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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팰롱팰롱 May 22. 2021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글

웅진북하우스 출판, 리디셀렉트에서 다운로드 받았다.

이 책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다음으로 이어지는 소설이다. 책을 읽었던 이유도 세 권으로 이어지는 이 연작소설을 완독하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물론 첫 번째 책을 읽으며 박완서 선생님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그 매력에 빠졌기 때문에 완독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단순한 동기로 읽은 이 책은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한동안 나 자신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책은 1.4 후퇴 때부터 박완서 선생님이 결혼식 하실 무렵까지의 이야기를 풀어 놓은 책이다. 시대적 배경으로만 놓고 보면 어떤 의미에서 너무 끔찍하다. 특히 바르고 똑똑했던 오빠가 나라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점점 심신이 피폐하게 변해가는 모습은 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어찌 오빠 탓만 할 수 있으랴. 인간은 누구나 나약한 것을. 다리에 총상을 입고 미약해질대로 약해진 오빠는 재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고 있으면서도 사별한 전처의 친정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피난을 가는 모습은 어쩔 수 없는 환경이 가져다준 그 끔찍함에 그리고 인간의 뻔뻔스러움에 무척 경악스러웠다. 그런 오빠가 죽은 후 장례를 치르는 가족을 그린 장면은 더할 나위 없이 비참했다. 

그는 죽은 게 아니라 팔 개월 동안 서서히 사라져 간 것이었다. 우리는 아무도 그의 임종을 못 본 걸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 스스로 썩어감으로써 우리하고 정을 떼려는 오빠가 싫고 무서웠다. ... 환장을 하게 더웠다. 우리는 사람도 아니야, 생지옥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 믿지도 않는 주문을 외우듯이 문득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 우리는 둘러앉아, 사랑하는 가족이 숨 끊어진 지 하루도 되기 전에 단지 썩을 것을 염려하여 내다 버린 인간들답게, 팥죽을 단지 쉴까 봐 아귀아귀 먹기 시작했다.

오빠의 죽음도 비참하지만 남의 이들의 삶 또한 너무나 비참하다. 먹을 것이 없자 주인공과 올케언니는 도둑질에 나섰다. 

올케는 엉덩방아를 찧은 자리에서 주저앉아 발목을 틀어쥐고 일어나지를 않았따. 나는 더럭 겁이 났다. 엎드려서 그녀의 발목을 주무르지 시작했다. 정성을 다해 주무르면서 입으로는 연방 '내 손은 약손'이라는 소리를 웅얼대고 있었다. ... 늙은이도 아니고 스무 살밖에 안 된 계집애가 내 손은 약손이라니. 그러나 이윽고 나는 내 목덜미가 흥건히 젖어 오는 걸 느꼈따. 그녀는 울고 있었다. 소리가 없어서 더욱 태산 같은 울음이었다. 

남의 집 담을 넘다가 올케가 다치게 되었는데 고작 스무 살짜리 그것도 서울대 학생이 한다는 일이 내 손은 약손이라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귀엽다. 한편으로 그 비참한 상황에 올케는 소리 없는 하지만 태산 같은 울음을 터뜨린다. 이 짧은 장면에서 정말 복잡한 심리를 정말 잘 표현한 것 같아 감탄했다. 하지만 올케는 남편이 죽고 장사를 하기 위해 더욱 비참한 일을 한다. 그 와중에 주인공의 엄마, 즉 시어머니와 오해에서 비롯된 갈등으로 폭발하는 올케의 모습은 너무나 안쓰럽기만 하다. 

산다는 것은 참으로 복잡한 일 같다. 이처럼 너무나도 모질고 피폐하기만 한 현실 속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서 비참함을 빼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또 인간미가 있다.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보여주듯 이 비참한 현실에서도 부단히 살아 내려 노력하는 이 가족을 도와주는 이들이 있었다. 올케와 둘이 피난을 가다가 아이가 많이 아프자 쉴 곳을 내어주고 호두 기름을 짜 주었던 분이 있었고, 주인공이 갖은 짜증과 그 와중에도 도도한 척 굴어댈 때에도 묵묵히 참고 돌봐주던 근숙 언니가 있었다. 주인공은 언니의 도움으로 미군 부대 PX에 취직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서 박수근 화백을 만났고 그 인연이 이어져 이 책들이 나오기까지 했으니 보통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없었다면 이 가족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누군가를 만나 또 다른 종류의 도움을 받아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박완서라는 작가를 만나볼 수 있었을까? 결국 삶이란 이 모든 개연성들이 촘촘하게 이어져 인생을 만드는 것인가. 그럼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나일까 이런 인생에 촘촘히 이어져 있는 개연성일까. 나의 근숙이 언니는 누구이며 호두 기름을 기꺼이 짜주었던 이는 누구일까. 

박완서 선생님은 감정을 참 잘 잡아내고 그 감정을 참 맛깔나게 잘 그려내는데 탁월하신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어쩜 이런 생각을 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들이 있었는데 그 대목들이 결코 화려하거나 입담이 너무나 뛰어나서라기 보다는 그 세세한 감정을 날 것 그대로 잘 표현하셨기 때문이었다. 나라면 화가 났다, 짜증이 났다, 비참했다 뭐 그런 감정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속으로 생각했을 테고 심지어 나조차도 그 감정의 구석구석을 면밀히 살피지 못한다면 선생님은 어떤 감정이 왜 어떻게 들었는지 적절한 비유와 함께 과하지 않게 잘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구절이 목련을 보고 느낀 감정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와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아 느껴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매년 피는 목련을 보고 목련이구나.. 예쁘다.. 곧 봄이 오겠지? 라고 매년 똑같은 생각을 하는 나와는 너무나 다른 생각이 펼쳐졌다. 

목련 나무였다. 아직은 단단한 겉껍질이 부드러워 보일 정도의 변화였지만 이 나무가 봄기운만 느꼈다 하면 얼마나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르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미친 듯한 개화를 보지 않아도 본 듯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머, 얘가 미쳤나 봐, 하는 비명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실은 나무를 의인화한 게 아니라 내가 나무가 된 거였다. 내가 나무가 되어 긴긴 겨울잠에서 눈뜨면서 바라본, 너무나 참혹한 인간이 저지른 미친 짓에 대한 경악의 소리였다. 

아무튼 먼저 글에 잠시 썼지만 이 책을 읽고 나는 너무나 아팠다. 주인공은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쓴다. 많은 부분이 나와 비교되면서 읽혔던 책이었고 나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 왜 그런 것인지 나는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야 했던 책이었다. 이 책은 나에게 너무나 뜻깊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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