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고양이 자매에게 _ 매일 길고양이를 돌보는 그녀의 작품들
한국의 시는 남다르게 성장했다. 불안한 근대와 일제 치하의 저항과 좌절을 거름 삼아 한자에서 한글로 전환했고 일본어와 섞였다. 그리고 남의 나라 군인이 지배하고 군인들이 점거한 국가에서 소설을 쓰고 시를 썼다. 정치에 납작 엎드려 복종하는 몇몇 작가를 제외하면 적극적이거나 소극적이거나 한국의 정치 상황과 연결되지 않은 작가는 드물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옆에서 봤고, 산업사회로 달려가는 시대 속에서 노동자를 주목한 사람도 있고, 주변의 변두리 풍경과 변하는 사람들의 정서에 깊이 빠져든 사람들도 있다.
한국 문학은 21세기 오기까지 오로지 나에게 전면적으로 빠져들기 어려운 자기 검열의 시대였다. 해방 이후 태어난 한글세대들이 쓰는 시를 읽으며 문학과 가까이 지낸 청춘기였다. 영향을 준 분들이 한분 두 분 세상에서의 소풍을 끝내고 계시다. 젊은 시인들은 시대 상황에 짓눌리지 시를 쓴다. (그렇다고 정치와 상관없을 수는 없다. 세사에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어디 있나) 노인으로 접어든 시인들의 시에 자꾸만 눈이 간다. 어떤 맘으로 과정을 맞이했을까.
그러면서 아주아주 오래전 처음 시를 써서 품평회를 하던 날이 떠오른다. 거대 담론을 다루거나 묵직하지 않으면 시로 인정해주지 않는 시창작 동인회 선배들에게 집안의 좌익 역사를 꺼내서 시로 써서 던진 날. 표현은 부족하지만 대찬 후배하나 들어왔다며 좋다고 술을 거나하게 먹던 남자선배들이 조금 우스웠다. 내가 자란 대자연의 아름담을 노래했다면 역시 여자애들 시는 그렇지 이런 품평이나 날릴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을 우습게 보기 위해 할아버지 이야기를 판 나도 뭐 별다르지는 않았다.
돌아보면 내가 사랑하는 작은 풀잎에 관한 시를 쓰고 길가의 작은 꽃을 묘사하는 것이 허세를 부리는 것보다 나았지 않았나 가끔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시인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황인숙 시인이다.
길냥이를 돌보는 황인숙 시인은 58년생으로 환갑을 넘겼다. 84년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시로 등장했을 때만 해도 길의 고양이를 보며 시를 쓰게 될 것이라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텐데, 21세기에 쓴 시에 고양이가 종종 발자국을 남기고 아예 고양이들이 주인공이 소설과 산문이 줄줄이다. 집에 있는 두어 권 시 속에서도 일단 고양이를 다룬 시어 찾기를 한다.
'아무도 없어도 될 그날까지
고양이들아, 너희 핏줄 속 명랑함을 잃지 말렴!' (길고양이 밥 주기 중에서)
'싸악, 싸악, 싸악, 싹싹싹
자루 긴 빗자루로
자동차 밑 한 움큼 고양이밥을
하수구에 쓸어버린다
"내가 밥 주지 말라꼬 벌써 멫 번이나 말했나?"
동네 부녀회장이라는 이의 서슬이
땡볕 아래 퍼렇다.' (칠월의 또 하루 증에서)
'고양이한텐
바깥이고 안이고
들여다보고 내다보고
그런 생각 없겠지
바라볼 뿐' (고양이가 있는 풍경 사진 중에서)
'살아내느라 애썼다
미안하고 고맙고 대견하다
쨍한 햇빛 아래서는 눈을 바로 못 뜨면서도 생글생글 웃던
생기발랄 애교 만점 삼색 고양이
다시는 볼 수 없네' (겨울 이야기 중에서 )
2022년 출간한 '내 삶의 예쁜 종아리'는 육십대를 맞이한 시인의 일상의 곳곳에 고양이의 흔적이 담겼다. 굳이 그녀가 고양이를 보려고 응시하거나 데려오지 않아도 그냥 고양이가 있는 일상이다. 심지어 읽다 보면 이것은 고양이가 왔다 간 족적을 표현한 시어가 담기지 않아도 고양이구나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여전히 사람들과 고양이 밥을 주며 충돌하고 싸우고 측은해하는 시인의 시선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녀는 대차게 일상을 마주하고 하염없이 슬픔에 젖는다. 화를 내고 돌아서서 화를 받은 대상에게 연민을 느끼는 그녀의 정서는 나를 보는 것 같아 빨려 들어간다.
슬픈 열대
어제도 그제도
고양이 밥 주지 말라고 시비 걸던 남자 노인
오늘도 난닝구 바람으로 나와 있네
나도 모르게 고개 치켜들고
그쪽 하늘 향해 미친 듯 소리 질렀네
"루저들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
루저! 루저! 루저! 루저!
루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구!"
내 서슬에 지나가던 청년 흠칫 쳐다보고
노인은 꼬리를 감췄네
세상에 내가 이런 인간이구나!
