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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ri Lee Apr 18. 2020

이 바보야 진짜 아니야

조선 3대 여류 시인: 황진이 part 1.

나는 어릴 적 할머니 손에서 자라면서, 만화보다는 드라마를 더 많이 봤다. 내가 걷기 시작할 때부터 자연스럽게 할머니 리모컨 심부름을 하였고, 엄마 아빠가 일 나가신 동안 할머니 옆에서 드라마를 마음껏 시청했다. 온갖 드라마를 보면서 자라다가 내가 본격적으로 드라마를 딱 끊은 시기가 2006년이다. 

바로 드라마 황진이 종영 직후다. 


유독 사극을 좋아했었는데, 그 이유가 드라마 속에 나오는 한복이 좋아서였던 것 같다. 곱디 고운 한복에 머리에는 비취색 장신구를 한 모습이 내 눈엔 디즈니 공주들보다 훨씬 더 고와 보였다. 그러던 나에게 역대급 드라마가 있었으니! 바로 2006년에 방영한 황진이!!!


화려한 기생의 일생을 다룬 이야기라 드라마에 등장하는 황진이를 비롯한 기생들의 한복은 내 시선을 사로잡고도 남았다. 그렇게 나는 황진이의 한복을 구경하며 본방 사수를 했다. 다 보고 나니, 한복에 집중하느라 내용을 놓쳐서 엄빠가 모두 주무실 때 방에서 살금살금 기어 나와 다시 봤다. 절절한 내용 때문에 매번 볼 때마다 중학생 이도리는 눈물 콧물을 쏟았다. 책도 영화도 한번 보면 두 번째는 보지 않는 내가 드라마 황진이는 세 번째 돌려보았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황진이 앓이를 했다. 뭐가 그렇게 슬프고 비통한 지 한동안 아주 슬픈 발라드 뮤직 비디오 여주인공 마냥 슬픔에 젖어 있었다. 내 생각엔 황진이 후유증과 중 2병이 겹쳐서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하다 보니 정신을 못 차렸던 것 같다. 이런 상태가 오랜 시간 지속되다 보니 공부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시험 성적이 한번 삐끗하고 나니 정신이 확 들었다. “내 다시는 드라마를 안보리!” 하고 이때부터 대학 졸업을 할 때까지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2006년에 방영한 황진이는 2019년까지 나의 최애 드라마였다 (최근 사랑의 불시착이 갈아엎었다지…)    




허난설헌은 나에게 지적이고 품격 있는 여성이 결혼과 함께 찾아오는 불운 속에서 고고하게 시를 쓰며 한을 달래다 인생을 끝마친 청초한 여주인공의 느낌이라면, 황진이는 스스로 험난한 길을 택하여, 자신을 얕잡아보는 사내라면 누구든지 꼭 복수를 하고 마는 조선 시대의 걸크러쉬, 넘나 멋진 언니다. 이런 황진이의 남다른 면모는 오늘날 문학 책에 등장하는 여러 명시조들을 탄생시켰고, 이와 관련된 러브 스토리(보다는 에피소드 쪽이 더 가깝겠다)를 만들어 나와 같은 진이 언니 팬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나만 알고 있기 아까운 황진이의 럽스토리들을 이번 편 또 다음 편에 걸쳐서 그녀의 시와 함께 풀어보겠다.


(허난설헌과 달리 황진이는 기생 신분이라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야사가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점 주의해주세요^^)




황진이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 황진사를 경멸했다. 


