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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삐삐 Aug 19. 2024

십 년 동안 목욕 안 한, 아니 못한

친애하는 나의 고양이 자매에게 _ 10년째 목욕은 없다

한 번씩 침 꿀꺽 크게 삼키고 시도해 볼까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올라오게 만드는 영상과 사진이 있다. 결과가 얼마나 좋을지 상상하지 않아도 짐작한다. 물끄러미 아띠와 루카를 보며 우리 다시 해볼까 십 년 만에 물어본다. 평온한 아이 키스에 죄책감이 밀려오며 에비에비야 하며 마음을 접는다.

고양이 둘을 돌보며 수도 없이 마음으로 해볼까 시도해 보다 포기한 것.

그것은! 

바로 고양이들의 목욕이다.


철저한 사전 조사와 준비를 끝내고

아띠, 루카 고양이 자매가 10년 동안 목욕을 딱 한번 했다. 한국고양이보호협회(이하 고보협)에서 애기들이 1달 좀 넘었을 때 구조하여 임시보호를 하였다. 그때 고보협 회원이자 구조한 임보 엄마가 처음 내게 아이들을 보내려 데리고 오는 날 아침 잘 보이라고 깨끗하게 씻었다. 내가 처음 안은 두 고양이는 보송보송 보들보들한 털이 인상적이었는데 목욕 덕분이었을 것이다.

공간에 적응하고 서로 익숙해지는 기간에 목욕으로 좋지 않은 기억부터 주고 싶지 않았기에 몇 달간은 목욕을 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곧 불임 수술이 이어져 어영부영 8개월령이 넘어갔다. 12월, 1월이 되어 추워지기 전에 아이들을 목욕시키기로 결심했다.


고양이 커뮤니티에서 목욕 대비 갖춰야 할 복장과 준비상황을 자료 조사했다. 

"목욕시키다 죽지 않으려면 고무장갑과 앞치마, 긴 옷을 반드시 입어야 하고 내가 같이 목욕을 한다는 마음으로 임해라." 끄덕. 고무장갑과 큰 대야를 준비해 따뜻한 물을 받았다. 저자극 고양이용 샴푸도 준비하고 완벽해 속으로 이제 되었다 고양이를 데리러 가자고 나왔다. 눈치 빠른 아띠는 나의 심상치 않은 복장과 기세를 의심하며 이미 구석으로 깊게 숨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언니가 놀려고 그러나 아닌가 의심하지만 일단은 호기심이 먼저인 루카는 나를 경계심으로 쳐다봤다. 이때다 루카를 답작 들어서 화장실로...

그 무렵의 우리 루카


활어 횟집의 광어가 된 고양이

결과는. 예상했겠지만 나의 참패였다. 나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상황은 이랬다. 고양이를 데리고 목욕탕에 들어가서 대야에 넣으려는 순간 한 마리가 광어가 파닥거리는 순간을 목격했다. 싱싱한 광어의 파닥 거림. 루카는 발과 털이 물에 조금씩 닿는 순간마다 파닥거렸다. 그래도 조금 더 시도해 보려고 물에 가까이 대어보았으나 결과는 광어의 파닥 거림으로 돌아왔다.

순간 머리에 스쳐가는 문장. '와! 이러다 너도 죽고 나도 죽겠다.' 조심스럽게 루카를 방에 놔주었다. 공간을 미친 듯이 지그재그로 질주하더니 안전해 보이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젖은 곳을 핥았다. 미안한 마음에 츄르를 꺼내어서 다가갔으나 루카는 불신에 가득 찬 눈으로 움찔 피했다. 그렇지만 녀석은 츄르 냄새에 항복, 그새 골골 거리며 먹었고 아띠도 슬그머니 나와서 츄르 먹기에 나섰다.