칠십 줄에 가족 없이, 에어컨도 없이
하숙방에 사는 사람한테
아, 내가, 내 입에서!
루저가 루저한테 생채기 주고받는
열대의 밤
2006~7년부터 지금까지 해방촌 일대의 밤에 사료를 갖고 나가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준다. 그리고 도시의 속살을 날 것대로 보며 시를 쓴다. 고양이를 주제로 소설 '도둑괭이 공주'를 썼고 '해방촌 고양이' 산문집도 있다.
고양이 관련 책을 우리 아이들 만나고 한꺼번에 너무 많이 보고 샀다. 친구들이 이제 그만하지 할 정도로 공부하기 위한 책들이었다. 주로 일본인들, 의사들이 쓴 행동과 의료 관련 책이거나 고양이들의 생태와 인문학, 동일본 지진 등 인간이 만든 재앙 속에서 살아남은 고양이에 관한 책, 산업으로 분류한 고양이 사료 등 그 이면을 추적하고 고발한 책들, 귀여운 고양이와의 일상을 다룬 만화책. 지금은 고양이 관련 서적을 사는 에너지는 약간 소강상태라고 할까.
4~5년 동안 구입한 책은 초보 집사를 만나 한두 권씩 나눴다. 종이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을 집에 들일 때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이후 돌볼 때 큰 도움이 된다. 응급처치나 질환, 몸 상태와 반응에 따른 의심되는 병을 보는 책은 중요한 책이라 늘 손 닿는데 둔다.
이제 아이들이 10살이 되니 조금 무지에서는 벗어났고 노년으로 가는 고양이들이 겪는 질환도 예측하고 있어서 그에 맞게 사료를 바꾸고 밥 먹는 패턴도 자연스럽게 조정해서 돌보고 있다. 길에서 왔으니 면역이 좋지는 않다. 그나마 애기 때 구조되어 돌봄을 받아 지금까지 크게 아픈 적 없지만 선천적으로 약한 구석은 피할 길이 없었다. 오면 올 것을 받을 준비를 하는 하루이고 한해이다.
갑자기 황인숙 시인의 얘기를 한 이유는 그녀의 다른 시집들, 산문집을 읽고 싶어졌다. 그녀가 아마 쉰이 다되어서 길고양이 밥을 주기 시작했을 것이고 십여 년을 보낸 노년의 시선에 담긴 시들이 '내 삶의 예쁜 종아리'이다.
길 고양이를 돌볼 무렵의 산문집이 부쩍 읽고 싶어졌다. 그녀와 고양이들이 엮인 일상이 어떤 언어로 기록되었을지. 시인의 산문을 읽으면 시와 다른 영역의 글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봐서 시는 시로만 읽자고 결심해서 산문집 구입을 미뤘다. 좋아하는 시인의 산문을 읽고 아이고 선생님을 몇 번 했던 터라..
어제 무심결에 그녀의 시집을 보고 몇 개의 기사를 찾아보다가 산문집 '해방촌 고양이'는 고양이에 기대어 읽을 수 있겠구나 싶다. 온전히 그녀가 쓴 시와 문장들 컬렉션을 올해 안에 완성해야지 목표를 세웠다. 한 권씩 한 권씩 아껴서 만나보기로. 그 시간 동안 우리 아띠와 루카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혼자만 말하는 대화를 할 것이다.
"얘들아, 이렇게 표현했네. 고양이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시인이야."
아이들이 귀찮아하는데도 사정사정해서 사진 한잔 받아냈다.
(2024년 7월 29일 내가 뭘 읽던 별 관심 없지만 받아는 주는 고양이들과)
PS : 황인숙 시인의 등단 시는 부록으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얼룩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둥글릴 줄도 아는
작은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나는 툇마루에서 졸지 않으리라.
사기그릇의 우유도 핥지 않으리라.
기시덤불 속을 누벼누벼
너른 들판으로 나가리라.
거기서 들쥐와 뛰어 놀리라.
배가 고프면 살금살금
참새떼를 덮치리라.
그들은 놀라 후다닥 달아나겠지.
아하하하
폴짝폴짝 뒤따르리라.
꼬마 참새는 잡지 않으리라.
할딱거리는 고놈을 앞발로 툭 건드려
놀래주기만 하리라.
그리고 곧장 내달아
제일 큰 참새를 잡으리라.
이윽고 해는 기울어
바람은 스산해지겠지.
들쥐도 참새도 가버리고
어두운 벌판에 홀로 남겠지.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어둠을 핥으며 낟가리를 찾으리라.
그 속은 아늑하고 짚단 냄새 훈훈하겠지.
훌쩍 뛰어올라 깊이 웅크리리라.
내 잠자리는 달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겠지.
혹은 거센 바람과 함께 찬 비가
빈 벌판을 쏘다닐지도 모르지.
그래도 난 털끝 하나 적시지 않을 걸.
나는 꿈을 꾸리라.
놓친 참새를 좇아
밝은 들판을 내닫는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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