황진사는 길을 가던 중에 다리 밑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진현금의 미모에 홀딱 반한다. 황진사의 꾐에 순진한 진현금은 넘어가고 그렇게 황진이를 잉태하게 된다. 어머니가 그렇게 황진이를 낳아 힘들게 기르는 동안 아버지 황진사는 곁에 없었다. 후에 어머니 진현금은 황진이를 낳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어쨌는지,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 되었다. 이런 맹인 어머니를 혼자 모시고 살았던 황진이는 삶이 너무 버거워 아버지 황진사를 찾아보기로 하였고, 수소문 끝에 아버지를 찾게 된다. 그러나 당황한 황진사는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이 부담스러워 황진이를 자신의 딸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 모습에 황진이는 여성의 미모만 보고 책임지지도 못할 짓을 하는 양반 사내들에게 환멸을 느끼며 스스로 기생이 되기를 선택한다. 원래는 서녀(양반 아버지와 첩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는 여자)로 태어났으나 양반들을 가까이할 수 있는 기생이 되어, 기필코 조선의 모든 남자들이 자신을 탐하게 하였다가 아주 코를 납작하게 해 주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드디어 황진이는 미모와 재주를 모두 겸비한 송도 최고의 기생이 된다. 


황진이를 거쳐간 남자들이 여럿 있지만, 이 중 대표적인 사람들이 지족선사벽계수이사종소세양 그리고 서경덕이 되시겠다. 


그중 지족선사, 벽계수, 이사종, 소세양에 관한 썰을 이번 편에 풀어보겠다. 




지족선사는 이름으로 유추할 수 있듯, 스님이다. 30년간 산속에서 불도를 닦은 대단한 스님으로 이름을 떨쳤다. 30년 동안 흐트러짐 없이 마음속에 온갖 정욕을 잠재우고 수행을 하는 지족선사를 보고 사람들은 살아있는 부처라며 생불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이 소식을 듣고 황진이의 승부욕이 발동했다. “오케이, 불교 한번 접수해보겠어.” 하고 황진이는 하얀 소복 차림을 하고 지족선사를 찾아갔다.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하며 지족선사와 지내기를 청한다. 매일 돌과 나무만 보던 스님 앞에 왠 아리따운 여성이 나타나니 스님도 남자라 좀 흔들리긴 했으나, 그래도 30년 동안 수행한 게 아까워서라도 잘 버텨보려고 했지만…. 실패! 

결국 황진이 앞에서 30년 쌓은 불공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후훗, 스님도 별거 없군. 불교 접수! Next! 




다음 타깃을 고르고 있던 황진이에게 왕실 계통의 도도하기로 소문난 벽계수라는 인물에 대한 소문이 들려온다. 벽계수 또한 송도로 오기 전부터 열이면 열 황진이가 찍은 남자들은 하나같이 황진이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는 소문을 들었다. 벽계수는 “지까짓게 그래 봤자 한낱 천한 기생일 뿐인걸”하며 자신은 절대 황진이에게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를 떵떵 쳐놨다. 그야말로 황진이가 입맛 다실만한 오만한 양반 사내 되시겠다. 


벽계수가 송도에 도착을 해 마을 한 바퀴 투어를 하려고 말을 타고 만월대를 구경을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一到 滄海) 허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明月)이 만공산 허니 쉬어간들 어떠리 
(풀이)
청산에 흐르는 벽계수야 쉽게 흐름을 자랑 마라
한 번 바다에 닿으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달빛이 가득할 때 쉬어감이 어떠하겠는가 


벽계수야, 인생이 이렇게 덧없는데, 뭘 그렇게 서두르니, 천하의 명기 명월이 (황진이)가 이렇게 앞에 있는데, 나와 좀 즐기고 쉬다 가는 게 어때?라는 의미의 시다. 

쉽게 오늘날의 언어로 표현을 하자면, 인생 YOLO인데, 오늘 라면 먹고 갈래? 


황진이의 이런 돌직구 유혹에 벽계수는 그만 당황하여 말에서 굴러 떨어지고 만다. 황진이 앞에서 한치도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한 벽계수는 아주 개쪽을 당한 것이다. 


이렇게 황진이는 벽계수의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진짜 양반 놈들 별거 없군… 훗”하며 미션을 완수하고 그대로 떠나버렸다. 


(내 머릿속에선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가 BGM으로 재생되고 있는 중이다)


이와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청산리 벽계수야가 황진이의 대표적 유혹 시다. 