목욕을 시키지 못했건만 내 몰골은 목욕 다섯 번은 시킨 사람처럼 온몸은 다 젖고 지쳤다. 당연히 파닥거리는 발톱에 고무장갑도 찢어졌다. 주섬주섬 치우고 정리하고 옷도 갈아입고 커피를 한잔 먹고 하, 이제 고양이를 목욕시키지 않고 어떻게 털관리를 해야 하는지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도미노처럼 이어진 목욕 안 시켜 배틀

목욕 안 시켜도 되는가의 질문이 남아서 한국 최대 고양이 커뮤니티 '고양이라서 다행이야'에 목욕 관련 검색을 했다. 그날의 감탄과 웃음. 고양이 집사들의 자기 깨달음과 서로를 의지하는 마음까지 느낀 시간이었다. 나와 비슷한 초보 집사가 고양이 목욕 못 시키겠는데 이래도 될까, 집사인데 미안하고 죄책감이 올라오는데 시키기가 어렵다 이런 이야기가 올라와 있었다. 며칠 전 나의 상황이 겹쳐져 공감 100%였다.

실패했지만 별탈없이 첫눈을 본 아띠와 루카

댓글과 대댓글이 릴레이처럼, 도미노처럼 좌르르.

"괜찮습니다. 동물 목욕은 안 시키는 것이 좋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입니다. 저는 1년 동안 안 시켰어요."

"그루밍으로 자기 보호를 합니다. 고양이들은 걱정 마세요. 16개월 차 목욕 안 했어요."

"저는 3년째 목욕 안 시켰는데 전혀 문제없습니다. 떡진다 싶음 따뜻한 물에 담근 수건으로 닦아주세요."

"처음에는 고민 많이 하는데, 걱정 마세요. 저는 4년입니다."

"저는 5년..."

질문한 사람이 이 즈음 위로 된다면 5년씩이 나요? 이런 답을 다시 달았다.

그리고 이어진 한 문장, 아마 댓글을 읽는 모두가 숙연해졌을 것이다.

"10년 동안 한 번도 목욕을 시키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우수수수 와, 무릎을 꿇는다 / 존경한다 / 진정한 위로이다 등 찬사가 이어졌다.

당시 8개월 차 초보 집사인 나는 10년 동안 목욕을 시키지 않았다는 그분의 한 문장이 고양이 전문가의 어떤 전문적 조언보다 큰 힘과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10년 후 나도 그분과 같은 10년째 목욕을 한 번도 안 시킨 사람이 되었다.



고양이 목욕, 그게 뭐지

이 글을 쓰려고 준비하며 다시 한번 목욕 관련 검색을 했더니 나와 같은 쫄보 집사들이 고양이 목욕에 실패하고 질문을 하고 있었다. 어김없이 몇 년 목욕 안 시켰나 배틀이 이어지는 고양이 커뮤니티의 풍광.

고양이 목욕, 나는 모른다. 그게 뭔가. 시켜본 적이 없으니까. 

지난 10년 동안 내가 한 거라곤 따뜻한 수건으로 한 달에 한번 정도 닦아주는 것뿐이다. 그 조차도 두 녀석이 질겁을 한다. 축축한 털을 핥으며 나를 째려본다. 그래도 요렇게 하면 털이 보스스스 살아난다. 루카는 건조하면 비듬이 올라와 검은 털 사이에 잘 보여서 타월 목욕을 꼭 시킨다. 어휴 우리 비듬 공주~ 이렇게 놀리면 루카는 항의하듯 타월을 피하려고 야옹야옹한다.

가끔 고양이들 목욕하고 보슬보슬한 모습을 보면 나도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또 올라온다.

얼마나 좋을까, 누가? 내가. 고양이들은 너무 싫겠지만! 


(2024년 8월 19일 활어가 되어 파닥거리던 그날의 루카는 지금 코 잔다.)



매일 대부분의 시간을 미용에 힘쓰는 고양이 자매, 아띠와 루카



#아띠와루카 #고양이자매 #catsitsers #cat #고양이목욕 #고양이목욕안해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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