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res de la Plaza de Mayo

by Dori Lee

Letters from Argentina는 이도리가 아르헨티나에서 Independent Research를 하면서 방문한 많은 곳에서 직접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며 수집한 기록들을 소중한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쓰였습니다.


April 2015


Plaza de Mayo는 Casa Rosa라는 대통령 궁 앞에 있는 아르헨티나 독립(1810년 5월 25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광장이죠. Casa는 ‘집’이라는 뜻이고, Rosa는 ‘분홍색’이라는 뜻이에요. 우리나라의 청와대는 푸른빛 돔이 있고, 미국은 백악관이라서 하얀색이고 여긴 대통령궁이 핑크색이에요. 그리고 Mayo는 ‘5월’이라는 뜻이라서 ‘5월의 광장’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광장이 대통령 궁 바로 앞에 있어서 예전 Peron때 이곳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어요. Peron은 포퓰리즘 정치로 굉장히 유명해서 대중들에게 인기가 굉장히 많았는데 집권 시기 때 많은 노동자들이 여기에 모여서 Casa Rosa 발코니에서 하는 Peron의 연설을 듣고 그랬대요.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과거에는 이 광장을 중심으로 중요한 정부의 건물들이 다 모여있었대요. 그 이유는 미술사 시간에 배웠는데, 예전에 스페인이 라틴 아메리카를 식민 지배할 때 원주민들의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원래 원주민의 종교의 중심지였던 광장을 모두 다 갈아엎고 그 위에 유럽의 식민통치를 상징하는 군사 기관, 성당, 정부기관을 디귿자 모양으로 세우고 그 앞에 이런 Plaza를 만들었대요. 그래서 지금은 그 군사 기관 대신 중앙은행(? 인가 확실하진 않지만)이 있고, 한쪽에는 중요한 정부 기관이 있고, 가운데는 Casa Rosa가 있고, 굉장히 큰 성당이 있어요. 아무튼 이건 그냥 여담이고, 이곳이 과거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중심가다 보니 항상 여기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여유 부리며 시간을 보내요.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비둘기가 너무너무 많아서 이곳을 둘러보며 사진 찍고 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아르헨티나는 유독 정말 비둘기가 너무 많았어요. 사람 반 비둘기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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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보이는 깃발은 Madres de Plazade Mayo의 평화 시위가 진행될 때 돌게 되는 원형의 길에 따라 쭈르륵 있었어요. 깃발에는 ‘우리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라고 쓰여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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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닥에는 사진에서와 같이 동그랗게 어머니들이 행진하는 길을 표시했어요. 저번에 말씀드린 하얀 손수건 보이시죠? (Letters from Argentina 3편에서 교통표지판에 그려져 있던 하얀 손수건)

이날은 제가 좀 일찍 가서 시위는 시작 전이었고 비교적 한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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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확히 3시 30분이 되니까 저 하얀색 차가 광장에 도착했어요. 그러더니 어디에 다 있었는지, 갑자기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모이면서 환호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아마 이 어머니들을 위한 노래가 있나 봐요. 사람들이 그 노래를 다 같이 따라 부르며, 차에서 할머니들이 한분 한분 내리실 때마다 엄청 크게 손뼉 치고 ‘Madres! Madres! (어머니! 어머니!)’ 응원하셨어요. 처음엔 진짜 놀랐고, 나중엔 신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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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는 이 광장을 두 번 돌으셨어요. 돌 때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과거에는 어머니들이시지만 지금은 굉장히 연로한 할머니)” 뒤를 따르면서 노래를 같이 불렀어요. 그리고 종종 영어도 많이 들렸어요. 저처럼 외국에서 여행 온 사람들이 관심 있어서 왔나 봐요.


무엇보다 신기했던 것은 생각보다 어린 친구들이 많았어요. 보시면 알겠지만 사진에서도 할머니들 옆에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있어요. 정확히 뭘 알고 저기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요. 비록 지금은 다 이해를 못하더라도 나중에 크고 나서는 자신이 불렀던 노래를 기억할 거고, 자신이 머리에 하얀 손수건을 두른 할머니들이랑 같이 시위에 참여했다는 건 정확이 기억할 거잖아요. 그럼 나중에 더 이상 이 ‘어머니’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가 되어도 (굉장히 연세가 많으세요) 이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들이 시위에 참여했던 기억을 할 거고 자국의 아픈 역사를 절대 외면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그거 보면서 참 많이 부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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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솔직한 마음으로는 여기서 두 달 남짓 있으면서 과거에는 비옥한 영토와 풍부한 자원으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강대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정말 이제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날개가 꺾여버렸구나… 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어요. 나라 전체적으로 경제 상황이 너무 안 좋고, 길거리만 나가봐도 매우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살고, 아직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어린아이들에게 소매치기를 시키고 구걸하게 하는 거 보면서 정말 현실은 이렇게 처참한데 아직까지도 과거 화려했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그때처럼 화려하고 느긋하게 살려고 하는 걸 보면서 개인적으로 너무 답답하고 마음이 안타깝고 아르헨티나의 국민성에 대해서도 많은 의문점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들이 강하게 자리 잡으면서 저도 모르게 아르헨티나를 많은 부분에서 의구심을 갖고 불만이 많이 있었나 봐요. 많은 면에서 아직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나라의 면적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은 우리나라의 수준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영토에 이런 수준의 자원을 우리나라에게 주면, 정말 훨씬 더 잘 살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수십 번도 더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일찍부터 어린애들이 자국 역사에 대해 배우고 저런 평화 시위에 참여하는 경험을 하게 하는 건 정말 본받을 점인 것 같아요 (물론 모든 국민이 그런 경험을 누리고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진 않지만…).


