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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머리 짐승 May 29. 2020

남대문, 2009년 5월 29일

“그것도 능력이야” 선배는 담배 피우러 나가는 제 뒤통수에 대고 말했습니다. 남대문을 바라보는 돌계단에 앉아 불을 댕겼습니다. 노란 행렬이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후로도 아마 서너 개비는 더 태워버렸지 싶어요. 노란 종이모자와 리본, 서낭당 오색띠 같은 깃발들이 서울역 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오늘처럼 뜨거웠던 5월의 그날, 제 시선은 행렬을 따라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적당히 부풀려 거짓말 같지 않은 거짓말을 짓고, 걸리지 않을 것 같은 건 교묘히 숨기는 일이 돌계단에 앉기 전까지 제 역할이었습니다. 다들 그렇게 한답디다. 경쟁 입찰에 이기고 나서  슬쩍 밝혀도 늦지 않다고 선배가 그럽디다. 지금은 우선, 빨리 그럴듯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그래야 이긴다고, 그래야 제 보너스가 나온다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승승장구하는 선배가 한 수 가르쳐줍디다. 그날 공교롭게도 마지막 노란 물결이 느릿느릿 흘러갔습니다. 다들 그렇게 한다는데 그이는 그렇게 하지 않아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11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그이 때문에 이 지경, 그이 덕분에 그나마. 모르긴 해도 그이는 자음 하나 덜고 더한 ‘바름’과 ‘빠름’ 사이에서 줄타기했을 겁니다. 얼른 새 시대를 열려면, 지난 시대를 천천히 되짚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바른 일을 빠르게 할 수 있는 능력은 그이에게도 역시 모자라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오늘은 세상 단 하나뿐이었던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을 떠나보낸 5월 29일입니다.  


표지 사진 출처 : http://kor.theasian.asia/archives/222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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