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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Mar 31. 2024

졸업과 피터팬

에필로그. 우리 마음속에는 피터팬이 산다.


 옷 속에 바람이 스미고, 하늘에서 진눈깨비가 솔솔 날렸다.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게 얼마만인지. 시청 전광판에 금연 광고가 번쩍였다.


 체육관에 학생들이 모였다. 선생님이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그 위로 현수막에 ‘제ㅇㅇ회 ㅇㅇ고등학교 졸업식’이라고 화려하게 적혀 있었다.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지고, 몇몇 학생들이 무대에 올라 상장을 받았다.


 나는 이 친구 저 친구에게 끌려다니며 평생치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나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려 애쓰고 있었다. 멍청한 표정의 정석이다.


 졸업식은 3시간 정도 이어졌다. 친구들은 아직도 플래시를 터뜨리며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곧바로 집에 돌아왔다. 드디어 끝났다는 허무함과 함께. 그렇게 나는 법적으로 어른이 되었다.




 2000년생의 하찮은 추억팔이는 이렇게 끝이 났다.



 우리는 모두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 하루가 다르게 몸이 무거워지고, 환경이 바뀌고, 세상이 변하고, 책임질 게 늘어간다. 반면 엄마와 밭에서 쑥을 캐던 기억, 컴퓨터실에서 빠른무한을 하던 기억, 교실에서 친구들과 과자를 나눠먹던 기억, 새벽 내내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기억은 변함없다. 기억 속 어린 나는 한 살도 먹지 않은 채 그대로다. 우리 마음속에 각자의 피터팬이 사는 것이다.


 그 피터팬은 기억 서랍을 열 때마다 항상 같은 행동을 반복할 것이다. 나이 하나 먹지 않고, 어린 시절 내 모습 그대로 간직한 채, 어릴 적 친구들과 어릴 적 그곳에서 즐겁게 놀고 있을 것이다. 때 하나 묻지 않은 순수한 네버랜드에서.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추억이 된다. 나는 변해가겠지만, 추억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추억팔이를 하는 이유는 변하지 않음을 염원하는 마음이 가슴 깊은 곳에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추억팔이의 동물이다.



 우리 마음속에는 피터팬이 산다.




 여기까지 2000년생의 추억팔이를 읽어준 여러분께 감사를 전한다.


내 마음속의 피터팬 (painted by DA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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