‘어머니’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두 바퀴 도는 것조차 힘든 나이가 되셨고, 그 오랜 세월 동안 자식이 어쩌다가, 어디에서, 언제 죽었는지 조차 모르는 어머니들이 남은 여생을 편히 사시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이 되었어요. 물론 제가 아이를 아직 낳아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 가족이, 아니면 제가 제 목숨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작스럽게 행방불명이 되었고 당시 사회적 분위기상 그 사람이 정부에 끌려가 심한 고문을 당하고 어디선가 싸늘한 주검이 되었겠구나…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고 싫은데… 어머니의 입장에서 본인의 목숨과도 같은 자식이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을 하면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 같아요. 그 고통을…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 아픈 고통을 가지고 일생을 살아오시면서 얼굴조차 보지 못한 손자 손녀라도 찾겠다며 한주도 쉬지 않고 나오시는 할머님들의 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먹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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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 시위 보면서 겹쳐진 이미지는 (상황이 똑같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위안부 할머니들 수요일 집회가 생각났어요. 시대나 동기나 원하는 결과는 매우 다른 시위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매주 끊임없이 시위하는 것도, 몇십 년간 하루도 그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도, 점점 그들의 아픔을 공유하는 동료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도 (생존해 계신 할머님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 다 너무 비슷했어요. 이렇게 표면적인 것들은 다 비슷하지만 또 깊이 있게 다루면 정말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시위를 쭉 지켜보며 느낀 것은 아르헨티나 할머니에게는 정확하게 뭐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희망’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실종된 손자를 찾는 사례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고, 어딘가 자신의 손자가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 그 손자들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지만,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는 그런 희망이 없는 것 같이 느껴졌어요. 많은 우리 할머님들은 자신들을 품어주고 사랑해줄 “가족”이라는 따뜻한 공동체를 가져본 게 너무 오래되었고 자식도, 남편도 없고, 그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분들을 기억해줄 혈육이 많이 없는 것 같이 느껴졌어요. 그리고 이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시고 나면 계속해서 지금 할머니들이 하시고 계신 활동을 이어 줄 다음 세대의 유무에 대한 차이가 느꼈어요.


아르헨 어머니/ 할머니들 입장에서 보면, 어릴 때부터 이쪽 분야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초등학교 학급이 단체로 광장에 모여서 할머니들의 시위를 지켜보도록 하는 활동도 있고, 또 이런 활동을 통해 찾은 손자들이 지금은 이 할머니들의 단체를 이어서 매우 창의적으로 더 구조화된 단체로 이어나가고 있어요. 그런데 반해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은 많이 외로워 보였어요. 물론 저번에 시위에 갔을 때 학생들도 종종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 학교 수행평가 과제로 다녀가는 학생들, 시위에 왔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사진만 찍고 가는 학생들을 많이 봤어요. 그리고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역사를 필수 과목에서 없앤다느니 뭐 비중을 줄이겠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오가는데 당연히 저희 세대나 저보다 어린 학생들이 역사에 관심을 갖고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굳이 시간을 내어 귀 기울일 리가 없죠.


또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제 생각엔 정부에서 대하는 태도도 다른 것 같아요 (2015년 기준). 물론 이해해요. 아르헨은 이 나라 안에서 일어난 이야기라 타국가와의 관계를 신경 쓸 필요 없이 자국 내에서 진상 규명하고 처벌할 사람 처벌하면 그만이지만, 우리나라는 또 이게 외교적으로 얽힌 문제라 쉽게 정부가 나설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지만, 그래도 그렇지... 너무 소극적인 것 같아요. 시기적으로 따지면 아르헨 할머니들보다 우리 할머니들이 훨씬 더 오래 싸우고 계시고, 그 싸움이 더더욱 외로운데, 우리나라 정부나 국민들은 이 할머니들을 위해서 뭘 했나 싶어요(2015년 기준). 일본이 쉽지 않은 상대이고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자꾸 부정하는 일본의 역사의식 없는 지도자들 때문에 이 문제가 너무나도 힘들 거라는 건 정말 잘 알지만, 적어도 정부가 나서서 이 문제를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무리 잘 모르고 관심 없는 학생들이라도 간접적으로 무의식 중으로라도 ‘아 이게 정말 중요한 문제구나’라는 의식 정도는 갖겠죠.


이미 제가 느끼기에는 이 할머니들과 저희 세대 사이의 역사가 단절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 할머니들이 떠나시고 나면 과연 이걸 체계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는 있을까 의문이 들어요. 제가 생각하기엔 이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었던 기회가 과거에 몇 번 있었지만, 경제 강대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우선순위로 자리해 ‘역사는 역사일 뿐’으로 덮어두던 과거 정부의 행태가 굳혀진 것 같아요. (불편하게 느끼시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정치 얘기라면 질색이지만, 일단 제 지극히 개인적이고 솔직한 생각을 공유하니거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주세요) 지금 정부(2015년 기준)는 아버지 정권이 맺은 ‘한일협정’이 얼마나 근시안적인 판단이고 잘못된 걸 인정하고 고쳐나가려고 지금이라도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봐요. 한순간 잘못 맺은 협정 때문에 이 할머니들이 하늘에서도 편히 못 계실 것 같아요. 아르헨 할머니들 시위 말하다가 갑자기 위안부 할머니들 이야기로 흘러갔지만, 무엇을 보아도 제가 사랑하는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현실과 자꾸 비교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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