이 짧은 글 안에 담긴 내용을 들여다보면 훨씬 더 센세이셔널하다.


이 시는 황진이가 벽계수에게 마음이 있어서 진심을 담아 만든 게 아니라, 벽계수라는 인물을 왕실 혹은 양반네의 대표 인물로 설정해서 이 계층을 통틀어 얕잡아보며 만든 노래다 보니 속 뜻이 더 재미있다. 청산 속 벽계수는 시 표면적으로 보면 푸른 시냇물을 뜻하지만, 속 뜻은 도도한 왕족 벽계수 인물을 뜻하기도 한다. 또 명월이 공산에 가득하니에서 공산에 뜬 명월의 표면적 의미는 산 위에 뜬 달을 뜻하지만, 황진이 본인의 기명(기생이 되고 나서 주어지는 이름)이 명월인 것을 감안했을 때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다. 


남존여비와 계급 차이가 확실했던 조선시대에 기생인 자기 자신을 하늘에 떠 있는 달로 표현하고 왕실 혈통의 사람을 산골짜기 물 정도로 비유했다는 것은 정말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사회적 신분을 이용해 자신을 천시하던 양반 계층을 땅에서 졸졸 흐르는 물, 기생인 자신을 하늘에 떠 있는 달로 표현한 황진이의 이 시조만 봐도 평소 양반들에게 갖고 있었던 분노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이사종과의 러브스토리를 풀어보겠다. 이사종은 당대 꿀성대로 유명했다. 승려와 고귀하신 왕족과는 달리, 좀 놀 줄 아는 남자였다. 이사종은 풍류를 즐길 줄 아는 황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그런 관계로 발전해나가고 싶어 했다. 


(의도적인 건지 모르겠으나) 어느 날 이사종은 물가에서 누워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산책을 나온 황진이가 이 노래를 듣고, “어머 저 꿀보이스는 분명 이사종일거야!” 하며 다가갔다. 


황진이는 이사종에게 계약 결혼 비스무리한걸 해보자고 제안한다. 6년간 함께 살면서 3년은 황진이가 이사종 집에 들어가서 살면서 생활비를 대고, 나머지 3년은 이사종이 황진이 집에 들어가 살면서 생활비를 대자는 조건부 동거였다. 그렇게 이 둘의 6년간의 동거는 시작되었다. 


자자, 이 때는 조선시대다. 그리고 심지어 허난설헌 때 보다도 조금 더 앞선 시대다. 요즘 시각으로 봐도 상당히 진보적인 연애관인데 하물며 조선시대는 어떠했겠는가. 그러나, 이 또한 역시 진이 언니라서 가능했다. 이렇게 이 둘은 6년간 알콩달콩 잘 살았다. 그리고 6년째가 되던 날 이사종과 황진이는 깨끗하게 헤어졌다. 쿨내 진동하며 제 갈기 찾아갑시다 하고 헤어졌는데, 천하의 황진이도 인간인지라 6년 동안 살면서 쌓인 정에 날마다 이사종을 사무치게 그리워했다. 그래서 지은 시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둘러내어
춘풍 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날 밤이어든 구뷔 구뷔 펴리라
(풀이)
동짓달 긴긴 밤의 한가운데를 베어 내어,
봄바람처럼 따뜻한 이불 속에 서리서리 넣어 두었다가,
정든 임이 오신 밤이면 굽이굽이 펼쳐 내어 그 밤이 오래오래 새게 이으리라.


