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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Mar 29. 2024

노인 요양원과 어린이 박물관

어린 시절의 종말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방문을 닫았다. 침대에 몸을 던지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베개에 머리를 처박았다. 눈두덩이를 틀어막았지만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게 엉엉 울었다.


 내 어린 시절의 종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봉사 시간이 필요했다. 중학생 때는 도서부 활동 덕분에 별 신경 안 써도 봉사 시간이 채워졌는데, 고등학생이 되니 봉사 활동을 해야만 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중, 교실에서 한 여자애가 봉사 동아리를 만들겠다고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 바로 나도 가입한다고 말했다.


 ‘뽕따’는 우리 반 친구들로 구성된 자율 봉사 동아리였다. 정말 흉악스러운 작명 센스가 아닐 수 없다. 자연스럽게 회장님이 된 여자애는 곧바로 봉사 장소를 물색했다. 여러 후보가 리스트에 올랐고, 최종적으로 노인 요양원이 당선되었다.


이름 누가 지었냐


 토요일, 나는 아침 8시에 일어나 지도를 확인했다. 지도는 아파트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라고 했다. 버스에 올라타서 다시 지도를 보았다. 그래, 이곳에서 내리는 거군. 까먹지 않게 도착 정류장 이름을 되뇌었다. 곧바로 버스 스피커에서 그 정류장 이름이 울려 퍼졌다. 분명히 ‘이번 정류장’이라고 말했다. …어라?


 요양원은 아파트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었다. 급하게 지도를 확인하느라 걸어가도 될 거리를 멍청하게 버스를 탄 것이다. 친구들은 다음 버스에서 무더기로 내렸다. 나보고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냐고 물었다. 나는 어떻게 우리 집 바로 옆 요양원을 봉사 장소로 선택했는지 묻고 싶었다. 이런 데 나도 있는 줄 몰랐는데.


 편의점 옆 작은 길로 들어서서 쭉 내려가 정체불명의 공장 하나를 지나치면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내가 이렇게 외진 동네에 살고 있었던가. 논밭을 지나고 모래가 무덤처럼 쌓인 공터를 따라 오르막길을 오르면 요양원이 나타났다.


이렇게 고급스럽지는 않았다


 요양원 일은 간단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르신을 씻겨주는 것도 생각했는데, 그렇게 어려운 일은 시키지 않았다. 휠체어를 정리하거나, 청소기를 돌리거나, 어르신들 말동무가 되어주거나, 빗자루로 요양원 바깥을 쓰는 게 전부였다.


 어르신들은 우리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동안 봉사활동 온 학생들을 많이 봤는지, 딱히 말을 걸지도 않고 말없이 우리를 구경했다. 말을 안 걸어서 편했다. 노인을 상대하는 건 불편하다.


 중고등학생에게 봉사 활동을 시키는 이유는 뭘까? 봉사 활동을 하면서 숭고한 봉사정신을 배우길 원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 목적은 실패다. 대부분의 학생은 봉사활동을 귀찮아한다. 봉사활동을 가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고,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뒤적거린다. 봉사활동은 그저 졸업요건을 맞추기 위한 귀찮은 활동일 뿐이었다.


 어른들은 우리가 다양한 경험을 하며 무언가 배우길 원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그럴 능력이 없다. 우리는 그저 어떻게 하면 성적을 1점이라도 더 올릴지, 생기부에 한 줄 더 실을지,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지에만 몰두했다. 어른들은 성적에만 목매는 우릴 보며 한숨을 쉬지만, 어쩌겠는가. 본인들이 만든 현실인 걸.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애들은 점점 봉사를 안 오고 피시방으로 튀었다. 뽕따 회장님은 매일 아침 카톡으로 남자애들을 닦달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얼어 죽을 봉사 정신.



 어느 날은 내가 방을 청소하는 중이었다. 할아버지가 병상에 누워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등에 꽂히는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청소에 집중했다. 창틀에 먼지를 닦는 중이었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나는 할아버지께 가까이 다가가 불편한 게 있냐고 여쭸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내게 바나나와 귤을 주었다. 이게 뭐냐고 물어도 그냥 먹으라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방에서 나와 멍청하게 서 있었다. 한 손에는 바나나 반쪽과 쪼끄만 귤이 들려 있었다. 상하기라도 한 건가, 바나나를 까서 먹었다. 달콤했다. 아무 문제없는 멀쩡한 놈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어떤 심정으로 내게 과일을 준 걸까. 봉사 시간을 채울 목적으로 억지로 끌려와 노동하는 나와, 그런 남자 아이를 바라보는 노인. 거동이 불편해질 정도로 늙어버린 노인이, 팔팔하게 움직이는 청춘을 보며 어떤 마음으로 과일을 건넸을까. 나는 평생 알지 못할 것이다.




