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고양이 자매에게 _ 오늘만 사는 내가 미래를 생각하다
9월 더위 속 일상 루틴이 깨지고 추석 연휴와 몰아친 일들 속에서 후욱 나를 놓았다. 긴 여름과 더운 여름밤의 열기에 지칠 대로 지쳤다. 나의 얄팍한 부지런함은 더위와 짜증, 이른 갱년기 증상이 더해져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정점은!! 디스크 꽝꽝꽝. 오래간만에 발동한 나의 허리 통증은 일정 시간 이상 책상에 앉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핑계 삼아 쉬는 김에 좀 더... (변명 변명 변명)
훨씬 더 건강하고 젊은 시기의 나는 아이들 대상의 예술교육 기획을 내려놓고 다른 일을 하기 위해 떠났다. 그때 마음은 이랬다. '지금은 다양한 영역의 문화기획과 지역의 삶을 경험할 거야. 그렇지만 곧 다시 아이들과 교육 공간으로 돌아갈 거야.'
'곧'은 하염없이 시간이 흘렀고 우연히 아이들의 공간에 머무를 기회가 생겼다. 사회복지사 자격증 마무리를 위해 2년 전 아이들 교육 공간에서 두 달간 실습을 했다. 끝나고 한참 동안 허리가 심하게 아팠다. 언젠가는 아이들의 공간으로 돌아가리라는 마음은 불가능한 미래임을 알았다.
여덟 살, 아홉 살 아이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꼬맹이들처럼 바닥에 앉는 눈높이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디스크 환자는 그 자세를 유지할 수가 없다. 내가 오래전 다짐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다해도 더 이상 몸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깊이 탄식을 했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대명제가 뒤통수를 쳤다.
당시 아이들과의 교육보다 내 삶을 더 귀하게 여겼고 그 선택을 쫓아 지금까지 살았다. 열심히. 다만 마음의 부채가 남아 있었고 시간의 흐름과 몸의 변화가 더 이상 젊은 시간이 품고 있던 마지막 미련을 떨쳐내게 도왔다. 그때의 선택도 소중한 것이고 열심히 살았으니 미련은 놓고 젊은 열정과 측은지심은 기억으로 갖고 놓아주자고 마음을 정리했다.
자, 이런 연유로 디스크 환자로 판명난 나는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단순반복 근력 운동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하고 있다. 얼마나 싫은지 나도 모르게 기묘한 꾀를 내서 안 하는 날도 있지만 스스로가 생각해도 기특할 정도로 꾹 참고 한다. 누워서도 골반이 틀어지면 허리 통증이 같이 온다 해서 스트레칭도 매일매일 하고, 발목이 약하면 똑바로 서있기 어렵다 하니 발목 운동을 한다. 디스크 환자들이 꼭 해야 하는 운동이 있는데 요것은 괜찮다. 진짜! 하루 1시간 좋은 자세로 걷는 것이다. 매일 동네의 풍경을 보며 걷는 것은 좋아서 날이 더운 여름을 빼면 잘 지키는 편이다. 자전거 대신 걷기, 버스 대신 걷기, 최대한 많이 걷기.
이 모든 것, 입술 꽉 깨물고 운동을 하는 이유는! 나 자신을 위해서?
No, No. 결과적으로는 나를 위한 것이지만 원인 고양이들 때문이다. 3년 전 처음 허리가 아파서 사진을 찍고 디스크 확인한 날에 이러다가 애들 아플 때 내가 제대로 돌보지 못할 것 같다는 위기감이 왔다.
기본적으로 고양이와 예닐곱 아이들의 상태는 비슷하다. 먹는 것, 배변하는 것, 놀잇감 등 다 바닥에 있다. 응급 순간에는 6kg이 넘는 고양이를 들고 움직여야 한다.(케이지 무게까지 하면 7~8kg) 코어와 다르가 튼튼해야 잠깐씩 앉는 노동을 계속하고 급할 때는 뛸 수 있다.
고양이들의 보호자가 될 때 다짐한 말이 있다. 루카의 눈이 퉁퉁 부어 처음으로 병원을 울면서 뛰어갔다 돌아왔을 때, 아띠가 췌장염을 앓고 회복한 때, 아띠가 첫 발치 수술을 한 날. 매번 이 주문을 아이들에게 하고, 나에게 맹세를 했다.