(이 대목에선 나는 백지영의 잊지 말아요를 들어야 했다)


쿨하게 헤어졌지만, 6년간 맨날 살결 맞닿고 지내며 익숙해진 체온이며 체취가 한순간 없어지니 황진이는 이런 애달픈 시를 썼다. 긴긴밤의 시간을 떼어다가 이불 아래 고이 모셔두고, 내 사랑하는 님 오시면 이 시간을 이어 붙여 함께 더 오래 있고 싶다는 내용의 애달픈 시를 이사종을 그리면서 썼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러분 백지영의 잊지 말아요 들어주세요)




얼마 후 황진이는 소세양을 만난다. 이사종에 비하면 소세양과 보낸 시간은 매우 짧다. 당시 계약 동거가 유행을 했었는지, 아니면 황진이가 이사종과 계약 동거를 했다는 소문이 돌아서 였는지, 소세양은 황진이와 30일 동안 함께 살아 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소세양은 당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여색을 밝히는 카사노바였던 것 같다. 소세양은 친구들과 내기를 하며 “딱 30일 동안만 황진이랑 살고 깔끔하게 헤어지겠다. 내가 하루라도 더 황진이랑 있으면 사람이 아니다!” 하면서 황진이를 찾아갔다. 


그렇게 그 둘은 30일 간 동거를 했고 마침내 30일째가 되는 날, 황진이는 소세양과 헤어지려고 했다. 그러나 소세양은 30일 동안 황진이에게 푹 빠져서 함께 하루를 더 보내지만, 그 후 황진이는 매몰차게 소세양을 돌려보낸다. 막상 소세양이 떠나고 나니 지난 시간 동안 외롭고 힘들었던 마음을 따듯하게 채워준 다정다감 한 소세양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며 이런 시를 썼다.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난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풀이)
아, 내가 한 일이여! 이렇게 그리워할 줄을 몰랐단 말인가?
있으라고 말씀드리면 임께서 굳이 가셨겠는가?
보내 놓고 나서 그리워하는 정은 나도 모르겠구나!


자신의 진심과는 달리 모질게 소세양을 내치고 난 것을 후회하며, 내가 가지 말라고 했으면 안 갔을 사람인데 왜 굳이 가라고 했을까 하며 자책하는 내용의 시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해가며 매몰차게 소세양을 등 떠밀어 놓고, 이별을 하자 갑자기 그리움에 마음이 쿵 하고 가라앉아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겉으로는 강한 척했지만, 속은 한없이 여리고 외로운 황진이의 서정적인 모습이 보인다.


황진이의 시가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사랑에 빠진 여자의 마음을 너무 섬세하게 잘 표현을 해서 시대를 초월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에는 이별을 경험한 젊은이들이 노래방을 가서 이별 노래 가사가 전부 자신의 이야기인양 감정이입을 해서 펑펑 울며 부르곤 한다. 소셜 미디어에는 이별하고 난 뒤 듣는 발라드 리스트가 다 있을 정도다. 오늘날과 같은 대중가요가 없었던 조선시대에는 황진이의 어져 내 일이야 같은 시가 당대 모든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이별 시였을지 모른다. 조선시대 이별을 경험한 청춘 남녀가 황진이의 시를 보며 “어머, 이거 내 얘기잖아”하며 이별의 눈물을 흘렸을 모습이 상상이 간다. 


90년대에 태어나 시보다는 대중가요가 익숙한 이도리는 황진이의 시 어져 내 일이야를 보며 떠오른 대중가요가 있다. 이지(izi)의 응급실이라는 노래인데, 아주 가사가 어져 내 일이야와 찰떡이다. 


 이 바보야 진짜 아니야
 아직도 나를 그렇게 몰라
 너를 가진 사람
 나 밖에 없는데
 제발 떠나가지 마
 너 하나만 사랑하는데
 이대로 나를 두고 가지 마
 나를 버리지 마
 그냥 날 안아줘
 다시 사랑하게 돌아와


위 가사가 어져 내 일이야를 썼을 당시 황진이의 심정을 잘 대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먼저 헤어지자고 해놓고 떠나버린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후회하는 모습을 시로 표현해 오늘날의 사람들에게까지 공감을 사는 황진이는 조선 최고의 기생이기 전에,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킨 대중문화 선구자였다. 


izi의 응급실: https://www.youtube.com/watch?v=z3XHwa0l6xM

    


다음 편엔 조선 3대 여류 시인: 황진이 part 2로 돌아오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판 사진 thanks to 나의 벗 신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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