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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삐삐 Sep 09. 2024

하찮은 연주는 괴롭다,  고양이나 사람이나

친애하는 나의 고양이 자매에게 _ 미안하다 사랑한다

누구나 악기 하나쯤 연주하는 거 좋잖아

오늘은 '누구나 악기 하나쯤 연주할 수 있다'는 명제이자 혹은 사회의 과제 같은 예술적 욕망에 관한 얘기로 시작한다.

나의 큰언니가 대학 입학하자마자 우리 집 옆 시계방 아저씨에게 기타를 빌려왔다. 당시 난 중학생이었다. 큰언니는 음감이 좋고 노래도 잘하고 4남매 중 가장 오래 피아노를 배워 악보도 잘 봤다. 기타 치며 노래하는 언니가 너무 부러워 어린 맘에 나도 저 기타를 쳐보고 싶었다. 큰언니가 늦게 집에 오는 날은 언니 몰래 기타를 책을 보면서 익혔다. 겨우 기본 코드를 보고 칠 수 있을 무렵 고등학교 진학 때문에 기타와 헤어졌다. 지금 형부가 된 언니의 남자 친구에게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본인의 기타를 빌려주었다. 와~ 아주 띄엄띄엄 기타를 쳐보다가 대학 입시를 위해 다 미뤄두고 죽은 듯이 마지막 1년을 보냈다.

나의 기타 실력은 이렇게 정식으로 배운 적 없는 코드 중심의 스트로크 두어 개 뚱땅거리며 하찮다. 대학에 가서도 역시 가끔 노래모임이나 노래패 동호회에 놀러 가 코드 보면서 스스로도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로 술 취해서 부르는 정도였다.

성인이 되어서 드디어 나의 기타를 가졌다. 지금도 방구석에 있다가 가끔 술 취한 나에게 끌려 나오는 너무나 예쁜 내 기타. 소리도 좋고 모양도 예쁘고 심지어 꽤 비싸고 좋은 픽업(전기 기계에 연결해서 증폭을 시킬 수 있는)도 달려있다. 가끔 그 아이를 보며 너는 어쩌다가 나에게 왔을까 좋은 악기가 보잘것없는 연주에 쓰이는 것이 미안하고 송구하다.


정말 예쁘다 내 기타. 실물 보면 더 이쁨. 아, 우리 아띠 공간릴라 냥이 시절에도 기타 싫었구나

하찮은 연주를 견뎌주는, 아니 무시하는 고양이 자매

얼마 전 김민기 아저씨가 돌아가셨을 때 오랜만에 기타를 꺼냈다. 집에 고이 모셔둔 김민기 책자를 꺼내 아는 노래는 죄다 부를 기세였다. 물론 혼자 애도의 술을 꽤 마신 상태였다.

내 옆(좌, 우)에 앉아있던 아띠와 루카는 기타가 등장하자 1m 정도 떨어져서 예의 주시를 했다. 내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둘 다. 그렇다. 우리 고양이들은 나의 기타 소리도 싫어하고 내가 노래하는 것도 싫어한다.

큰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고양이에게 매우 큰 어려움이다. 여러 가지 소리가 한꺼번에 나기 때문에 파악하기 힘들고 평소와 다른 감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언니의 소리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십 대 시절부터 좋아한 아티스트의 한 생이 끝난 날이라 애도하는 내 행위를 빨리 끝낼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목이 잠기고(하찮은 기타 실력에 하찮은 성대) 술도 좀 깨고 기타를 다시 치우자 아띠가 다가와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다 했니 하며 한참 쳐다보다 그루밍을 보란 듯이 했다. 너 기타 치는 거 견디느라 힘들었다는 메시지로 읽혔다. 핏 하고 입을 삐죽 내밀다가 미안하긴 했다. 비장의 츄르를 꺼내어 미안하고 고맙다며 바쳤다.

우리 아이들은 오랫동안 공간릴라에서 기타 소리를 들으며 자랐지만 우리 집에 와서 살기 시작하면서 기타 소리 들을 일이 없어지니 본연의 고양이 자세로 돌아와 기타만 꺼내면 기겁하고 내 곁을 떠난다.


로망은 로망일 뿐

한 번은 기타를 싫어하는 고양이에 관한 얘기를 sns에 쓰면서 사운드가 넘 안 좋아서 싫어하나 싶다는 푸념을 했다. 아는 기타 치는 선배가 고양이만이 아니라 연습용 사운드를 누구도 좋아하기 힘들지라고 답글을 달았다.(본인의 고양이도 그렇다는 말과 함께)  숙련자의 기타 소리여도 고양이들은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고 끄덕했다.

청력이 사람보다 몇 배 좋은 고양이들 입장에서는 괴로운 소리이다로 정리했다.

그렇지만 로망은 있다. 어떤 가수가 연주하고 노래하면 고양이가 기타를 비비고 가수의 머리와 어깨 위를 다니며 너무나 행복해한다. 나도 그거 너무 하고 싶었다.(고 광양에서 하늘을 보며 팔을 뻗어 전하고 싶다. 내 로망이 그~~렇게 크게 잘못되었나요?!!! 네?!!!!)

https://www.youtube.com/watch?v=7udUxofdBIE

Ayleen O'Hanlon 가수와 그녀의 고양이

누구나 연주하는 악기 하나쯤 있다는 로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까지 괜찮고 혼자 부르는 노래 지칠 때까지 하면 어때라고 생각한다. 고양이가 있으니 음악도 크게 틀지 않고 사는데 엉, 한 번씩 기타 엉, 내 집에서 엉, 나도 좀 치자 엉~라고 배짱을 부려본다. (범죄와의 전쟁, 최민식 배우 풍으로)

가끔 리코더를 꺼내서 동요를 연주해도 아띠는 인상이 좋지가 않다. 내 집에서 웬 잡소리인가 하는 당당한 요구를 표정으로 드러내며 내가 멈출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기타를 들면 자리를 피한다. 아무래도 기타가 커서 소리가 더 커서인 듯.


내가 지켜줄게, 당당하라 어디서나

퓨슈슈 욕망의 하찮은 연주가 끝나고 얌전하게 기타를 치우고 고양이들 눈치를 살피면 꾸짖는 표정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참는다는 시그널은 확실하게 준다. 이런 밀고 당기기를 우리 고양이들이 좋아하는지 모르지만 다양한 감정의 고양이의 얼굴을 보는 즐거움은 분명히 있다.(그것 때문에 기타를 꺼내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일 년에 두어 번 될까 말까.)

나만 아는 표정 부자 고양이들. 늘 밤과 새벽에 기타를 꺼내는 바람에 사진을 찍어두지 않아서 그 표정을 사진첩에서 찾을 길 없이 내 가슴에만 있다. 귀여운 녀석들.

나의 모든 행동에 반응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늘 당당하다.

끝까지 마지막 가는 날까지 너희들이 당당해라. 언니는 열심히 일하고 건강을 지켜서 아프지 않도록 노력할게.


며칠 전 타로리딩 때문에 간이 테이블과 테이블보를 꺼냈는데 둘이 신났다. 저렇게 나란히 붙어있으면 아, 얘들이 닮았구나 자매구나 알 수 있다.(아! 나만 알 수 있나?)



(2024년 9월 6일  나를 팽개 치고 자고 있는 고양이들아, 언니가 사랑한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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