"얘들아, 너희들이 무지개다리 건널 때까지 언니는 옆에 있을 거야. 걱정 마."
나에게는 "너는 아프면 안 된다. 잊지 마! 아이들이 떠나기 전까지 크게 아프고 우울감에 빠지거나, 인생이 망하면 안 되니까 잘 살자. 일단!! 건강 지키기 알겠어?!"
술 좋아하고 가끔 무한 게으르고, 때때로 우울감이 찾아오면 냅다 빠지곤 하는 나에게 인생 명령을 내린 것이다.
_ 계속 슬프다가 우울해지는 거 금지! 동물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하니까.
_ 아픈 거 금지! 애들 돌봐야 하니까.
_ 돈 없는 거 금지! 애들 돌보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그렇다. 고양이들은 평생 건강을 돌보지 않고 오늘 하루만 산다는 나에게 미래를 선물했다.
선배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너의 10년 후, 아니 2~3년 후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면, 비아냥 거리며 대거리를 하던 사람이었다.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것이 인생인데 무슨 미래씩이나 고민하냐고. 난 하루를 최선을 살 거야. 당연히 그래야 하니까, 그것만이 의미가 있으니까 그렇게 살 거야, 그렇지만 내일은 별로 생각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물론 지금도 이 생각은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미래를 위해서 오늘을 미룰 생각이 없고 시간은 오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유일하게 나이 들면 애들하고 노는 걸 일로 만들 거야란 미래를 갖고 있었는데, 미래로 미뤘더니 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지 않는가. 미루면 안 된다!)
과거는 기억이며 주관적인 이미지이고 미래는 오지 않은 상상일 뿐이다. 내가 알 수 있고 느끼는 감각은 오로지 오늘 밖에 없다. 어찌 보면 비관적인 시간관을 갖고 있는 부정적인 사람이 내일과 몇 년 뒤를 미리 준비하는 마음을 장착하게 만든 존재는 우리 고양이 아띠와 루카다. 통장에 돈을 모은다는 개념이 없는 내가 종종 돈을 모아두는 이유도 우리 고양이들 위급할 때 쓸 비용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 미래 유효기간은 우리 고양이들의 생존 시간이다. 열 살 넘은 고양이와 산다는 것은 매일 병원이 코앞에 있다고 보면 된다. 당장 내일 아띠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야 한다. 가면 전신마취와 수술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이 걱정은 되지만 마음이 불안으로 날뛰지 않는다. 그간 2~3년에 한 번씩 아이들은 아팠고 그때마다 잘 대처했고 공부도 더불어 하였다. 이제 나보다 더 빨리 늙는 아이들의 상태를 잘 받기 위해서 나의 미래를 준비하고 몸과 마음을 더 건강하게 유지해야 한다.
요즘이 가장 건강하고 건전하며 다른 존재를 위해 사는 유일한 시간이다. 가끔 혼자 키득키득 웃는 것도 사람이 이렇게까지 다른 존재를 사랑하는구나 싶어 굉장히 놀랍고 매일매일 놀려먹고 싶다.
수술을 앞두고 낡은 케이지를 교체하고 곧 병원 갈 태세로 방바닥에 새로운 가방을 늘어놨다. 아띠가 어떤 것을 더 좋아하는지 살펴보고 내일은 답삭 담아서 병원에 가야 한다. 측은하고 미안하지만, 앞으로 더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이빨을 뽑자며 아띠는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중얼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다른 종과의 십 년 동거. 우리 사이의 다양한 소통과 어쩔 수 없이 내가 선택하고 움직여야 하는 상황의 미안함이 공존한다. 아이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공포를 주지만, 너무나 다행인 것은 고양이의 뇌구조상 뒤끝이 없다.
힘든 것은 잊고 오늘을 사는 진정한 시간의 지배자, 고양이들의 남은 생을 위해 보호자인 언니는 오히려 내일과 미래를 생각하며 하루를 산다.
세상의 모든 집사들이여, 오늘을 열심히 살고 내일도 열심히 살자. 고양이들을 위해!
(2024년 9월 23일. 드디어 더위가 떠났다. 다시 글을 쓴다. 병원 가기 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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