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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다른 너와 나의 영역

나의 친애하는 고양이자매에게 _ 같이 있지만 따로 앉은 우리

by 마담 삐삐 Aug 05. 2024

슬픔과 좌절, 불안과 걱정을 안고 서울역에 도착 한 날은 7월 말 경이었고 더웠다. 나이키 스포츠백에 입을 옷가지 몇 개만 넣고, 나머지는 두어 개 박스로 미리 부쳐 둔 상태였다. 서울역에 내려 1호선 전철을 타고 시청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 이대전철역에 내렸다. 그날의 기분은 아직도 하나의 단어로 설명을 못하겠다. 정신없이 뭔가를 선택하고 도망치듯 떠나온 벼락같은 변화의 순간. 앞에도 없었고 뒤에도 없었다.

기댈 곳도 없고 도와 준다는 사람도 없는데, 뭘 하지 계획도 없이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도착한 서울. 희한하게 전철 좌석에 앉아서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고향 마을에서는 한걸음 가면 동네 어르신들이 있고, 경주 시내로 나와도 아버지 친구나 혹은 작은 도심 안에서 아는 사람 마주칠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지하철 1호선 역에 가득 찬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완전한 익명이 되었다.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의 보이지 않는 역영이 생겼다.

고향집에서는 언제든 침범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가족들이 있기에 내 영역이 평생 없었고, 인근 중소도시에 이주한다 해도 결국 아는 사람들에게 기대어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 완전한 나만의 영역이 생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세상 다시없을 불안정한 상태로 서울에 왔고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괜찮니, 어떻게 지내?'라는 말에 '저는 괜찮아요'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묘하게 내려앉는 숨.

영역, 정서적 바운더리, 경계, 거리 두기를 제대로 느낀 서울의 첫날이었다.

그녀들은 항상 가까이 있지만 자기 영역에 있다그녀들은 항상 가까이 있지만 자기 영역에 있다


둘이 있다 셋이 있다 혼자 있다 다시 셋이 되었다

두 사람이 살고, 세 사람이 살고, 혼자되었다가 고양이 둘이 들어왔다.

나의 생활에는 완전히 혼자만 산 시간이 길지 않다. 서울에서의 첫 5~6년은 한방에서 우르르 비루한 청춘들이 모여서 살았고 나름 서로 의지하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독립하여 혼자 방을 꾸릴 때 홀가분함은 최고였다. 나중에 첫출발을 시작하는 청춘에게 방 한 칸을 내어주기도 했고 이래저래 한 공간에서 여러 영역이 교차하는 삶이었다.

고양이 자매와 살면서 다시 영역을 탐색하는 중이다. 애기 때에는 나의 일하는 공간에서 지냈기 때문에 낮에는 주로 천정이나 빈 의자, 사무실에서 생활했고, 사람들이 다 떠난 밤은 그녀들의 세상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들락날락하니 숨을 수 있는 공간을 곳곳에 두었다.

집으로 데리고 올 때에 캣타워를 처음 사고 여러 가지 물품을 구입해서 드디어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온 집을 배치했다. 고양이들은 청소년기까지는 같이 엉켜서 자고 붙어있지만 성묘가 되면 자기 공간을 분리한다. 예를 들면 오늘은 창가 캣타워가 아띠의 자리로 정해서 누워있다면 루카는 조금 떨어진 책상 위 선반에 눕는다. 가끔 내 옆의 스크래쳐를 쟁탈하기 위해 싸우기도 하면서 먼저 선점해 있으면 다른 영역을 찾는다. 각자 선호하는 영역이 있어서 주로 있는 자리가 있지만 바뀌는 날도 종종 있다. 이렇게 성묘들은 매일 자기 영역을 정하고 매 순간 스스로 안전하게 있을 자리를 찾는다.

침대의 각자 활용. 고양이 사는 집은 항시 침대는 퀸으로.침대의 각자 활용. 고양이 사는 집은 항시 침대는 퀸으로.


나도 살아야지, 퀸 침대의 호사

침대는 슈퍼슬림에서 퀸으로 바꿨다. 침대에서 고양이들의 영역을 제대로 마주하였다.

내가 눕는 곳은 아이들의 담벼락 같은 경계선이다. 나를 중심으로 주변이 그들의 영역인데 두 아이가 같이 붙어있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나는 누운 자세 그대로 혹은 아이들 위치에 맞춰 이상한 자세로 잤다. 잠자리가 좁아지고 허리가 아팠다. 너도 살고 나도 살자며 퀸으로 바꾸고 나서야 겨우 뒤척거리며 편히 누웠다.

우리 집 침대는 그냥 보면 어수선하다. 그러나 고양이의 눈으로 보면 영역이 6개 이상인 훌륭한 쉼터이다. 내 이불, 가장자리의 둥근 방석, 작은 이불 두 개, 나무늘보 인형, 베개. 내 이불과 베개만 내 것이고 나머지는 아이들을 위해 영역을 만들어두었다. 바닥에 A4용지가 있으면 그 위에 앉는 것이 고양이어서 잘 때 맘 편히 너의 영역을 정해서 자라고 정리 잘 된 깔끔한 잠자리를 포기하였다.

참 드문 투샷, 4살 무렵이었으니 젊었다참 드문 투샷, 4살 무렵이었으니 젊었다


아쉬움과 안쓰러움 현재로 갖고 오지 않기

같이 태어나고 같이 자라서인지 영역이나 질투심으로 서로를 심하게 공격하지 않고 나름 평화롭게 선택하고 포기하는 아이들이다. 루카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아띠가 있을 때 포기하는 표정이 있다. 처음에는 개입을 해서 같이 있게 해주고 싶어서 인간의 욕심을 부렸다.

매일 바뀌는 공간에서의 서열, 먼저 찜하거나 버티는 고양이가 압승하는 순간은 그냥 모른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만의 룰이 있고 지켜야 할 원칙이 있는데 인간의 마음으로 개입하면 둘 사이가 안 좋아질 수 있다.

루카가 다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아띠가 냐앙하고 포기하고 갈 것이기에. 그리고 그들이 갈만한 또 다른 영역이 집 곳곳에 있어서 괜한 안쓰러움을 내 맘에 두지 않는다. 옆에 앉은 녀석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고 으이구 드디어 왔어하고 씩 웃는다.

원하는 영역을 갖지 못한 녀석에게 장난감 한번 훅훅 휘둘러주거나 간식 주면 어느새 신난다. 과거의 아쉬움과 서운함을 현재로 갖고 오지 않는 고양이들의 정서를 배우는 나날이다.

열 살이 되었지만 가끔의 투닥투닥은 한 편의 영화. 여기서 지금 지고 있는 고양이는 누굴까?(좌 아띠, 우 루카)열 살이 되었지만 가끔의 투닥투닥은 한 편의 영화. 여기서 지금 지고 있는 고양이는 누굴까?(좌 아띠, 우 루카)


(2024년 8월 5일. 폭염특보가 연일, 더운 날 잘 버티자 얘들아)



보너스 영상, 더없이 좋은 평화로운 날





#catsisters #cat #아띠와루카 #반려동물 #고양이언니 #고양이와함께사는집 #고양이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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