 2학년이 되자 뽕따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피시방으로 도망치던 남자애들은 대부분 탈퇴했다. 봉사 장소는 어린이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지하철역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어린이 박물관이었다. 1층 정중앙에 브라키오사우루스가 목을 천장으로 길게 뻗고, 그 녀석을 빙 둘러 올라가는 나선형 오르막길이 나 있는 3층 건물이었다. 주말이면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놀러 오거나, 부모들이 어린 자식 손을 잡고 왔다.


미디어에서 자주 나오는 목 긴 공룡


 봉사자들은 아침 9시에 사무실에 모여 명단을 작성하고, 주황색 조끼를 입었다. 층별로 사람을 나눈다. 1층은 매표소에서 티켓을 검사하거나, 체험 활동을 보조했다. 2층과 3층은 체험장에 서서 아이들이 어지른 도구를 정리하고 아이들이 뛰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다.


 아이는 박물관에 들어오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여기저기 들쑤신다. 뭐 좀 만지려고 하면 부모가 “거기 앞에 서봐.”하고 말린다. 아이는 어색한 표정으로 브이를 한다. 부모는 스마트폰 렌즈를 들이밀고 찰칵댄다.


 사진을 찍고 나서 부모는 “사진 찍었으니깐 딴 거 보러 가자.”고 말한다. 아직 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아이는 칭얼거리며 놀고 싶다고 하지만, 결국 부모 손에 질질 끌려갔다.


 몇몇 아이는 바닥에 드러누워 땡깡을 부렸다. 그러면 부모는 화난 말투로 “그럼 엄마 아빠 간다. 잘 있어.”하며 뚜벅뚜벅 걸어간다. 아이에게 선택권은 없다. 분한 표정으로 자기를 버리고 가는 부모의 뒤를 쫓는다.


 어린이 박물관이지만, 주인은 어른이었다. 아이의 의사는 철저히 묵살되었다. 부모는 호들갑을 떨며 카메라를 들이대고, 아이들은 뭘 하려고 하면 야단을 맞았다.


정서적 아동학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https://youtu.be/B5PfBQl-8GY?si=_WBlzHzwWPTwPtfZ


 나는 부모에게 따지고 싶었다. 제발 아이를 냅두라고. 자유롭게 놀게 하라고. 당신은 바깥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시키고 수다나 떨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저 봉사시간을 채우기 위해 끌려온 고등학생에 불과했기에.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 안 그래도 허공을 가르며 날아다니는 블럭을 주워다니느라 바빴다.


 어떤 아이들과 함께 찍찍이가 달린 쿠션 블럭으로 이글루를 만들었을 때, 아이들은 해맑게 기뻐했다. 아무 절망도 상처도 받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순수하게 웃는 아이들을 보자 나는 슬픔을 느꼈다.


 얘들아, 너희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하면 안 되는 일이 점점 많아질 거야. 게임을 해도 안 되고, 염색을 해도 안 되고, 파마를 해도 안 되고, 바지를 줄여도, 치마를 줄여도, 화장도, 투블럭도, 귀걸이도, 헤어롤도, 심지어는 겨울에 교복 위에 패딩도 못 입게 될 거야. 그러다가 어느새 매 행동마다 어른에게 야단맞을 짓인가 고민하며 자기 자신을 검열하는 너희를 보게 될 거야. 그렇게 슬픈 어른이 되고 말 거야.


 그날 나는 집에 돌아와 울었다. 침대에 엎드려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다. 눈물이 막을 새도 없이 흘러나왔다. 갓 옹알이를 터뜨린 아이처럼 설움이 쏟아져 나왔다. 봉사활동은 반년 정도 이어지고 끝났다. 그렇게 뽕따는 해체되었다. 내 어린 시절이 종말을 맞이했다.


어린 시절의 종말 (painted by DA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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