나도 이렇게 부담감이 심한데, 정시 애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고삼이 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어딘가 무겁고 서린 공기가 학교 전반에 깔렸다. 교실에는 수시파와 정시파가 섞여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수시충, 정시충이라 부르며 놀렸다. 솔직히 난 아직도 그 둘이 무슨 차이인지 잘 모르겠다. 수능 점수를 아예 보지 않는 학과는 적었고, 선생님들은 정시를 준비하는 아이들도 억지로 수업에 참여시켰으니. 결국 다 수능을 보는 건 똑같았다. 대학에 안 가거나 수능을 보지 않는 친구들도 다른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침묵을 유지했다. 마치 수능 감독관이 벌써 교실에서 우리를 감시하는 것처럼.


 정규 수업은 대부분 자습으로 대체되었다. 나는 도서실 앞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일인용 책상이 교실 가장자리를 따라 따닥따닥 배치된 교실이었다. 이런 교실이 학교에 있는 줄도 몰랐다. 학생들은 책상 하나씩 자리 잡아 머리를 처박고 공부에 몰두했다. 교실에는 히터가 웅웅대는 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 샤프가 끄적이는 소리만 가득했다.


 나는 원서 6개 모두 수시로 지원했다. 내가 수능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고, 내 내신은 학교 최상위권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나는 교재에 고개를 처박고 불을 지피는 아이들을 구경하며, 책상 위 서랍장에 들어 있던 정체 모를 시집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고삼이 되면 기행을 펼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수능의 압박감에 그만 정신을 잃고 괴상한 짓거리를 저지르는 것이다. 내가 본 것만 해도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괴성을 지르고 울면서 뛰어다니거나, 기숙사방 이층침대를 중앙에 옮겨 붙이고 슈퍼마리오 오디세이를 하거나 하는 일이 있었다. 어른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또 어떤 정신 놓은 고삼이 행위예술을 할지 모른다.


 내 몸도 기행을 벌였다. 언젠가부터 오줌이 자주 마렵더니, 매 수업과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을 갈 정도가 되었다. 심지어 어느 날은 오줌을 싸고 화장실문을 열고 나오는데 또다시 오줌이 마렵기도 했다.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다시 화장실에 들어갔다. 고장난 수도꼭지마냥 힘없는 물줄기가 나왔다.


 바로 비뇨기과에 찾아갔다. 의사는 진료실 구석에 기이하게 생긴 기계를 가리켰다. 탑블레이드 경기장 같이 생긴 둥그런 철판이었다. 바닥 정중앙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의사는 나보고 여기에 오줌을 싸라고 했다.


쓰리 투 원 고~슛!


 볼일을 마치니 컴퓨터에 그래프가 나타났다. 그 탑블레이드에 달린 진동 센서오줌의 속도, 힘 등을 기록한 것이었다. 성인 평균 그래프와 비교했을 때, 내 그래프는 힘없이 기어 올라가다 절반도 못 미치는 높이에서 다시 힘없이 내려왔다.


 의사는 방광염 아니면 전립선염이라고 했다. 만약 내 오줌에서 세균이 검출되면 방광염, 그렇지 않으면 전립선염이라고 설명했다. 다음날 병원에 다시 찾아가니 의사는 전립선염이라고 알려주었다. 전립선염은 나이 든 사람이나 걸리는 병 아니었나? 의사는 현실을 못 받아들이는 나를 보고 말했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젊어도 걸릴 수 있다고.


 그렇다. 나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내 몸은 입시 스트레스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것이 전립선염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었다. 실제로 대학 입시가 끝나자마자 전립선염은 깨끗하게 나았다. 이 빌어먹게 정직한 몽뚱이 같으니라고.


 전립선염 치료 과정은 자세하게 묘사하고 싶지 않다. 매주 한 번씩 의사가 비닐장갑을 끼고 젤을 뿌렸다고만 말하겠다. 존나 아팠다.




 치료를 받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수능이었다. 빈뇨 증상이 너무 심했다. 수능 수학 시간은 120분이다. 수학은 포기한 지 오래였기 때문에 문제 푸는 건 상관없었지만, 도저히 120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나는 약국에 갔다. “어서 오세요.” 친절하게 인사하는 약사에게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성인용 기저귀 있나요?” 물었다. 약사는 “사이즈는 어떻게 드릴까요?” 되물었다. 흠, 생리대 사이즈가 체형이 아니라 생리혈 양에 따라 결정된다고 들었는데. 그럼 기저귀도 마찬가지겠지? 나는 대짜를 달라고 했다. 절대 쓸데없는 자신이 있었던 게 아니다.


아 응애예요 응애


 하얗고 불투명한 봉투를 들고 약국에서 나왔다. 집에 돌아와 기저귀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몇 분 동안 노려봤다. 기저귀 포장지에 ‘요실금 걱정 NO’라는 문구가 나를 놀리는 것 같았다. 19살에 기저귀를 차야 한다니. 온갖 수치심이 몰려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 말고 더 나은 선택지가 없었다.


 수능날, 나는 팬티 대신 기저귀를 차고 시험장에 갔다. 걱정이 만저만 아니었다. 진짜 시험 중에 오줌을 싸게 될까. 오줌 싸는 소리 들리려나. 사람의 요도에서 오줌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기저귀와 바지 바깥으로 새어나갈까. 시험 중에 오줌 싼 걸 들켜서 인터넷에 ‘수능 오줌남’ 따위로 돌아다니진 않을까.


 하늘이 무심하게도 시험이 시작되었다. 나는 머리를 최대한 굴리며 문제를 풀면서, 방광에 집중을 놓치지 않았다. 국어 시간은 아슬아슬하게 버텼고, 수학 시간은 재빨리 풀고 중간에 화장실에 갔다. 나머지 시간은 긴장이 풀려서 별 일 없이 평온했다. 다행히 기저귀에 오줌을 지리는 일은 없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기저귀를 벗고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50 전에는 다신 입는 일 없을 거라고 다짐하면서.




 아무리 고통스러운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 추억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고삼 시절만큼은 절대 추억할 수 없을 것 같다. 매일매일 스트레스가 나를 짓누르고, 불안한 가슴을 안고 잠에 들었다. 교무실에서 선생님에게 자소서를 첨삭받고, 문제집을 풀고, 강의를 듣는 하루가 반복되었다. 그때 나는 내가 아니었다. 대학 입시에 영혼을 바친 무언가였다.


 수능장에서 나오고 귀에 이어폰을 꽂으며 버스에 올랐다. 일찍 모습을 보인 달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이 고통이 빨리 끝나길.


2018년 11월 5일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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